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윤서연

  k가 처음 살았던 집은 그랬다. 나무판자 위에 두꺼운 장판을 덧대어 밟기만 해도 부러질 듯이 아슬했던 곳. 불규칙하게 들어오는 보일러는 장판에 멍 같은 자국을 남겼고 k는 그곳에 발을 대고 자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만큼은 두꺼운 극세사 이불에 포근하게 안겨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침이 되면 추위가 몰려왔고 그 탓에 수족냉증이 심하게 들었지만, k는 잠드는 시간이 좋았다. 그래서 k는 자고 또 잤다. 하루에만 서너 번씩 잠들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 사실을 몰랐다. 온종일 조는 k를 보며 그저 집중력이 조금 부족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아이가 부끄러웠는지, 그녀는 공개 수업에도 k를 혼자 학교에 보내곤 했다. k는 한 번도 칠판 앞에서 문제를 풀어본 적이 없다.
  가끔 k는 그곳에 머리를 대고 잠들기도 했는데, 한 번은 너무 깊게 잠든 나머지 뒤통수가 뜨거워지는 것도 모르고 아주 오랜 잠에 빠진 적이 있었다. k는 꿈에서 문제를 풀고 있었다. 칠판에 쓰인 숫자들이 한 방향으로 빙글빙글 돌았다. 멀미 직전의 느낌이었다. 그는 그가 쥐고 있는 분필이 무슨 색인지 알 수 없었다. 연필을 쥐듯이 쥐어야 하는 건지, 주걱을 쥐듯이 쥐어야 하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칠판으로 나가 문제를 풀어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분필은 k가 칠판에 대는 순간 두 동강 났다. 그리고 꿈에서 깼을 때, 그는 악몽이라도 꾼 듯이 경직된 몸을 볼 수 있었다. 하늘을 향해 뻗은 발과 손이 곧 땅바닥에서 떨어질 듯이 솟아 있었다. 중력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그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k는 자신이 실금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뒤통수가 그을릴 뻔한 그는 밤새 두통을 심하게 앓았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k의 뒤통수가 아닌 이마에 젖은 수건을 올려두었다.
  집구석도 네 아비도 아주 제멋대로구나.
  그녀는 장판이 탄 자국 위를 열심히 걸레질하며 말했다. 오래된 복숭아 씨앗처럼 표면이 주름진 모양으로 그을린 곳은 지워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물기가 닿을수록 더욱 짙어졌다. k는 그럴 때마다 발을 더 깊숙이 이불 속으로 파묻었다. 깊이, 장판 위로 남은 주름이 자신의 지문과 맞물리도록 더 깊게. k의 발은 그 안에서 여러 번 오므렸다 펴지기를 반복했다. 여름에도 그는 그곳에 머리를 대고 잤다. 옅게 올라오는 탄내가 방 안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려 주는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k는 아버지가 집을 나가던 날 완전히 자신의 방문을 걸어 잠갔다. 방 안에는 k와 구멍뿐이었다.
  그러다 그의 발이 구멍 속으로 빠져 버린 건 그가 열네 살이 됐을 무렵이었다. 그가 잠 든 사이 보일러 선이 외부에 노출되며 화재를 일으킨 것이다. k는 그날을 기억한다. 그는 분명 학교에 다녀왔고, 그날은 가정 방문 날이었으므로 일찍이 집으로 돌아왔다. 선생님은 k에게 저녁 시간이 되기 전에 방문하겠다고 했다. k는 자신의 어머니가 상담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열 시 전에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k는 대문 고리를 바짝 당겨 잠금장치를 걸었다. 사자 모양 문고리가 딸각하는 소리와 함께 나란히 대문 앞에 자리했다. k는 대문을 발로 살짝 차보며 킥킥 웃었다. 그리고 보일러를 켠 뒤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거멓다 못해 곰팡이가 핀 듯 바래버린 자리에 자신의 발을 대고. 오래 숙면을 취하지 못해 퀭하게 내려앉은 다크서클이 k의 눈을 집어삼킬 듯이 짙어져 있었다. k는 몇 번 눈을 깜빡이다가 완전히 감았다. 거기까지가 k의 기억이어야 했다.
  k는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다. 똑똑히 봤다고. 순간 자신의 다리와 팔이 위로 솟았다는 것을. 새우처럼 말리려던 몸에서 잠깐 자신이 빠져나왔다는 사실을. 멀찍이 떨어져서 내려다본 k의 얼굴은 아주 평온해서 주변이 고요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고. 분명 k의 다리는 누군가 잡아당기고 있는 것처럼 들어 올려져 있었는데, 언제 구멍으로 빠져버린 것일까. k의 어머니는 한껏 머리를 볶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문 너머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보았다. 사자가 뿜어내는 콧김 같다고 했나. k는 그 말을 떠올릴 때면 여지없이 킥킥 웃게 됐다. 그녀는 자신의 허리까지 오는 담벼락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곤히 잠들어 있는 k를 끌고 바깥으로 나왔다. 이불과 함께 질질 끌려가는 k의 몸은 가벼웠고, 너무 가벼워서 재가 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k의 첫 번째 집은 목조 갈라지는 소리 한 번 나지 않고 새카맣게 불탔다. 어디가 k의 방이었는지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었다. 그건 k의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k는 자신이 수술대에 올라갔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잠들어 있었다. k는 자신이 깊은 잠을 자서 아주 개운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k는 자주 구멍에 빠졌다. k는 무릎까지 괴사한 자신의 다리를 수술하는 동안 여러 번 떨어지는 꿈을 꿨고 일어났을 땐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서 끊임없이 추락하다 못해 다리가 분질러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k는 발을 딛는 감각을 기억했다. 그렇기 때문에 k는 쉽게 어딘가에서 떨어졌고 힘 한번 쓸 수 없이 그 높이를 체감해야 했다. k는 손을 뻗어 실밥이 튀어나온 부분을 쓰다듬었다. 머리카락이 비죽이 선 듯이 바느질된 자리는 구멍에 빠지기 직전의 느낌과 비슷했다. 내가 식물이었다면 물이라도 꽂아줬을 텐데. 자라라고. k는 그런 생각을 하며 킥킥 웃었다. k는 웃음을 잃지 않는 자신이 자랑스럽기까지 한다고 생각했다.
  k의 어머니는 격주로 병원에 방문했다. 그녀는 올 때마다 k의 다리를 덮고 있는 이불을 들춰봤고, k는 그것이 부끄러워 다리를 꼬아보았지만 더 이상 꼴 수 있는 다리가 없어 가만히 창밖을 내다볼 뿐이었다. 절단 부위가 아문 뒤에는 휠체어를 타야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다. 휠체어를 미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학교와 집 오가기를 반복하며 제대로 자라지 못한 근육은 퇴화된 듯이 쪼그라들어 k의 팔에 붙어 있었다. k의 어머니는 휠체어 손잡이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k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배출할 것도 없어 보이는 작은 몸에서 땀이 마를 날이 없었다. 제힘으로 휠체어를 꽤 능숙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 k는 그녀에게 퇴원하게 해줄 것을 부탁했다.
  안 돼.
  그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왜?
  또 네가 멍청한 짓을 하면 어쩌니.
  내가?
  그래.
  내가?
  k는 작고 얇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의자에 앉아 아침부터 k의 행동을 지켜보던 그녀는 가방을 챙겨 병실 밖으로 나갔다. 저 여자 가면 나 또 기다려야 되는 거잖아. k는 전부 다 차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링겔대든, 다리를 감춰줄 이불이든, 휠체어든 상관없으니까 다 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k에겐 무언가를 차버릴 다리가 남아 있지 않았다. k는 골반과 상체를 움직여 비스듬히 누웠다. k는 자신이 정말 멍청했던 것일까 생각하다가 잠들었다. 난 그저 그곳이 따뜻했을 뿐인데. k는 처음으로 떨어지는 꿈을 꾸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은 어둡고 서늘했으며, 빛이라곤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k는 그곳이 구멍 속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k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병원에 자주 오지 않았지만 격주에 한 번씩 방문하는 그녀만의 규칙은 어기지 않았고 k는 그녀가 발길을 끊은 지 한 달이 됐을 무렵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예감했다. 그는 그 소식을 병원비가 바닥났을 때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이토록 나를 병원에 가둬두려고 했던 것일까.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k는 그런 것 따윈 궁금하지 않았다. 완납 서류를 가지고 바깥으로 나가던 날, k는 이곳이 진짜 내가 알던 세상이 맞나 쉬지 않고 두리번거렸다.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표면에서 휠체어가 제멋대로 미끄러졌다. k는 아주 오랜만에 울었다. 엄마, 소리를 내며.

*

  k는 죽을 때까지도 자신이 구멍에 빠진 상태라고 생각했다. 여긴 너무 어둡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해서 분명 구멍 속일 거라고. 꿈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k는 첫 번째 집의 구멍을 떠올린다. 종이에 불이 옮겨붙듯이 타오른 벽이 한순간에 내려앉은 집. 이젠 집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그곳을. 그 집에 있던 구멍은 아주 색이 짙었지. 그래서 깊었고 그 깊이감은 k가 몸을 담그기 충분했다. k의 다리는 여전히 구멍 속에 있다. 아주 섬세하게 갈라진 주름들이 내 발을 먹어버린 거야.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해. k는 언젠가 이런 말을 혼자 병실에 앉아 중얼거린 적이 있었다. 뭐랄까. 운명 같다. 어쩌면 구멍도 엄마가 필요했을지 모르지. 늙을수록 닮아가는 거야, 구멍과.
  있잖아, 엄마. 구멍이 없었다면…….
  k는 몸을 버둥거린다. 고개를, 허리를, 다리를. 한 번 더 몸을 버둥거린다. 곧 몸을 뒤집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옆을 돌아보았을 때, 바퀴벌레 한 마리가 k의 옆을 지나간다.
  바퀴벌레가 다리를 움직여 작은 틈으로 들어간다. 언제 구멍 속에 틈이 생긴 거지. 저 안에 백 마리쯤은 더 있다는 소리인데, 구멍 바깥의 세상은 생각보다 더 클 것 같다. 저 미세한 구멍 속에 균열이 생긴다면. 그렇게 이 구멍이 산산조각이 나고 다시는 구멍에 빠지는 일을 반복하지 않게 된다면.
  k는 땅에 손을 짚는다. 그리고 온몸에 힘을 주어 자신의 몸을 앞으로 이동시킨다. 잠깐의 움직임에도 얼굴이 타들어 갈 것처럼 뜨거워진다. 몸통을 지탱하느라 꼿꼿하게 뻗은 팔이 저려온다. 마침내 바퀴벌레가 들어간 틈 앞에 도달한 k가 쓰러지듯이 몸을 틈 쪽으로 뉜다. 그리고 잘 보이지도 않는, 점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틈 앞에 머리를 디민다. 쿵, 쿵. 벽에 머리를 박는 소리가 들리고 구멍 속이 요란하게 진동하기 시작한다. k는 계속해서 자신의 머리를 벽에 부딪힌다. 여전히 틈 주변은 고요하고, 구멍 속은 k 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어둡다. 곧 구멍은 k도 보이지 않게끔 모습을 감춘다. k는 그곳이 익숙하다고 느낀다. 소멸되어가는 틈을 따라 k의 눈이 감긴다.

윤서연,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2학년
200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작가 인터뷰

Q. 작품 속에서 K가 구멍에 몸을 담그는 것처럼 작가님의 구멍, 작가님의 틈은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 틈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도 궁금합니다.

A. 구멍에 빠지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나오기 힘들죠.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요. 어쩌면 평생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고요. 구멍은 각자에게 다른 양상으로 형성된다고 생각하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스스로에게 엄격해질 때 자주 혼자만의 생각에 갇히는 것 같아요. 가끔은 자진하여 걸어들어갈 때도 있고요. 하지만 보통은 자기 연민에 빠지기 전에 나오려고 해요. k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모든 구멍은 한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Q. 구멍에서 주목할 점은 주인공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K, 그의 어머니 등으로만 나오는 인물인데, 소설의 내용과 조화롭게 섞여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K라는 건 단순히 이름이 ‘ㄱ’로 시작해서 그렇게 설정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윤서연 작가님에게 소설 속 ‘이름’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습니다.

A. 사실 k라는 이름에 깊은 뜻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이것은 특정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시작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나온 것이 아닐까 싶어요.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k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이어지지만, k가 느꼈을 감정만큼은 누구에게나 해당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에게 있어 소설 속 이름이란 사람을 사귀는 과정 같아요. 아무리 처음에 설정한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결국은 바꿀 수 없더라고요. 이래서 정이 무서운 건가봐요.

Q. 소설을 읽으면서 K가 빠지던 구멍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싱크홀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무언가라서 자해를 한 것은 아닌지 궁금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소설에서 구멍에 대해 이미하는 것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A. k가 빠지던 구멍을 어느것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잡히지 않는 허상의 구멍 속으로 빠지는 k를 바깥에서 볼 수 없는 것처럼요. 하지만 모든 것은 자신이 나고 자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더 자세히 말하자면 구멍은 결핍의 형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k야 처음엔 구멍을 도피의 수단으로 썼을 수 있지만, 자랄수록 잘못된 것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무엇이 잘못된 건지는 모르는 것처럼 말이죠. 결핍이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찾아와 저 밑에 뿌리처럼 자리잡는 것이라는 말을 이따금 실감하게 돼요. 무관심과 방치라는 개념에 대해 재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라는 말에 조금은 반발해보고 싶기도 했어요. 누구에게나 하나쯤의 결핍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요.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