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나눠 먹은 것

박가연

  딸은 어릴 적부터 아토피가 심했다. 이유식을 시작할 무렵부터 온몸에 열이 오르더니 그대로 아토피가 생겼다. 그때부터 나는 딸의 입에 들어갈 음식재료를 직접 골라 만들기 시작했다. 딸이 조금이라도 아토피로 고생하지 않기를 바랐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딸은 커갈수록 가리는 음식이 많아졌다. 먹기 싫다는 음식을 몸에 좋다는 이유로 억지로 먹이느라 진땀을 뺐다. 고등학교 입학할 시기에는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남편에게도 이젠 좀 놓아줘도 될 때가 되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다. 화장대에서 화장 솜에 토너를 적시다 말고 거울 너머로 남편을 보았다. 남편은 잠에서 덜 깬 채 침대 헤드에 기대고 있었다. 그의 잠옷 상의로 삐져나온 뱃살이 보였다. 토너를 묻힌 화장 솜을 얼굴에 문질렀다. 언제 저리 살이 쪘지. 결혼 후 남편은 일 년에 적어도 일 킬로그램씩 매해 체중이 늘어났다. 남편의 턱선은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즈음부터 사라져버렸다. 나는 다시 배에 힘을 주고 허리를 꼿꼿이 폈다. 로션 뚜껑을 돌렸다. 거울 너머로 남편은 침대에 기대다가 이내 누워버렸다. 화장대에 올려놓은 핸드폰에 알람이 울렸다. 효정이었다.
  -나도 그때 음식 가려 먹는 게 제일 어려웠어.
  효정의 메신저에 답장하려는 순간 남편이 다시 일어나 화장실에 들어갔다. 수도꼭지를 튼 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서 안방으로 나왔다. 가까이 와 내 로션을 집어 발랐다. 외출복으로 갈아입더니 딸의 방으로 갔다. 그 둘은 외투를 걸치고 현관으로 나갔다. 도어록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고 집이 썰렁해졌다. 나는 안방 문턱에 서서 그들이 나간 문을 지켜보았다. 다시 방으로 갔다. 화장대에 앉아 어깨를 펴고 거울을 쳐다봤다. 조금 더 배에 힘을 주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학창 시절 내내 무용하면서 식이조절은 당연하였지만 별다른 어려움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핸드폰에는 효정의 메신저가 하나 더 와 있었다. 유튜브 링크였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자 떡볶이를 만드는 효정의 손이 보였다. 대학 시절 효정의 자취방에서 먹었던 떡볶이가 생각났다. 효정은 스물하나에 안무 연습하다가 발목을 다쳐 휴학했다. 시간이 지나고 발목이 말끔히 다 나은 뒤에도 복학을 자꾸 미루었다. 내가 졸업하고 무용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는 동안 효정은 작은 음식점을 차렸고 요리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며 유학길에 올랐다. 최근에 다시 돌아와 식당을 열 준비에 한창이었다. 그 뒤로 효정은 메신저로 레시피 영상 링크를 보냈다. 링크에 들어가면 효정이 요리하는 영상이 나왔다. 영상엔 효정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재료를 다듬고 요리하는 손짓은 효정이 무용하던 시절처럼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효정이 영상 링크를 보내줄 때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상을 보았다.
  늦은 점심이 되어서야 남편과 딸이 돌아왔다. 둘이서만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했는지 볼이 발갛게 상기되었다. 그들의 외투에서 기름 전 내가 났다. 아마 치킨을 먹고 들어온 모양이었다. 나는 모르는 척 남편의 외투를 장롱에 넣었다.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혼잣말하면서 거실로 나갔다. 소파엔 남편과 딸이 나란히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티브이를 보면서 웃는 두 사람이 다정해 보였다.
  “엄마도 이리 와.”
  티브이를 보던 딸이 손짓하며 말했다. 짧은 바지로 갈아입은 탓에 딸의 허벅지가 훤히 보였다. 그새 또 긁었는지 피부가 붉게 올라와 있었다. 남편은 리모컨을 들어 티브이 채널을 돌렸다. 채널이 바뀔 때마다 목소리의 높낮이가 달라졌다.
  “엄마 떡볶이 먹고 싶어”
  나는 안방 문턱에 서 있다가 부엌으로 자리를 옮겼다. 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어쩜 저리 뻔뻔하지. 애 아빠가 애를 오냐오냐해서 그런 것 같았다. 냉장고를 열었다. 뒤에서 딸과 남편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머그잔에 우유를 가득 따랐다. 우유를 마시자 몸도 덩달아 차가워졌다. 컵을 싱크대에 두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닫힌 방문으로 남편과 딸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침대에 누워 그 소리를 듣다가 머리맡을 더듬거렸다. 핸드폰을 켜 메신저를 열었다.
  다음 날 청소하면서 딸의 방에서 초콜릿과 과자 봉지를 찾아냈다. 과자 봉지를 들고 가 딸에게 다가갔다. 소파에 누워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나는 과자 봉지를 흔들었다. 딸은 소파에 기대면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이 딴에도 지겨운 모양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에게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었다. 건강하고 싱싱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딸이 먹고 아토피로 괴롭지 않기를 바랐다. 먹고 싶은 음식을 당장 먹지 않아도 큰일은 나지 않았다. 아이는 먹지 말라고 한 과자와 초콜릿을 몰래 먹고 나중엔 꼭 탈이 나곤 했다. 딸은 나를 노려보다가 일어났다. 방문을 굳게 닫고 들어가 버렸다. 건조기 알림이 울렸다. 나는 아이가 그러거나 말거나 베란다로 가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냈다. 거실로 와 옷을 개었다. 딸이 틀어놓은 티브이에서 연예인들이 떠들고 있었다. 딸이 자주 입는 흰 트레이닝 바지가 손에 잡혔다. 학원에 갈 때마다 즐겨 입던 바지였다. 오금 부분에 묻은 핏자국이 지워지지 않았다. 피가 날 정도로 긁은 모양이었다. 나는 딸의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보았다. 얘는 자신의 몸에 무심했다. 다 갠 딸의 빨래를 들고일어나 방문을 노크했다. 방문을 슬쩍 열어보자 딸이 침대에 누워있었다. 나는 책상에 빨래를 올려두었다. 책상의 서랍장에서 연고를 찾아 꺼냈다.
  “가려운 데 있어?”
  아이는 얼굴을 가린 채로 나에게 팔을 뻗었다. 이럴 때 보면 어린 애 같았다. 살갗이 붉게 올라와 있었다. 나는 스테로이드 연고를 손끝에 살짝 묻혀 팔오금에 펴 발라주었다. 딸의 피부는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몰래 먹으면 티라도 내지 말아야지. 괘씸하다가도 안쓰러웠다. 연고 뚜껑을 닫았다. 나는 침대 끝에 걸쳐 앉았다가 나갔다. 안방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꺼냈다. 효정이 보내준 떡볶이 레시피를 찾았다. 효정이 요리하는 손길을 바라보았다. 효정의 영상은 배경음악 없었다. 조용한 효정의 집에서 재료를 물에 헹구는 소리와 도마질하는 소리, 프라이팬에 볶는 소리만 생생하게 들렸다. 효정의 손끝을 따라 만들어지는 요리 영상을 보고 있으면 무용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스물셋이 되던 새해에 효정의 고향에 놀러 갔다. 효정은 서울의 자취방을 정리하고 본가에 들어갔다. 횡단보도에서부터 손을 흔드는 효정이 보였다. 멀리서 보아도 학교 연습실에 들어오던 시절보다 훨씬 생기 있어 보였다. 오랜만에 만난 효정은 얼굴에 살이 올라 있었다.
  “우리 동네에 진짜 맛있는 즉석 떡볶이 가게가 있어.”
  효정은 나를 보자마자 손을 잡고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식당에서 효정은 사장님께 이 인분이요, 하면서 엄지와 중지를 활짝 펴 브이 자를 만들었다. 효정은 요즘 먹었던 음식 중 어떤 음식이 제일 맛있었는지를 말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졸업을 앞두고 무용을 계속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효정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얼마 가지 않아 떡볶이가 나왔다. 효정은 내 앞 접시에 떡볶이와 사리를 가득 담아 주었다. 내가 한술 뜨자마자 효정이 맛있느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뜨거워서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효정은 양손에 국자와 젓가락을 들어 라면 사리를 집었다. 접시에 덜어서 열심히 먹었다. 나는 효정이 준 접시에서 양배추와 메추리알을 골라 먹었다. 효정이 손을 들어 사장님을 불렀다.
  “볶음밥도 하나 주세요.”
  떡볶이를 다 먹고 밥을 볶을 때도 나는 눌어붙은 누룽지만 조금씩 긁어먹었다. 효정은 내가 잘 먹든 골라 먹든 여의치 않고 야무지게 볶음밥을 퍼서 먹었다. 나는 밥을 다 먹고 허리를 다시 폈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배불렀다. 효정도 숟가락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진경아 나 새로운 걸 해 볼 거야.”
  나는 물을 마시다가 말고 물었다.
  “새로운 일?”
  “응, 식당을 차릴 거야.”
  나는 물컵을 내려놓았다. 효정이 나를 바라보았다.
  “작은 분식집을 해보고 싶어.”
  나는 물병 옆에 있던 주스 팩을 들어 효정의 컵에 따라주었다. 컵에 가득 딴 자두 주스가 찰랑거렸다. 효정은 내가 따라준 주스를 마셨다. 컵을 비우고 나서 주스 팩을 들어 내 컵에 한 모금 따라주었다. 오랜만에 주스를 맛보았다. 혀가 아릴 만큼 달콤했다. 우리는 주스도 말끔히 비운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팔짱을 끼고 효정의 고향을 걸었다. 제법 쌀쌀한 날씨에 오래 걷다 보니 허기가 졌다. 오기 전 미리 예매한 버스의 출발 시각에 가까워졌다. 효정이 터미널에 데려다주었다. 효정은 터미널 빵집에서 빵을 샀다. 빵이 담긴 종이봉투를 나에게 건넸다. 자신의 동네에서 아주 유명한 빵집이라고.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팥이 든 도넛을 맛보았다. 달콤해서 눈물이 찔끔 났다. 할 수 있는 만큼 무용을 해보자고 다짐했다.
  벌써 이십 년도 넘은 일이었다. 영상 마지막은 늘 효정이 직접 만든 음식을 그릇에 담아 먹는 장면으로 끝났다. 눈뜨니 창밖으로 어스름이 깔렸다. 깜빡 잠이 들었다. 나는 부엌으로 가 서랍장에 숨겨둔 당면을 찾았다. 스테인리스 볼에 당면을 넣고 물에 불렸다. 딸의 방이 굳게 닫혀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식탁을 차렸다. 딸은 불러도 기척도 없었다. 식탁에서 남편과 둘이 앉아 아침밥을 먹었다. 주말 특근이 있던 남편은 집을 나서기 전에 아이의 방문에 섰다. 나는 남편의 손을 잡아 포갰다.
  “내가 잘 달래볼게.”
  남편은 나를 안아 큰 손으로 어깨를 쓰다듬어주었다. 남편을 배웅하고 아침상을 치웠다. 시계를 보니 열한 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두 시간 후엔 딸이 학원에 갈 시간이었다. 배고플 텐데. 행주에 손을 닦고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냈다. 양념장을 넣은 냄비를 주걱으로 휘저었다. 도마에 올려둔 재료를 냄비에 넣었다. 떡볶이를 직접 만드는 건 처음이었다. 불을 세게 켠 다음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았다. 그 너머 아이의 방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있었다. 전날 밤에 미리 불려놓은 당면을 집었다. 당면 끝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냄비에선 삶은 계란을 잔뜩 넣고 만든 떡볶이가 매섭게 끓고 있었다. 어쩐지 만들고 보니 대학시절 효정이가 만들어준 계란 떡볶이와 비슷했다. 그때 효정은 떡도 곤약으로 만든 떡을 넣어주었다. 나는 효정이 만들어준 떡볶이를 말끔히 비웠다. 다음날 아침 몸무게를 재고 놀랐긴 했지만 처음으로 음식을 먹고 후회 없던 날이었다.
  가스 불을 약하게 줄였다. 떡볶이의 국물이 동그랗고 걸쭉하게 부풀어 올랐다가 터졌다. 행주로 가스레인지에 떨어진 물방울을 훔쳤다. 여전히 딸의 방에선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냄비에 당면을 넣었다. 주걱으로 냄비를 저었다. 당면은 금방 다 익었고 떡볶이를 먹기 좋게 접시에 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효정이가 떡볶이를 만들어주었기에 무용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떡볶이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다. 군침이 돌았다. 효정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손바닥에 깨를 비비면서 뿌렸다. 행주에 손을 닦고 딸의 방으로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방 너머로 딸의 기척이 들렸다.

박가연,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2학년
문창과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야? 밥이지.

 

작가 인터뷰

Q. 작품에서 ‘효정이가 떡볶이를 만들어줬기에 무사히 무용을 계속할 수 있었다.’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는데, 작품 속 떡볶이처럼 글을 계속 쓸 수 있었던 무언가가 있나요

A. 저는 문예창작과 입시를 되게 오래 했어요. 열일곱 살 때부터 준비하게 되었는데 스물두 살에야 대학에 처음 합격했고, 스물셋에 지금 우리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할 수 있었어요. 그 시간 동안 꼭 글을 써야 하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입시를 힘들게 했어서 인지 수없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글을 계속 쓰고 싶은 거예요. 재미가 있어서요. 공부를 이리 재미있게 한 적이 처음이었고 해본 김에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계속 썼던 것 같아요. 희미한 빛을 따라가는 마음으로 계속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그 시절 우리가 나눠 먹은 것은 ‘나’와 효정의 연결과 ‘나’와 딸의 연결로 다양한 연결점을 보여줍니다. 인물과 인물을 연결 짓는 건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인데요. 그 시절 우리가 나눠 먹은 것의 연결 중 가장 신경 쓴 연결이 있을까요?

A. 아무래도 소설의 제목인 떡볶이이었습니다. 젊은 적 효정이 만들어주었던 떡볶이를 이제는‘나’가 딸에게 만들어주는 장면을 특히 집중해서 쓰려고 했습니다. 떡볶이는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여자 친구들이 좋아하는 음식 같아요. 저도 여자대학교에 다니면서 동기들과 식사 시간에 자주 먹던 음식 중 하나였습니다. 떡볶이는 특히나 체중 관리를 하는 시기에는 먹으면 안 된다는 음식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금기 시 되는 음식을 직접 만들고 친구와 함께 나눠 먹는 일은 가슴 뛰기 충분한 일이라고 생각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설 속 나의 딸도 아토피가 심해 가려야 하는 음식이 많았습니다. 먹고 싶은 건 많지만 가려 먹어야 할 것도 많은 딸에게 직접 떡볶이를 만들어주는 일이 금기 같지만 사실 떡볶이는 그저 떡볶이일 뿐이라고 생각 들었습니다.


친구가 만들어준 떡볶이에서 내가 딸에게 만들어주는 떡볶이가 저는 우리의 추억의 연결이라고도 볼 수 있고, 여자들의 우정, 즉 끈끈한 연대라고도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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