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고름 외 1편, 유하늘

고름

 

  묵직하게 젖은 기저귀를 잡아 뺐다. 물티슈를 한 장 뽑아 아기의 엉덩이를 닦아냈다. 우는 아기의 양손이 허공을 버둥대고 있었다. 둥그렇게 말린 손을 바라보았다. 오른쪽 새끼손가락 옆으로 삐죽 튀어나온 짧은 손가락 하나가 눈에 띈다. 크기도 작고 길이도 짧아 마치 자그마한 뿔 같았다. 진선미 아기, 남자, 2022년 2월 24일, 14시 29분, 4.2kg. 요람 머리맡에 붙어 있는 신생아 기록지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어제 붙여 놓은 태명 스티커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아기들의 신생아 기록지를 두리번거렸다. 붙여 놓았던 태명 스티커가 모조리 떨어져 있었다.
  나는 태명 스티커가 사라진 기록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새 기저귀를 꺼냈다. 소원아 얼른 갈아 줄게 그만 울어. 우는 아기의 배를 토닥였다. 새까맣게 말라붙은 탯줄을 보아하니 곧 배꼽이 떨어질 거 같았다. 새 기저귀로 갈고 풀어놓았던 속싸개도 다시 감쌌다.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계속해서 우는 아기를 들어 안았다. 보호대로 감싸놓은 손목이 시큰했다. 미리 데워놓았던 모유를 꺼냈다. 아기의 벌어진 입에 젖병을 물렸다. 이 선생 애 셀프 시키고 와서 빨리 설거지 좀 해. 등 뒤에서 강 실장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울었냐는 듯 젖병을 빠는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는 잠시 주저하다 안고 있던 아기를 다시 요람에 눕혔다. 아기의 오른쪽 등에 베개를 받치고 비스듬히 젖병을 세워놓았다. 아기의 입에 꽂혀있는 젖병은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다.

  싱크대 안에는 아기들의 젖병과 함께 콩가루가 묻은 그릇이 쌓여 있었다. 저 그릇은 어젯밤 강 실장과 남 선생님이 떡을 꺼내 먹은 그릇일 것이다. 본인이 사용한 그릇은 바로바로 치우자던 강 실장의 말이 떠올라 닫혀 있던 입술 사이로 옅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내가 젖병 쌓이면 바로바로 씻어서 소독기 넣어 놓으라고 몇 번 말해?” 강 실장이 아기 침대에 달린 요람 웹캠을 물티슈로 닦으며 말했다. 또 시작이네. 나는 설거지를 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내 작은 목소리는 싱크대 물소리에 힘없이 묻혔다. 강 실장은 신생아실 선생님 중 나를 유독 싫어했다. ‘경력도 없고 나이도 어린애가 아주 편하게 돈 벌어. 애기나 제대로 안아봤겠어?’ 신생아실에 첫 출근 하던 날, 강 실장이 남 선생님에게 하는 이야기를 실수로 들어버렸다. 물론 그때도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창문을 타고 들어온 햇빛이 테이블 위에 세워놓은 꽃병을 비췄다. 테이블에는 어제 먹다 흘린 콩가루가 묻어 있었다.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햇볕은 따뜻한데 바람은 차가웠다. 봄이 오려나 보다. 프리지아 여섯 송이가 꽂혀있는 도자기 꽃병을 바라보았다. 집에 꽃 한 송이씩 사서 꽂아놓으라며 엄마가 사준 꽃병이었다. 늘 비어 있던 꽃병이었는데, 지금은 프리지아가 화사하게 꽂혀있다. 프리지아는 피다 만 이파리를 둥그렇게 오므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평생 필 수 없는 딱딱한 이파리를 둥그렇게 오므리고 있었다. 노란 꽃잎을 바라보았다. 문득 지난주 출근길에 들렸던 다이소가 떠올랐다.

  빨간색,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 나는 바구니에 담겨 있는 조화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날씨가 봄이면 뭐해, 하루 종일 우중충하기만 하지.” 혀를 끌끌 차며 말하던 강 실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선생, 조화라도 몇 개 사와 봐. 다채롭게.” 강 실장은 퇴근하던 나를 힐끔 바라보며 조화를 주문했다. 구석에 놓인 노란 조화가 눈에 밟혔다. 다른 조화들과 달리 활짝 피지 못한 이파리는 둥그렇게 말려 있었다. 어쩐지 그 모습이 더욱 끌렸다. “아, 생화는 절대 안 돼. 그 정도는 알지?” 비웃으며 한마디 덧붙이던 강 실장의 입꼬리가 떠올라 조화를 집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에 들린 노란 프리지아 다섯 개가 미세하게 떨렸다. 나이가 엄마뻘인 강 실장의 말을 단칼에 거절하기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그녀와 입씨름할 생각을 하면 피곤했다. 신문지에 둘둘 말린 조화를 바라보았다. 속싸개에 싸여있는 아기들이 떠올라 피식하고 옅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설거지를 다 마칠 때쯤 강 실장이 아기가 먹다 만 젖병을 싱크대로 가져왔다. 퉁. 젖병이 싱크대로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신생아실에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골라도 뭐 이런 걸 골라왔어. 꽃이 핀 것도 아니고, 색깔은 또 이게 뭐야. 빨간 장미나 사 올 것이지” 강 실장이 테이블 위의 조화를 바라보며 불평했다. “이거 먼지 아니야? 잘 좀 닦아. 애들은 기관지가 약해서 먼지가 아주 치명적이야.” 강 실장이 프리지아 이파리를 손끝으로 건드리며 가르치듯 말했다. 출근하자마자 닦았어요. 젖병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유 너는 또 왜 우니? 강 실장은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칭얼거리는 아기에게 향했다. 강 실장 특유의 높고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신생아실에 울렸다. 나는 순간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기에게 다가가는 그녀의 등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치명적인 걸 왜 사 오래.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키며 들고 있던 마지막 젖병을 씻었다. 젖병의 물기를 탈탈 털어 적외선 소독기에 집어넣었다. 꾹 다물고 있던 입술에 힘이 들어갔다.
  3년 전,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공부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신입을 괴롭히는 일명 ‘태움’은 간호사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설령 그런 게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회사에 다니다 보면 으레 한 명쯤 있는 텃세 부리는 상사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 친구 정자 이모 알지? 정자 남편이 강남에 산부인과를 크게 하잖아. 신생아실 사람이 부족하다는데, 거기서 일해보는 거 어때? 들어보니까 월급도 너 지금 일하는 데보다 더 세다고 그러더라. 나름 규모가 크던 동네 치과에서 일한 지 5개월이 조금 넘어가던 때였다. 환자가 많았을뿐더러, 일주일에 6일을 출근해야 했다. 또래 간호사들의 잔심부름과 청소도 내 업무 중 하나였다. 그런 현실을 숨긴다고 숨겼지만, 엄마를 속일 수는 없었다. 어쩌면 숨기는 척 알아달라고 떼썼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쭙잖게 어른인 척을 했던 거 같다.

  엄마와 통화를 했던 그날도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근무하고 퇴근하던 길이었다. 또래 간호사들의 무시 섞인 잔심부름을 하면서도 꿋꿋이 ‘근무’라고 칭하는 건, 내 최소한의 자존심이었다. 내가 근무를 하는 건 맞는 말인데, 말을 뱉는 입안이 썼다. 니 또래 애들한테 무시 받는 거 기분 상한다며. 사모님 친구 딸인데 막 대하기라도 하겠어? 휴대폰 너머로 엄마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을 듣자마자 가슴 한구석이 울렁거렸다. 깊게 심호흡을 했다. 긴 숨을 내뱉는 입술이 떨렸다. 엄마는 본인의 친구가 병원장 사모님이라는 사실이 기분 좋은가보다. 자신의 말이 딸의 기분을 더 상하게 하는지도 모르고. 무시하는 건 아니고, 그냥 내 할 일 하는 거지. 환자 볼 때도 있어.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의사와 간호사들 뒤에 서서, 그들이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만 봐놓고, 나는 마치 내가 환자를 치료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엄마는 떨리는 내 목소리를 느꼈는지,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어디 있겠냐며 생각해보고 연락 달라고 말했다. 그날 끊어진 휴대폰을 쥐고 청계천을 한참이나 걸었다.

  시계는 벌써 오후 2시를 지나고 있었다. 저번 주에 3일 연속 나이트 근무를 해서 그런지 아직 정신이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탈의실로 들어가 근무복을 벗었다. 탈의실 밖으로 구두 굽 소리가 들려왔다. 구두를 신고 온 걸 보아하니 오늘 이브닝 근무는 남 선생님인가 보다. 강 실장이 냉장고를 열고 떡을 꺼내는 소리가 들렸다. 먹성도 좋다. 나는 신고 있던 실내화를 벗으며 중얼거렸다. 탈의실 밖으로 강 실장과 남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저번 주에 태어난 육손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진선미 산모의 아기였다. 이 일을 하기 전까지는 잘 몰랐는데, 육손이로 태어난 아기들이 은근히 많았다. 작년만 해도 육손이를 두 번 보았다. 대부분 수술을 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수술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옆에 붙어 있는 손가락과 신경이 얼마나 얽혀있는지에 따라 수술을 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다.
  가방을 챙겨 탈의실을 나가려는데, 탈의실 문 옆 쓰레기통이 눈에 밟혔다. 파란색 쓰레기통 안에 뭉쳐 있는 흰 종이 쪼가리들을 들여다보았다. 그건 다름 아닌 태명 스티커였다. 내가 직접 쓴 태명들이 한데 뭉쳐 구겨져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꺼내 보았다. 햇살이. 검정 네임펜으로 적힌 글자가 보였다. 햇살이가 다른 이름들과 함께 구겨져 있었다. 나는 태명 스티커 뭉치를 들고 탈의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런 애들 보면 딱해. 강 실장이 떡을 집어 먹으며 말했다. 그녀의 주름진 입가에 콩고물이 묻어 있었다. 오물거리며 떡을 씹는 강 실장의 입이 얄미웠다. 내 자식이었으면……. 에이그. 남 선생님이 혀를 끌끌 차며 떡을 집어 먹었다. 그들 옆에서 자는 아기들의 얼굴은 고요했다. 나는 떡을 먹고 있는 그들에게 향했다. 이런 짓을 할 사람은 강 실장뿐이었다. 이거 실장님이 떼셨어요? 나는 들고 있던 스티커 뭉치를 그들에게 보이며 말했다. 시끄럽던 신생아실이 조용해졌다. 이게 뭐예요? 남 선생님이 떡을 오물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산모 이름이 있는데 뭘 태명으로 불러. 헷갈리기만 하지. 커피잔을 쥔 강 실장의 검지 손톱이 깨져 있었다. 허옇게 갈라진 강 실장의 손톱을 바라보았다. 아유, 이런 거 하지 마. 귀찮아. 강 실장이 내 손을 밀며 말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구겨진 스티커들을 도로 쓰레기통에 넣었다. “태명 불러주면 좋지 왜….” 남 선생님이 강 실장과 내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먼저 들어가 볼게요. 수다 떠는 그녀들을 향해 말했다. 강 실장은 나를 본체만체했다. 나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신생아실 문을 밀었다.
  밀린 문틈으로 익숙한 원피스 자락이 보였다. 아. 굳게 닫혀 있던 입술 사이로 옅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하얀색 수면 양말 위로 보이는 얇은 다리. 거무튀튀한 피부. 연분홍빛 수유복 위로 보이는 가느다란 팔목. 쑥 들어가 그늘져 있는 눈.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클. 움푹 들어간 관자놀이 위로 흘러내린 잔머리 몇 가닥. 그녀의 얼굴에는 살집이 없어서 그런지 튀어나온 광대뼈가 더욱 도드라졌다. 진선미 산모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인사를 건네는 그녀의 입술은 색이 죽어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나는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다. 언제부터 서 있었던 걸까. 어디부터 들은 걸까. 나는 속으로 강 실장과 남 선생님이 했던 이야기들을 되뇌었다. 이거 가져다드리려고요. 그녀의 손에는 유축기와 젖병이 들려있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들이밀듯이 내게 건넸다. 아 네. 나는 멋쩍게 유축기와 젖병을 건네받았다. 젖병에 든 모유가 찰랑거렸다. 그녀의 그늘진 눈을 바라보았다. 닫힌 문 뒤로 강 실장과 남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조용한 복도에 물결치듯 퍼져나갔다. 산모와 나 둘뿐인 복도에는 차가운 공기만이 내려앉아 있었다. “소원이 배꼽은 아직 붙어 있나요?” 그녀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배꼽이요? 네 아직 붙어 있어요. 곧 떨어질 거 같은데, 잘 챙겨서 가져다드릴게요. 나는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억지로 올린 입꼬리에 경련이 일어났다. 건조한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아무 말 없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나는 두 발이 묶인 채로 그녀의 발걸음을 눈으로 따라갔다. 그녀가 탄 엘리베이터 문이 다 닫힐 때까지 나는 망부석처럼 복도에 서 있었다. 유축기와 젖병을 든 채로.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그렇게 한참을 복도에 멍하니 서 있었다. 손에 들린 젖병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닫혀 있는 신생아실 문을 쳐다보았다. 아. 진선미 산모를 마주하는 내내 삼키고 있던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내게 젖병을 건네던 그녀의 얼굴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녀의 젖은 눈이 자꾸만 떠올라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져 왔다. 쥐고 있던 젖병의 온기가 느껴졌다.
  신생아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강 실장과 남 선생님이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벽면에 일렬로 늘어선 아기 요람 속 아기들이 보였다. 조용히 자고 있는 아기들이 보였다. 누워있는 아기들 중 몇 명은 셀프로 분유를 먹고 있었다. 아직 안 갔어요? 남 선생님이 떡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강 실장이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진선미 산모님이 이거 가져다주러 오셨더라고요. 나는 유축기와 젖병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왜 이렇게 또 늦게 가져와. 대여해 간 지가 언젠데. 강 실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커피를 홀짝였다. 저기 올려놔요. 내가 이따가 세척 해놓게. 남 선생님이 싱크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진선미 산모 아기의 개인 냉장고로 향했다. 들고 있던 젖병을 냉장고 안으로 집어넣었다. 아기는 자고 있었다.
  유축기를 들고 싱크대로 향했다. 싱크대 위로 반쯤 열려 있는 창문을 조금만 남기고 닫았다. 강 실장과 남 선생님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놓인 프리지아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노랗고 둥근 꽃잎이 고름 같았다. 조화는 노랗게 곪은 꽃잎을 키워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분유를 먹고 있는 아기들을 살펴보았다. 분유를 흘리거나 캑캑거리는 아기는 없었다. 강 실장과 남 선생님은 여전히 수다를 떨고 있었다. 머리 한쪽이 지끈거렸다.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신생아실을 나왔다.
  병원 밖으로 나오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을 맞으니 내 몸에서 나는 분유 냄새가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차가운 바깥 공기가 내 몸의 열기를 식혀주는 것 같았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신생아실 특유의 아기 냄새가 차가운 공기와 함께 콧속 깊이 들어왔다. 내리쬐는 햇볕이 따뜻했다. 긴장이 풀렸는지 참았던 졸음이 쏟아져 내렸다. 몸에 힘이 죽 빠졌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집 안은 조용했다. 시계는 벌써 오후 4시를 지나고 있었다. 침대에 온수 매트를 미리 켜놓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거울을 바라보았다. 눈가에 주름이 가득했다. 허연 얼굴 때문에 새카만 다크서클이 더욱 도드라졌다. 핏기 없는 입술은 메말라 있었다. 문득 진선미 산모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의 표정이 떠올라 손을 씻다 말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의 피곤한 눈동자를 마주했다. 어쩐지 진선미 산모의 얼굴이 내 얼굴과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늘어지게 하품하자 건조한 입술 한쪽이 갈라졌다. 갈라진 틈새로 빨간 피가 차올랐다. 새끼손가락으로 립밤을 가득 떠 갈라진 입술 위에 대충 얹었다. 묵직한 립밤이 일어난 각질을 차분히 눌렀다. 삐져나온 잔머리가 지저분했다. 헐거워진 머리망을 풀었다.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가슴까지 흘러내렸다. 푸석한 머리카락을 만지며 이번 주말에는 꼭 미용실에 가겠다고 다짐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미리 켜 놓은 온수 매트 때문에 이불 속에는 뜨끈한 온기가 가득했다. 묵직했던 눈이 저절로 감겼다. 매일 집과 병원만 반복해서 다니다 보니, 베개에서도 아기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포근한 냄새에 피식하고 힘없는 미소가 새어 나왔다. 굳게 감긴 눈을 더 이상 뜰 수가 없었다. 선생님.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선생님. 목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왔다. 목소리가 커질수록 몸이 점점 굳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 가위구나. 바로 발가락에 힘을 주었다. 나이트 근무를 연속으로 뛴 다음이면 가끔 가위에 눌리곤 했다.
  굳게 감긴 두 눈은 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 누군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곧이어 눈앞에 흐릿한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듯한 여자가 내게 다가왔다. 하얀색 수면 양말 위로 보이는 얇은 다리.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클. 쑥 들어가 그늘져 있는 눈. 그녀의 마른 팔이 내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들었다. 진선미 산모였다. 그녀가 얼굴을 내 코앞까지 들이밀며 말했다. 우리 애기 좀 잘 봐주세요. 다 내가 잘못한 건데…. 그녀가 흐느끼며 말했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점점 숨이 가빠져 왔다. 내 팔을 쥔 그녀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양팔이 저릿해 왔다. 그녀의 손가락 뼈마디 하나하나가 팔뚝에 선명하게 느껴졌다. “내 애기가 뭘 잘못했는데!” 그녀는 내 코에 자신의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서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혼탁한 눈동자가 나를 노려봤다. 흘러내린 그녀의 머리카락이 내 양 볼에 닿았다. 처음 보는 진선미 산모의 표정이었다. 꿈속의 나는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나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나는 그녀의 손에 꼼짝없이 잡혀 신음했다. 어디선가 음악이 흘러나왔다. 소리가 너무 작아 무슨 음악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계속해서 발가락에 힘을 주던 그때, 나는 눈을 번쩍 뜨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불이 꺼진 집안은 어두웠다. 나는 참고 있던 숨을 몰아쉬었다. 몸이 뜨거웠다. 침대는 내가 흘린 땀으로 축축했다. 나는 덮고 있던 이불을 발로 찼다. 나는 분명 꿈에서 깼는데, 음악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떨리는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등 뒤에서 무언가 빛을 내고 있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뒤돌았다. 빛을 내고 있던 건 다름 아닌 핸드폰이었다. 강 실장님. 핸드폰에 적힌 네 글자를 바라보았다. 밤 10시 34분. 여보세요…. 떨리는 숨을 고르며 전화를 받았다. 이 선생 진선미 산모 아기 배꼽 잃어버렸어? 핸드폰 너머로 강 실장의 격양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나는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다짜고짜 배꼽이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 선생 오늘 데이였잖아? 애 기저귀 갈았을 거 아냐? 강 실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갈긴 갈았죠. 나는 화장실 불을 켜며 말했다. 이 선생 지금 잤어? 됐고, 빨리 와봐. 강 실장은 짜증 섞인 말을 뱉으며 전화를 끊었다. 끊어진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올랐다. 거울을 바라보았다. 양볼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진선미 산모의 머리카락 감촉이 아직 볼에 남아 있는 거 같아 소름이 돋았다. 찬물을 틀어 세수를 했다. 땀에 젖은 머리를 질끈 묶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는 젖은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냈다. 강 실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전화 올 일이 없는 시간이었다. 대충 벗어놓았던 추리닝을 꺼내 입고 서둘러 택시를 잡았다.
  택시에 타 창문을 살짝 내렸다. 차가운 밤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입고 있던 추리닝 지퍼를 턱 끝까지 올렸다. 도로에는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하품하자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졸음이 몰려오는 것도 사실이었다. 손등으로 피곤한 눈을 비볐다. 휴대폰이 울렸다. 강 실장의 전화였다. 강 실장의 통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 전원 버튼을 눌렀다. 병원으로 향하는 도로는 뻥 뚫려 있었다.

  병원 앞에 내리자마자, 나는 서둘러 신생아실로 올라갔다. 커튼을 친 신생아실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나는 신생아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이 선생, 왜 이제 와. 다들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강 실장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강 실장과 남 선생님도 방금 막 도착한 눈치였다. 나이트 근무 중이던 다른 선생님 두 분은 심각한 표정으로 옆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인데요? 나는 잠들어 있는 아기들을 살피며 물었다. 출근하자마자 애들 기저귀를 가는데…. 나이트 근무 중이던 박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진선미 산모 아기 배꼽이 이미 사라진 상태였어요.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라니까요. 이제 어떡하죠? 박 선생님과 함께 나이트 근무를 하던 김 선생님이 말했다. 왜 하필 진선미 산모인지. 꿈속에서 봤던 그녀의 혼탁한 눈동자가 떠올라 목덜미가 저릿해졌다. 아기의 배꼽은 산모들에게 중요한 존재였다. 새까맣게 말라비틀어진 탯줄을 배꼽이라고 하는데, 시간 지나 떨어진다고 그냥 가져다 버리는 게 아니었다. 꼼꼼히 챙겨 산모에게 전달해야 하는 존재였다. 그런데, 그걸 잃어버렸다니. 산모가 고소하거나 높은 금액의 합의금을 불러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퇴근길 복도에서 진선미 산모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배꼽….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이 선생, 잘 생각해봐. 기저귀 갈다가 같이 버려버린 거 아니야?” 강 실장이 한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순간,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저는 데이 근무인데 제가 잃어버렸다고 한들 이브닝 근무자들이 모를 수가 있나요? 나도 모르게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나는 흠칫 놀라 잠든 아기들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럼 지금 나랑 남 선생님이 잃어버렸다는 거야? 강 실장이 눈을 흘기며 물었다. 제가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나는 강 실장의 주름진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다른 선생님들이 강 실장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 선생님 왜 화를 내고 그래 갑자기…. 물어볼 수도 있지. 남 선생님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전화했을 때 자느라 정신이 없더구먼, 배꼽 잃어버린 거 진짜 아니야? 말을 뱉는 강 실장의 입꼬리가 삐딱했다. 강 실장이 그 말을 하는 순간 느꼈다. 이 사람 나를 지금 불러낸 이유가 있었다. 너무 화가 나 꽉 쥔 주먹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노란 프리지아가 보였다. 노랗게 곪은 이파리를 바라보았다. 창밖에 내리깔린 어둠 때문인지 노란 꽃잎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어쩐지 그 잎을 탁 터트려버리고 싶었다. 신생아실은 조용했다. 실장님, 저 오늘 데이 뛸 때, 진선미 산모 아기 기저귀 딱 한 번 갈았습니다. 그때 배꼽 붙어 있는 거 확인했고요. 이브닝 때 아기 목욕 시키잖아요. 그때 잃어버린 거 아니에요? 강 실장의 눈을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내 말을 듣던 나이트 담당 선생님들이 강 실장의 눈치를 살폈다. 남 선생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한숨만 내쉬었다. 제가 일하면서 실수한 적 있나요?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없어서요. 내 말을 듣는 강 실장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리고 경력도 없는 사람이 들어와서 마음에 안 드시는 거 아는데요. 그래도 공과 사는 구분 좀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실장님. ‘실장님’ 세 글자에 힘이 들어갔다. 정 못 믿겠으면 요람 웹캠 돌려보세요. 나는 강 실장과 선생님들을 뒤로한 채 신생아실을 걸어 나왔다. 말이 쉼 없이 쏟아져 나왔다. 퇴근부터 강 실장의 호출까지, 오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간 건지 모르겠다.
  나는 천천히 걸어 병원을 나왔다. 유축기와 젖병을 건네던 진선미 산모의 얼굴과 꿈속에서 내 팔을 흔들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는 배꼽까지.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차가운 밤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잘못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왜 그렇게 혼자 불안했던 건지. 내 말을 듣고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던 강 실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꼭 깨물고 있던 입술 사이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왜인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들이마셨던 숨을 다시 내쉬었다. 갑갑하게 막혀있던 속이 뻥 뚫린 것만 같았다. 가슴 한구석에서 무언가 일렁였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거리를 걸었다. 노란 초승달이 흘러가는 뭉게구름 뒤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열을 내느라 뜨거워진 얼굴이 천천히 식어갔다.

 

소금꽃

  염전에 수확철이 다가오고 있었다. 따갑기만 했던 봄 햇볕은 사라지고 뜨거운 여름 해가 염전을 끓이고 있다. 겨우내 잠잠했던 염전도 슬며시 소금기를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부터 소금 알갱이들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때, 주둥이가 넓적한 작대기로 염전 바닥을 슥슥 긁어주면 염전은 뽀얀 알갱이들을 툭툭 토해내기 시작한다. 양팔에 힘을 실어 작대기 질을 하자 염전 바닥에 얇게 쌓인 소금 알갱이들이 작대기를 타고 내 양손에 느껴진다.
  겨우내 얼어 있던 결정체들이 토실토실한 알갱이가 되어 이제는 서걱서걱 소리도 낸다. 염전은 그 오랜 시간을 견디어 냈다. 그 모습이 마치 아이를 낳는 어머니의 모습 같다. 그래, 이 커다란 염전은 어머니이자 자궁이고 차랑거리는 바닷물은 양수이며 소금은 그녀의 자식이다. 그럼 그 소금을 꺼내주는 나는 무엇인가. 쓸데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문득 나의 어머니가 생각나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뭉게구름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햇빛을 염전은 그대로 받아내고 있었다. 이물질들을 다 걷어내야지 상품 가격이 올라가는 거여. 할머니는 소금 더미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까만 이물질을 골라내며 말했다. 굵직한 소금 더미를 헤집는 할머니의 손이 소금에 절어 퉁퉁 부어 있었다. 오늘따라 할머니의 주름진 손이 더욱 까매 보였다. 내리쬐는 햇볕이 할머니의 손등을 태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일할 때는 장갑 좀 끼시라니까. 나는 염전 모서리에 서서 짜증 섞인 말을 내뱉는다. 장갑 끼면 소금이 장갑에 다 달라붙는다. 할머니는 담담한 말투로 계속해서 이물질을 골라낸다. 이깟 소금이 뭐라고.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하이고, 지영이가 할머니 생각을 끔찍이 하네. 할머니 옆에서 같이 이물질을 골라내던 김 씨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김 씨 아주머니가 씩 웃자, 축 처진 볼살과 주름진 눈꼬리가 더욱 도드라졌다. 김 씨 아주머니의 높은 콧대는 이미 피부가 한 겹 벗겨져 뻘건 속살이 드러나 있었다. 내리쬐는 햇볕이 야속했다. 그늘이라고는 일꾼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굽은 등을 따라 누운 그림자가 전부였다. 그들의 굽은 등 뒤에 숨은 그림자는 땀에 젖은 그들을 약 올리는 것 같았다.
  네 아빠는 언제 나온대냐, 맘잡고 일하러 왔나 했더니 아직도 퍼질러 잔다는 말이냐. 할머니가 코끝에 걸쳐 있는 돋보기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 할머니가 밀어 올린 돋보기안경은 콧잔등의 땀방울 때문에 다시 흘러내렸다. 할머니의 안경은 종일 흘러내렸다 다시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할머니가 숨을 내쉴 때마다 안경에 습기가 찼다. 허옇게 습기가 찬 안경도 소금을 만들어낼 것만 같았다.
  저기 오네. 김 씨 아주머니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염전 입구를 가리켰다. 김 씨 아주머니의 새카만 손가락이 입구에서 어슬렁대는 아버지를 가리켰다.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염전 입구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뜨거운 햇볕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염전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할머니와 김 씨 아주머니의 새카만 얼굴 탓일까, 아버지의 흰 피부가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아버지는 오른손으로 햇볕을 가리고 왼손으로 작대기를 집었다. 나는 들고 있던 작대기로 염전 바닥을 슥슥 밀며 소금꽃을 걷어냈다. 장화 위로 찰랑거리는 바닷물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렇게 소금꽃을 걷어내고 있을 때면 짠 바다향이 피어올라 코를 절이는 것 같았다. 뜨거운 햇빛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정수리가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들이 찰랑거리는 바닷물 위로 똑똑 떨어졌다. 떨어진 땀방울도 염전에서 소금이 될 것 같았다.
  옆에 서 있는 아버지가 나를 슬쩍 보며 따라 했다. 작대기 질이 왜 이렇게 시원찮냐, 이 소금꽃들을 다 걷어내야 바닥에 잠들어 있는 소금이 크는 거여. 쭈그려 앉아 이물질을 걷어내던 할머니가 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일을 하는 할머니와 아버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늘 한 조각 비어 있던 퍼즐이 완성된 것 같아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네 아빠 왔으니까 지영이 너는 들어가 숙제나 해라. 할머니가 새하얀 소금 더미에 한 손을 얹은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싫어, 이거 다할 때까지 할머니 안 들어올 거잖아. 나는 눈으로 흘러 들어간 땀방울을 닦아내며 벌겋게 부어오른 할머니의 손을 바라보았다. 할머니의 벌건 손이 소금에 자글자글 절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물질은 삼십 분만 솎아내도 손끝이 절어 슬슬 아파져 오는데, 할머니는 어떻게 두 시간 가까이 꿈쩍 않고 앉아 솎아내는 걸까.
  한참을 가만히 앉아 이물질을 솎아내던 할머니가 손목과 목을 돌리며 힘겨운 신음을 흘렸다. 할머니의 목과 어깨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파스들은 땀에 젖어 이미 반쯤 떨어진 지 오래였다. 할머니가 손목을 돌리자 손목에 붙어 있던 파스들이 벗겨질 것처럼 움직였다. 그러게 이 큰 염전을 엄마 혼자 어떻게 관리하려고 그래. 이제 아부지도 없는데. 아버지가 할머니가 솎아 놓은 소금을 수레에 퍼 담으며 말했다. 할머니의 목과 어깨, 그리고 손목에 붙은 파스를 봤나 보다.
  완전히 내려온 거 아니여? 아버지의 말에 김 씨 아주머니가 구부리고 있던 허리를 펴며 물었다. 김 씨 아주머니의 물음에 아버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 그냥 염전 팔자니까. 이렇게 중노동 해봤자 엄마 몸만 망가져. 왜 사서 고생을 해. 요즘은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라고. 입을 꾹 다물고 소금만 푸던 아버지가 할머니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할머니는 아버지의 말을 외면한 채 계속해서 이물질을 골라냈다. 할머니의 표정은 어두웠지만, 그래도 나는 아버지가 내려와서 좋았다.
  나는 아버지가 수레에 퍼담고 있는 소금들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삽에 소복이 담겨 있는 소금은 뜨뜻한 고봉밥 같기도 하고, 차가운 우유 빙수 같기도 했다. 신안에 내려오기 전, 친구들과 먹었던 우유 빙수가 떠올랐다. 마른 입안에 달짝지근한 연유 맛이 감도는 것 같았다. 마른침을 삼키던 나는 이윽고 불어오는 짠 바닷바람에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삽에 가득 담긴 소금들이 수레 위로 쏟아질 때는 꼭 함박눈이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쏟아지는 소금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축축하게 젖은 등 뒤로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그건 상상일 뿐, 내 더위를 식히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내리쬐는 햇볕이 할머니의 굽은 등 뒤로 그림자를 만들었다. 땀에 젖은 옷 위로 튀어나온 할머니의 등뼈가 안쓰러워 보였다.

  결국, 나는 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내쫓기듯 염전을 빠져나왔다. 촉촉이 젖은 장화를 신고 마른 땅 위를 걸어갔다. 메마른 모랫바닥을 열 걸음도 채 걸어가기 전에 장화에 묻어 있던 물기는 서서히 말라갔다. 염전에서 불어오는 더운 바람이 몸에 닿자, 내 몸에서 나는 짠 내가 코를 찔렀다. 염전 모퉁이에 서서 작대기 질 몇 번 한 게 전부인데, 내 몸에서는 마치 소금밭에서 뒹군 것 같은 찝찌름한 냄새가 났다.
  묵직한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에서 모래 먼지가 피어올랐다. 한참을 걸어가던 나는 뒤를 돌아 염전을 바라보았다. 조그마한 점이 되어버린 할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염전을 등지고 걸어갔다. 어쩐지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
  집 대문은 나를 반기듯 활짝 열려 있었다. 아버지가 열어놓고 나온 것임이 틀림없었다. 나올 때는 잠그고 나오라니까. 또 할머니한테 한 소리 들으려고. 나는 대문을 꼭 닫으며 중얼거렸다. 오래되어 초록색 페인트가 다 벗겨진 철문은 삐걱하며 힘겨운 신음을 토했다. 나는 신고 있던 장화를 마당 한쪽에 가지런히 벗어놓고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불이 꺼진 집안은 조용했다. 나는 입고 있던 티셔츠와 바지부터 속옷까지 훌러덩 벗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벗은 옷가지들을 돌돌 뭉쳐 세탁기 속에 집어넣고 샤워기 물을 틀었다. 머리를 감으며 쪼글쪼글 불은 발을 바라보았다. 샴푸 물이 흘러가는 욕실 타일에는 새카만 곰팡이가 질펀하게 누워있었다.
  마른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탈탈 털며 내 방으로 향했다. 젖은 머리카락은 어깨 언저리에 지도를 그렸다. 책상 위에는 아침에 하려다 만 방학 숙제가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책상에 앉아 영어단어를 외우기 시작했다. 땀 싹 씻어내고 바닥에 앉아 있자니 하품이 새어 나왔다. 영어단어를 한 페이지도 다 외우지 못했는데, 자꾸만 눈꺼풀이 감겼다. 결국, 숙제는 저녁에 일어나서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방구석으로 기어가 아침에 개어놓은 이불을 다시 주섬주섬 폈다. 이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단잠에 빠져 있던 나는 코끝을 간지럽히는 고소한 냄새에 슬며시 눈이 떠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매몰차게 내리쬐던 햇볕은 사라지고, 창밖으로는 옅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피곤한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었다.
  할머니가 부엌에서 된장국을 국그릇에 담고 있었다. 아버지는 밥그릇 가득 담겨 있는 흰 쌀밥을 한 숟갈 크게 떠먹었다. 지영이 일어났냐. 아버지가 김치를 입으로 가져가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아침까지 쭉 자지 뭘 일어났냐. 아버지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배고파.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거실로 나왔다. 국이랑 같이 먹어야지. 할머니가 된장국과 굴비 두 마리가 담긴 접시를 들고 오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노릇노릇 맛있게 구워진 굴비가 입을 쩍 벌리고 누워있었다. 웬 굴비여. 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고소한 굴비 냄새에 저절로 입안에 침이 고였다.
  할머니는 돋보기안경을 다시 쓰더니 접시 한쪽에 굴비 살을 발라 두었다. 나는 할머니 옆에 앉아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굴비를 바라보았다. 젓가락질을 하는 할머니의 손목에는 네모난 파스가 새로 붙어 있었다. 할머니의 몸에 붙어 있는 파스는 고소한 굴비 냄새 사이로 싸한 파스 향을 풍기고 있었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발라 놓은 굴비 살이 쌓이기도 전에 입으로 가져가기 바빴다. 치, 나는 아버지의 입으로만 들어가는 굴비를 바라보며 아버지가 참 얄밉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을 발라 아버지의 밥 위에 얹어 주기 바빴다.
  나는 꼬르륵 소리가 나는 배를 문질렀다. 하지만 할머니는 나를 본 척도 하지 않았다. 그때, 아버지의 숟가락 위로 향하던 굴비의 살점 하나가 상 위로 떨어졌다. 나는 그 살점을 얼른 손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예끼, 아버지 밥상에 손 데는 거 아니여. 입안에 있는 작은 살점을 채 삼키기도 전에 할머니가 언성을 높였다. 처음 보는 할머니의 모습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늘 나를 먼저 챙겨주던 할머니였는데, 왜인지 할머니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아버지는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럴 때, 지영이도 먹으라고 한마디 해주면 좋으련만, 아버지는 쩝쩝거리며 밥만 먹기 바빴다.
  나는 서러운 마음이 들어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목구멍으로 채 넘어가지 못한 살점이 썼다. 방문을 꼭 닫고 책상에 앉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영어단어를 외우려는데, 서러운 마음이 북받쳤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입술을 꾹 깨물고 영어단어를 내려다봤지만,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이 책상에 떨어졌다. 처음으로 할머니가 미웠다. 눈에 일렁이는 눈물 때문에 더는 숙제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불 속으로 다시 기어 들어갔다.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한참을 멍하니 누워있는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불속에 들어가 있던 나는 조용히 숨을 죽였다. 할머니의 목소리와 텔레비전 소리에 섞여 들리는 것 같았다. 넌 어째 하는 일마다 그 모양이냐. 지영이 고등학생 되는 거 금방이여. 정신 좀 차려. 할머니의 짙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조용히 방문 앞으로 기어가 문 가까이 귀를 댔다.
  쓸데없는 걱정 좀 그만해. 하나뿐인 내 딸 대학까지는 가르쳐. 아버지의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지영이 학비 대면서 학원꺼정 어떻게 가르칠 거여. 잔말 말고 여기서 염전 일이나 배워. 할머니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게 진작 염전 팔아서 엄마가 돈 좀 보태줬으면 이렇게까지 안 됐지. 아버지가 발끈했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굳게 닫힌 입술 사이로 옅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뭐여? 나라도 염전을 지키고 있어야 지영이 대학을 보낼 거 아니냐. 할머니가 연신 아버지의 등짝을 후려친다.
할머니의 말을 듣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만 같았다. 할머니가 그토록 염전에 집착하는 이유를 이제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이유를 알고 있음에도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위해 중노동을 하는 할머니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마음 한편에 자리한 부담감이 심장을 짓이기는 것만 같았다. 내 방은 할머니의 한숨만큼이나 짙은 공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방문을 밀고 나갔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며 겉옷을 들고 일어섰다. 어디가 이놈아, 또 술 먹으러 가냐. 지영아 네 아빠 좀 말려봐라. 할머니의 퉁퉁 부은 주먹이 아버지의 다리를 힘없이 때린다. 현관으로 향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울컥 치솟았다. 어쩐지 배신감이 들어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목이 메어왔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아버지의 등을 떠밀었다. 한순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아버지 가. 서울 가버려. 나랑 할머니랑만 살게, 아버지는 다시 가. 눈물이 방울방울 바닥으로 떨어졌다.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잠시 주저하다 아버지를 따라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새끼강아지가 어미를 쫓듯이. 대문 밖에는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대문 앞에 서서, 더 가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서, 멀어져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보름달은 흘러가는 구름 뒤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홀로 빛을 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염전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어둠이 깔린 염전 위로 달빛이 뿌려져 소금꽃이 만발한 것 같았다. 희미해져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간신히 맞춘 퍼즐이 도로 떨어진 것만 같았다. 나는 멀어져 가는 아버지를 뒤로한 채 다시 집으로 뛰어갔다. 흘려도 흘려도 자꾸만 샘솟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습한 바람이 불어왔다. 소금에 절어진 할머니의 살 내음이 가슴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나는 꺼이꺼이 울며 집으로 들어가 대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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