[동화] 울렁울렁 과자파티, 마은아

  울렁울렁 과자파티

 

  내가 식탁에 앉자, 엄마가 흰 우유를 한 컵 따라서 건넸다. 나는 컵을 왼쪽으로 밀고 단팥빵 포장지를 뜯었다.

  “아침에 우유 먹으면 속 울렁거려.”

  나는 우유가 싫었다. 비린데다 마시면 속이 울렁거리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우유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줬다.

  “엄마가 크게 한 모금 마셨어. 그러니까 이건 다 마셔.”

  나는 남은 단팥빵을 한입에 다 넣은 뒤 코를 막고 우유를 마셨다. 최대한 우유 맛이 안 느껴지게 먹는 나만의 비법이었다. 나는 우유를 빨리 먹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씻고 나와 가방에서 지갑을 꺼냈다.

  “어?”

  그런데 지갑은 텅 비어 있었다. 어제 아침에 봤을 때도 이천 원은 분명 지갑 안에 있었다. 과자 파티를 위해 아끼고 아껴 둔 돈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제 떡볶이를 같이 먹자는 서연이의 제안도 거절했었다.

  “지수야, 우리 컵 떡볶이 사 먹고 갈래?”

  서연이가 가방 옆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며 말했다. 나는 맛나 분식 간판을 보며 침을 삼켰다. 분식집 아줌마가 짜장 떡볶이를 휘휘 저었다. 눈을 감고 입을 오물거리니 짜장 떡볶이의 짭짤한 단맛이 느껴졌다. 그래도 금요일 과자 파티에 빈손으로 갈 수는 없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지갑을 꽉 쥐었다.

  “아냐. 난 괜찮아.”

  “에이, 아쉽다.”

  서연이는 혼자 들어가서 짜장 컵 떡볶이를 하나 달라고 말했다. 짜장 컵 떡볶이는 한 컵에 천오백 원이었다. 이천 원이 있으니, 사 먹으면 오백 원이 남았다. 오백 원. 오백 원으로는 과자를 살 수 없었다.

  “자, 여기 있다.”

  아주머니가 컵에 짜장 떡볶이를 가득 담아서 건네 줬다. 서연이는 아주머니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짜장 떡볶이 냄새가 더 세게 났다.

  “아, 진짜 맛있겠다.”

  나는 떡볶이를 빤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깜짝 놀라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속으로만 한 생각이었는데, 툭 튀어나왔다.

  “한 입 줄까?”

  서연이가 이쑤시개로 떡을 하나 찍어서 내밀었다. 나는 바로 입을 벌렸다.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데 머리와 입은 다르게 움직였다. 서연이는 내게 떡을 하나 먹여 줬다. 짭짤하고 달콤한 맛. 너무 잘 아는 맛이었고 그래서 더 맛있었다.

  “너 머글 거또 업능데 미앙해.”

  먹으면서 말하려니 어려웠다. 서연이는 못 알아듣겠다고, 다 먹고 다시 말해 달라고 했다.

  “사실 나 이거, 주운 돈으로 샀다? 그러니까 괜찮아.”

  “어디서 주웠는데?”

  “어? 아, 학교, 아니다. 학교 오다가 주웠어.”

  서연이는 학교에 오다가 길에서 주웠다고 말했다. 매일같이 학교에 오고 가는데, 나는 왜 그런 행운을 못 봤을까. 너무 아쉬웠다. 떡 하나는 아무리 천천히 씹어도 금방 넘어갔다.

  아무리 천천히 씹어도 금방 넘어가 버린 떡처럼, 돈은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나는 믿을 수 없어서 지갑을 다시 열어 봤다.

  “어?”

  지갑 아래에 길게 구멍이 나 있었다. 구멍은 동전은 물론 지폐도 빠질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랬다. 이 구멍으로 돈이 빠진 모양이었다. 가방을 한 번 더 뒤져 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 내 돈 못 봤어?”

  “글쎄. 엄마는 모르겠네.”

  엄마는 모른다고 말했다. 하긴, 지갑은 내가 계속 갖고 다녔으니 엄마가 만졌을 리는 없었다. 책상으로 달려가서 돼지 저금통을 흔들어 봤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코를 열고 돼지 저금통을 거꾸로 들었다. 동전이 대여섯 개 쏟아졌다. 100원은 두 개, 50원은 세 개였다. 다 해서 350원이었다. 막대 사탕 하나 사 먹으면 끝날 돈이었다. 나는 방에서 나가 부엌으로 갔다.

  “엄마, 아니 어머님. 혹시 다음 주 용돈 중에서 이천 원만 먼저 주시면 안 될까요?”

  “네, 안 됩니다.”

  엄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나는 엄마의 옷을 잡아당기며 졸랐다. 어차피 용돈은 매주 월요일에 주니까 오늘 줘도 많이 이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엄마는 단호했다.

  “어휴, 내가 졌다. 가서 엄마 지갑 가져와 봐.”

  나는 빠르게 뛰어가서 엄마 가방에서 지갑을 가져왔다. 나는 허리를 숙이고 지갑을 두 손으로 공손하게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는 나를 등지고 지갑을 열어 보더니 다시 내게 지갑을 줬다.

  “엄마 돈이 없네. 다 통장에 있어서, 은행 가서 찾아와야 해.”

  “가져오면 되잖아. 내가 갈게.”

  엄마는 통장 주인이 직접 가야 하는데 지금은 너무 바빠서 갈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바지를 잡아당기며 아무리 졸라도 엄마는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았다.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작게 중얼거리고 집을 나섰다. 크게 인사할 기운이 없었다.

 

  나는 바닥을 꼼꼼히 보면서 걸었다. 어딘가에 돈이 떨어져 있을지도 몰랐다. 지폐면 너무 좋겠지만, 동전도 좋았다. 그런데 바닥에 떨어진 건 담배꽁초나 비닐봉지밖에 없었다. 그때 편의점에서 어떤 아저씨가 나왔다. 아저씨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나와 같은 방향이었다. 나는 아저씨를 따라 걸어갔다. 아저씨는 주머니가 아주 커다란 갈색 재킷을 입고 있었다. 커다란 주머니라면 넣을 수 있는 물건도 많을 테고, 어딘가에 살짝 구멍이 나도 모를 것 같았다. 그런데 아저씨는 내가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것도 흘리지 않았다.

  “지수야!”

  서연이가 나를 부르며 손을 크게 흔들었다.

  “뭐 살 거야? 나는 초코 과자 살지 떡볶이 과자 살지 고민이야.”

  “저, 서연아. 나 사실 돈을 잃어버렸어.”

  “에이, 괜찮아.”

  서연이가 문을 열며 말했다. 뭐가 괜찮다는 거지? 돈이 없는데.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따라 들어갔다.

  “나도 500원밖에 없어. 어제 떡볶이 사 먹었잖아.”

  “그럼 어떡해?”

  “어떡하긴. 일단 들어와.”

  서연이가 속닥거렸다. 서연이는 문밖을 살피고 후드티의 모자를 푹 눌러썼다. 그리곤 과자코너로 걸어가서 쌀 떡볶이 과자를 하나 갖고 돌아왔다.

  “너도 먹고 싶은 거 가져와. 고개 숙이고.”

  나는 고개를 숙이고 곁눈질로 과자를 천천히 살펴봤다. 맛있는 과자가 너무 많았다.

  “얼른 골라.”

  서연이가 문밖을 보며 말했다. 나는 불고기 맛 뿌셔뿌셔를 하나 가져왔다.

  “나 골랐어. 그런데 왜 자꾸 문밖을 봐? 아, 엄마가 와 주기로 했구나?”

  “엄만 이미 출근했지. 그러니까, 이대로 슬쩍 나가야 해.”

  뭐? 나는 계산기 위에 걸린 CCTV를 바라봤다. 네 개로 나뉜 모니터에 서연이와 내가 보였다. 손을 흔들자, 모니터 안의 나도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유리창에는 경고 문구가 적힌 종이와 어떤 사람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본 매장은 24시간 CCTV 녹화 중입니다. 매장 물품 훔쳐 가면 경찰에 신고하고, CCTV 영상 캡처해서 얼굴 공개하겠습니다.]

  과자를 쥔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 과자를 갖고 나갔다고 사이렌이 울리고, 경찰 아저씨들이 출동하면 어떡하지?

  “불고기 맛 뿌셔뿌셔를 훔친 게 너지?”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경찰서로 끌려갈 거야. 가면 막 손바닥을 몇백 대씩 때릴까? 돈을 엄청 많이 물어내라고 하면 어떡하지? 막 열 배, 백 배 물어내라고 하면? 용돈은 일주일에 겨우 오천 원인데. 하나도 안 쓰고 모아도 겨우 이만 원이고. 손바닥에 땀이 났다. 감옥에 갈 수도 있겠다. 감옥에서는 콩밥만 준댔는데. 밥 대신 콩만 그릇에 가득 담아 줄 수도 있겠다. 우웩. 밥 대신 콩이라니. 나는 허벅지에 손바닥을 비벼 닦았다. 맞다. 얼굴도 공개한다고 했지. 이쪽에 학교 친구들 엄청 많이 사는데. 학교는 어떻게 가지. 지우개나 연필도 안 빌려줄지도 몰라, 도둑이라고. 우유를 방금 마신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뿌셔뿌셔를 도로 가져다 놨다. 도둑이 돼서 경찰서에 가기는 싫었다.

  “왜 가져다 놨어?”

  “그냥 가져다 놓자. 우리 경찰서 가면 어떡해.”

  “뭐?”

  서연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나는 서연이의 과자를 집었다. 지금 가져다 놓으면 우리는 도둑이 아니었다. 그때 서연이가 내 손을 뿌리쳤다.

  “어차피 모른다니까. 설마 하루 종일 CCTV만 보고 있겠어?”

  “그래도, 훔치면 경찰에 신고한대. 저기, 걸린 사람 사진도 붙어 있잖아.”

  “나 쟤 봤어. 쟤는 주인아줌마가 들렀을 때 가져가더라고. 그래서 걸린 거야.”

  “나갈 때 사이렌 울리면 어떡해?”

  “그러니까 옷 안에 숨기고 몰래 나가야지.”

  서연이는 후드티 안에 과자를 넣고 빠르게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빨리 나오라고 문 앞에서 나를 불렀다. 지금 과자를 가져가지 않으면, 나는 과자파티 때 물만 마셔야 한다. 친구들이 맛있는 과자들을 다 같이 나눠 먹어도, 나는 나눠 줄 과자가 없으니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을 든든히 먹고 올걸. 아침으로 먹은 건 단팥빵 하나와 우유 반 컵뿐이었다.

  “너 계속 거기 있을 거면, 난 먼저 갈래.”

  내가 계속 망설이니 서연이는 먼저 걸어갔다. 서연이는 나보다 키도 크고 걸음도 빨랐다. 지금 가야 같이 갈 수 있었다. 나는 CCTV를 올려다봤다. CCTV 속 나도 나를 바라봤다. 나는 눈을 꼭 감고 고개를 숙였다. 일단 가져가고, 다음 주에 용돈 받으면 가져다 놓자. 나는 계산기 옆에 있는 둥실 풍선껌을 빤히 바라봤다. 풍선껌은 하나에 오백 원이었다. 천 원도 아니고, 겨우 오백 원. 엄마도 세탁소에 갔을 때 지갑이 없으면 다음에 드리겠다고 말하고 그냥 나왔다. 풍선껌은 한 통에 다섯 개가 들어 있어서 무려 네 명하고 나눠 먹을 수 있었다. 나는 포도 맛 풍선껌을 하나 집었다. 혹시 누가 보면 어떡하지? 나는 껌을 다시 내려놓고 문밖을 바라봤다.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자꾸 누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CCTV 옆 모니터에 비친 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난 아무것도 못 봤다.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세탁소 아저씨도 다음에 줘도 된다고 했다. 나는 풍선껌을 하나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래, 괜찮아. 나는 단침을 꿀꺽 삼켰다.

  “같이 가!”

  문을 여니 종소리가 너무 크게 울렸다. 나는 깜짝 놀라서 문턱에 걸려 넘어졌다. 아스팔트에 무릎이 긁혀서 바지 무릎 부분이 빨갛게 물들었다. 빨리 따라가야 하는데 무릎이 너무 쓰라려서 일어날 수 없었다. 나는 길에 앉아 무릎을 후후 불었다. 서연이는 벌써 골목 끝에 있었다.

  “서연아!”

  나는 서연이를 크게 불렀다. 다리가 풀려서 도저히 혼자서는 일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 서연이는 못 들었는지 점점 멀어졌다. 나는 무릎을 굽히고 바닥을 손으로 짚었다. 일어나자.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는데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웁, 우욱. 우웩.”

  일어나려고 고개를 숙이자 갑자기 토가 나왔다. 나는 깜짝 놀라서 일어났다. 다행히 옷에는 묻지 않았지만, 길 한가운데에 토를 해버렸다. 노랗고 시큼한 냄새가 나는 토를 보자 눈물이 났다. 이래서 우유가 싫다고. 먹으면 속이 울렁거리니까…….

  학교는 아직 한참 더 가야 했다. 나는 소매로 눈과 입을 닦고 천천히 걸었다. 토를 했는데도 속이 울렁거렸다. 그래서 일부러 하늘을 보며 걸었다. 하늘은 내 토처럼 노란색이었다. 천천히 걸어 골목을 나가니 횡단보도 바로 앞에 서연이가 보였다.

  “지수야! 왜 이렇게 늦었어. 나 여기서 한참 기다렸는데.”

  “아니. 오다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하려고 하는데 다시 토가 올라왔다. 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토를 꿀꺽 삼켰다.

  “너 괜찮아? 얼굴이 하얀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렌도 울리지 않았고, 경찰관 아저씨도 오지 않았다. 그러니 괜찮았다. 다음 주 월요일에 용돈을 받으면 바로 갚을 거니까 훔친 것도 아니었다. 빌린 거였다. 정말로 괜찮았다.

  “맞다, 지수 너 뭐 가져왔어?”

  잠깐만. 나는 서연이에게 보여 주려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어? 주머니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주머니를 거꾸로 뒤집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가방 옆 주머니와 앞주머니를 뒤져 봐도, 껌은 없었다.

  “어, 분명히 챙겼는데……. 미안해.”

  괜찮아. 내가 가져왔잖아. 서연이는 쪼그려 앉아서 책이랑 필통 등 가방 안에 물건을 다 꺼내며 과자를 찾았다.

  “옷 안에 넣고, 나와서 바로 가방에 넣었는데. 이상하다.”

  서연이가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나도 울고 싶었다. 나는 가방을 앞으로 메고 다시 뒤져 봤다. 어, 그런데 가장 큰 주머니 안에 뭔가 보였다. 학교 앞에서 나눠준 학원 전단지였다. 전단지에는 사탕이 두 개 붙어 있었다. 나는 사탕을 하나 떼서 서연이에게 건넸다.

  “이거 가져가자.”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서연이는 사탕을 받더니 다시 울기 시작했다. 나는 서연이의 등을 두드려 줬다. 내 속이 개운해진 것처럼, 서연이도 개운해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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