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찜을 기억하는 법

지화용

  성아야, 엄마랑 장 보러 같이 갈래?
  엄마의 말에 달력을 확인했다. 설날까진 아직 3일이나 남았다. 엄마는 갈비가 금방 나간다며 장바구니를 챙겼다. 딱히 할 일이 없던 터라 순순히 엄마를 따라가겠다고 일어났다. 엄마는 설날 시즌이 되면 두 개의 냄비에 갈비를 나눠 갈비찜을 했다. 하나는 베트남 고추와 청양고추를 넣어 닿기만 해도 입술이 화끈거리는 매운 갈비찜이었고, 하나는 감자와 갈비에 간장 기름이 배어드는 간장 갈비찜이었다. 갈비찜을 만들기 위해선 피를 빼는 작업을 거처야 했다. 최소 하루 전에 마트에 들러야 했는데 이번엔 조금 서둘렀다. 마트 안은 설날 준비로 분주했다. 엄마는 전을 파는 곳과 과일 파는 곳을 모두 지나 정육 판매대로 향했다. 갈비 6인분 포장이요. 망설임 없이 갈비 6인분을 주문한 엄마가 카트를 끌고 계산대로 향했다.
  아린이 곧 하원 할 시간인데 과자 좀 살까?
  그러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정육 맞은편에 있던 과자 판매대로 들어갔다. 설날 포장이라고 커다란 상자에 다양한 과자들이 들어가 있었다. 상자 구멍에 눈을 갖다 댔다.
  엄마, 새우깡인데.
  아린이 새우깡 안 좋아해. 그건 네 아빠만 좋아하지.
  나도 먹고 싶은데 그냥 이거 사면 안 돼?
  안 돼. 여기 홈런볼 있다.
  엄마가 조금 묵직한 상자를 옆구리에 끼곤 카트를 끌었다. 카트 안에 넣으라고 말했는데 상자에 핏물이 묻는다며 거절당했다. 눈치 보며 옆에 할인 중인 캔맥주 6묶음을 슬쩍 카트에 넣었다. 캔맥주 상자에 핏물이 스며들었다. 봉투 하나 더 가지고 와야겠다. 핏물 새는데.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왼쪽 옆구리에 과자 상자를 끼고, 오른쪽 옆구리에 캔맥주를 꼈다. 앞에선 파란 봉지를 든 엄마가 한 블록마다 걸음을 세웠다. 엄마는 고무줄이 다 해져 내려가는 바지를 추켜올렸다. 나올 때부터 내가 갈비를 들겠다고 말했지만, 전부 무시당했다. 엄마는 갈비가 마치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 손에 꽉 쥔 채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말없이 엄마 뒤를 따랐다. 집에 돌아온 엄마가 커다란 대야 두 개를 꺼냈다. 두세 겹 포장된 파란 봉투를 뜯고 갈비를 넣은 뒤 차가운 물을 틀었다. 갈비 속에 있던 피가 점점 빠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갈비의 피가 빠지는 동안 매운 양념과 간장 양념을 만들었다. 정확한 양념의 레시피는 엄마만 알고 있다. 양념 철학이 확고한 분이라 양념을 만들 때 옆에 서면 엄마는 무척 화를 냈다. 작년 설날, 엄마의 양념장을 몰래 촬영했던 언니를 떠올렸다. 아린의 앞에서 엄마가 화를 낸 것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나도 언니처럼 한 소리 들을까 봐 소파에 앉았다. 엄마가 숟가락을 싱크대에 넣었다. 냄비 가지고 와? 내 질문에 엄마가 고개를 저었다. 갈비의 피가 빠지는 동안 엄마는 항상 다시 보기 프로그램에서 무료로 해주는 영화 한 편을 틀었다. 엄마 옆에 앉아 아까 사 온 과자 상자를 뜯었다. 그거 아린이 거야. 뭐, 나도 들고 왔잖아. 엄마와 내가 유치한 말싸움을 하며 영화를 봤다.

  쇠가 부딪히는 소리에 눈을 떴다. 엄마는 베란다에서 아린이 몸의 반만 한, 두 개의 냄비를 갖고 나왔다. 하나를 잡아 함께 부엌으로 향했다. 냄비에 피가 다 빠진 갈비를 넣고 양념장을 넣었다. 갈비가 익기 시작하자 엄마는 미리 손질해둔 감자를 넣고 다시 중불에 갈비를 끓였다. 나는 젓가락으로 갈비를 눌렀다. 살코기가 부드럽게 갈라졌다. 엄마가 솥에 쌀을 넣고 씻기 시작했다. 벽이 짧게 흔들렸다. 아, 여기 옛날 아파트라 방음 안 된다니까. 복도에서 조금 묵직한 울림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할머니! 도어락 소리와 함께 아린이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엄마가 솥을 내려놓고 현관으로 뛰어갔다. 아이고 우리 고양이. 두 사람이 서로를 끌어안고 볼을 비볐다. 나는 둘을 바라보다 갈비찜 뚜껑을 열었다. 뜨거운 김이 올라와 얼굴에 닿았다. 아린이 엄마 다리에 매달려 이리저리 움직였다. 결국 내가 가스 불에 솥을 올렸다. 소파에 앉아 엄마의 등에 업힌 아린을 바라봤다. 살면서 나랑 언니가 엄마한테 업힌 적이 있었나. 없었던 거 같았다. 핸드폰 진동이 울려 방으로 들어갔다. 지하철 안인지 안내방송이 호준의 목소리를 먹었다. 호준의 웅얼거림을 제대로 듣기 위해 볼륨을 높였다.
  내일 만나기로 했잖아. 일이 생겨서 조금 늦게 만나야 할 거 같아.
  난 괜찮아. 만나서 저녁이나 먹자.
  그래도 네 생일인데, 먹고 싶은 건 따로 없어?
  음, 소고기?
  소고기는 내가 못 먹잖아.
  아, 그렇지. 호준의 회사 이야기를 듣는데 밥이 다 됐다고 엄마가 소리쳤다. 나중에 연락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거실엔 언니가 갈비찜을 들고 있었다. 가녀린 팔에 핏줄이 올라왔다. 언제 왔는지 아빠는 아린에게 목말을 태워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엄마는 아린의 볼에 뽀뽀를 짧게 한 후 자리에 앉으라 말했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졸업한 이후 갱년기가 심하게 왔는데, 아린이 태어난 이후 웃는 날이 많아졌다.

  아린의 출생은 전체적으로 부모님의 삶의 질을 높여주었으나 언니에겐 그러지 않았다. 언니는 전 형부와 결혼한 지 1년 8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다. 전 형부는 평소 화가 잦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전 형부는 언니에게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전 형부가 발을 들었다. 아린이 배 안에 있을 때라 언니는 본능적으로 먼저 전 형부의 배를 발로 찼다. 전 형부는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이송됐다. 응급실 안은 전쟁통이었다. 맞은편 침대에선 아픈 아이가 울고 있었고 다른 쪽 침대에선 실신한 환자가 있었다. 언니는 전 형부의 엄마에게 뺨을 맞고 엎어졌다. 엄마는 그 여자의 뺨을 내리쳤다. 응급실에서 몸싸움이 벌어진 건 순식간이었다. 그 여자는 엄마의 머리채를 잡았고 엄마는 이에 지지 않게 주먹으로 여자를 때렸다.
  독한 년. 독한 년. 어디 남편을 때려.
  누구보고 독한 년이래. 네 새끼가 먼저 그랬잖아.
  아이고, 아이고, 불쌍한 내 아들.
  네 아들만 불쌍하니?
  닥쳐
  니나 닥쳐
  닥치라고 이년아
  닥쳐, 닥쳐, 우리 딸한테 욕하지마. 씨발.
  간호사가 경찰을 부르겠다고 소리쳤다. 나와 언니도 엄마를 잡았다. 반대쪽에선 화가 풀리지 않는다며 이혼을 요구했다. 언니는 협의 이혼이 되던 그달 말에 아린을 낳았다. 제왕절개를 했고 꽤 오래 산후조리원에 있었다. 언니는 얼른 집에 가고 싶어 했다. 엄마가 언니에게 미역국을 따라주며 말했다.
  내가 너 낳았을 때 집이 너무 가난해서 7시간 만에 퇴원했다. 역대 날씨 중 가장 더운 폭염인데 병원에 나오니까 너무 춥더라. 몸을 못 돌보면 여름에 춥게 살아. 나는 지금도 폭염이 오면 몸이 춥다.
  언니는 산후조리원에서 날짜를 다 채운 후 엄마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가 아린을 무릎에 앉혔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숟가락을 들고 갈비찜을 뜯었다. 나와 언니 그리고 아린과 아빠는 간장 갈비를, 엄마는 매운 갈비를 좋아했다. 우리 집은 대대로 매운 걸 잘 먹지 못했다. 매운 걸 잘 먹는 사람은 엄마뿐이라 매운 갈비찜은 모두 엄마의 것이었는데 최근 언니가 엄마와 함께 매운 갈비를 먹기 시작했다. 엄마는 표정 변화 없이 매운 갈비를 밥에 올렸다. 푹 익혀 젓가락으로 찍어도 살점이 부드럽게 떨어졌다. 엄마가 떨어진 살점 위에 고추 소스를 비빈 뒤 한입 가득 갈비찜을 먹었다. 갈비찜을 씹는 엄마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접혔다. 반면 언니는 매운 갈비찜을 먹을 때마다 땀을 흘렸다. 그건 매운 게 아니라 고통 아니냐고. 내 말에 언니는 매운 걸 먹어야 스트레스가 풀린다며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나는 언니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매운 음식을 먹지 않는 걸 알았으나 굳이 말하지 않았다. 엄마와 언니를 제외하곤 아무도 손대지 않는 갈비찜이라 많이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엄마는 늘 삼 인분, 삼 인분 나눠 갈비찜을 완성했다. 간장 갈비찜은 저녁 식사가 끝나면 모두 사라졌다. 매운 갈비찜은 삼 일씩 냉장고 안에 자리를 잡았다. 줄어들지 않는 매운 갈비찜을 보며 간장 소스가 밴 감자를 젓가락으로 찍었다. 엄마의 레시피는 평생 비밀이었다.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호준에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을 때도 언니가 전 형부에게 해줄 거라고 졸랐을 때도 엄마는 소스를 버무리면서 똑같은 말을 했다. 먹고 싶으면 우리 집으로 와. 내가 해줄게. 언니가 밥을 먹다 말고 내 정강이를 아프지 않게 건드렸다.
  생일에 뭐해? 호준이 만나?
  응. 근데 조금 늦게. 호준이가 일이 늦게 끝날 거 같대. 저녁이나 먹으려고.
  뭐 먹을 거야?
  나는 고기 먹고 싶긴 한데 호준이 소고기 못 먹잖아. 그래서 고민 중.
  네 생일인데 뭘 고민하냐.
  식사를 끝낸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린이 엄마의 품으로 달려갔다. 엄마가 아린을 끌어안았다. 언니는 엄마에게 아린을 맡긴 뒤 방으로 들어갔다. 언니는 이혼 후 내 방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아린까지 같이 자는 게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아린은 잠투정이 거의 없는 아이였다. 인터넷에선 아린 같은 아이를 ‘신의 아이’라고 불렀다. 잠투정이 없어서 부모한테 효도하는 아이. 그게 신의 아이래. 엄마와 언니에게 이 말을 전해주었다. 엄마는 아이가 하는 의사 표현이 우는 것뿐인데 그걸 안 하는 게 무슨 효도냐며 탐탁지 않아 했다.

  나도 언니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언니는 옷을 갈아입으면서 계속 윗배를 쓸어내렸다. 언니의 앙상한 몸이 눈에 들어왔다. 갈비뼈와 톡 튀어나온 동그란 배가 아린을 임신했을 적 모습 같았다.
  매운 것도 못 먹으면서 그걸 왜 먹었어?
  나 매운 거 잘 먹어.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린 거 알지?
  언니가 옷을 갈아입다 말고 침대에 누운 나를 바라봤다. 성아야,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역류성 식도염 와. 언니의 말이 저주가 아닌 걱정처럼 들려 몸을 살짝 일으켰다. 벽에 등을 붙이자 등이 차가워졌다. 엄마가 매운 갈비를 왜 이렇게 많이 만드는 줄 알아? 언니의 질문에 고개를 돌렸다. 좋아하니까? 어색하게 목소리를 올렸다. 언니는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엄마가 나 임신했을 때 매운 갈비찜이 너무 당기더래. 그때 딱 시댁에서 갈비찜을 하고 있었나 봐. 엄마가 거기에 고춧가루도 넣고 그랬는데 할머니가 화를 냈대. 우리 아들 먹을 건데 맵게 하면 어떻게 하냐고. 엄마가 다 먹겠다고 하니까 그거 비싼 거라고 물에 다 씻었대. 그걸 보고 설날만 되면 매운 갈비찜을 먹는 거야. 우리 엄마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언니는 잠옷 바지를 갈아입으며 마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나도 아린이 임신했을 때 생선이 너무 먹고 싶더라고. 시댁에서 임신도 했으니까 뭐 먹고 싶냐길래 고등어 먹고 싶다고 했는데 안 된다네. 아들이 물고기를 못 먹는다고.
  몰랐는데 먹는 거로 서운한 게 오래 가더라. 언니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거실로 나갔다. 반쯤 열린 방문 너머로 아린과 장난치는 엄마가 보였다. 먹는 거로만 서운했을까. 아린이 마지막 과자를 입에 넣었다. 엄마는 장난 섞인 말투로 할머니도 그거 좋아한다며 입술을 내밀었다. 아린이 잠시 고민하다 입에 있던 과자를 빼 엄마에게 건넸다. 아린의 손엔 침 범벅된 과자가 들려 있었다. 엄마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호준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거절하자 이번엔 카톡이 여러 개 왔다. 네가 좋아할 만한 곳으로 준비했어. 초밥, 회, 타코, 스파게티. 그중 내가 먹고 싶은 소고기는 없었다. 나는 호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참기름 냄새가 방까지 들어왔다. 식탁에 모인 가족들이 내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오늘 너 생일이라고 언니가 미역국 끓였대. 엄마의 말을 들으며 냉장고 앞으로 향했다. 뭐해? 언니의 질문에 대답 대신 갈비찜을 꺼냈다. 나도 먹어보게. 오목한 그릇 안에 방금 데운 매운 갈비를 듬뿍 펐다. 언니와 엄마, 내 가운데에 그릇을 올렸다. 엄마가 갈비를 하나 들고 어제처럼 비벼 먹기 시작했다. 언니도 엄마를 따라 갈비찜을 먹기 시작했다.
  오늘 같이 소고기 먹을까?
  갑자기?
  그냥 엄마도 소고기 좋아하잖아. 내 생일이면 엄마도 고생한 날이고.
  호준이는 안 만나?
  걔는 다음에 만나려고.
  엄마가 숟가락에 남은 양념을 쭉 빨았다. 좋아! 아린이 엄마 대신 답하자 가족들이 모두 웃었다. 엄마와 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빨간 기름이 떨어지는 갈비를 잡아 올렸다. 나는 여전히 매운 것을 싫어했다. 매운 갈비보단 간장 갈비가 좋았고 갈비찜을 만드는 방법도 몰랐다. 굳이 배우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매운 갈비찜 국물을 하얀 밥 위에 흩뿌렸다. 내가 갈비찜을 기억하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지화용,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2학년
“아자아자! 열정문창! 아자아자! 적기졸업!”

 

작가 인터뷰

Q. 작가님은 갈비찜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나 일화 같은 게 있나요?

A. 가족들이 갈비찜을 좋아합니다. 특히 매운 갈비찜을 좋아하는데 안타깝게도 다들 매운 걸 잘 먹는 성격은 아니라서 갈비찜을 기억하는 법처럼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습니다. 4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갈비찜을 뜯을 때면 재밌어서 웃음이 나옵니다.

Q. 갈비찜을 기억하는 법에서 엄마와 언니가 매운 갈비찜을 먹으면서 땀을 뻘뻘 흘리는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독자인 저도 읽으면서 울컥했던 장면이었어요. 특정 음식을 보면 어떤 사람이 떠올리게 되는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도 어떤 음식을 보았을 때 어떤 가족이 제일 먼저 떠오르시나요?

A. 아버지가 요리사라 아무래도 음식을 보면 아버지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특히 생선을 보면 그런데요. 일식 요리사였던 아버지에게서 항상 생선 비린내가 풍겼던 게 지금도 기억이 나요. 지금은 덜하지만, 예전엔 정말 심했거든요. 어렸을 땐 아버지에게서 났던 비린내가 참 싫었는데 지금은 그 냄새만 떠올라도 울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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