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델피늄, 한지원

델피늄

  민석은 오늘도 늦었다. 어젯밤 나를 데리러 오겠다는 연락 이후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는 민석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꽃집으로 출발했다. 버스를 내리면 정면으로 행복 부동산이 보였고 오른쪽으로 꺾으면 골목길이 보였다. 나는 부동산 아저씨의 눈을 피해 빠른 걸음으로 골목에 들어섰다. 부동산 아저씨에게 걸렸다가는 재개발 얘기를 들어야 했다. 아저씨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아 고개를 저었다. 행복 부동산이 있는 이상 세련된 분위기가 있는 동네는 아니었지만 골목은 깨끗했다. 노후된 동네를 살린다나 뭐라나 하는 이유로 이 년 전 젊은 창업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나도 그중에 하나였다. 동네를 살린다는 이유는 아니었고 상가 임대가 싸고, 이곳이라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어제와 비슷한 지점에서 머리를 올려 묶었고 그제와 같이 꽃집 앞에 서서 외관을 바라보았다. 하얀색 간판에 통유리창. 가격에 맞추다 보니 내 의견이 반영되어 있지는 않았다. 나는 한 발짝 뒤로 가 주변을 살펴보았다. 옆 상가는 몇 개월간 텅 비어있었다. 이제 골목에 남은 건 내 꽃집과 맞은편 카페였다.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유리창에 묻은 물자국을 벅벅 문질렀다. 물자국은 사라지고 손자국이 남았다.
  나는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지고 술만 마셨다. 정말 술만 마셨다. 안주라고 할 것도 없었다. 공무원을 하겠다며 큰소리치고 서울로 올라왔지만 공무원은 나랑 맞지 않았다. 공무원 시험을 치기도 전에 알고 있었다. 엄마는 그런 나만 믿으며 한 달에 한 번씩 용돈을 보냈다. 용돈은 주로 술에 썼다. 밥을 먹는 건 하루에 한 번 정도였다. 나는 억지로 밥을 먹으면서 밖을 쳐다보았다. 옆 건물은 공사 중이었다.
  “시끄러워서 골이 다 아프네. 알콜 중독 센타 들어온다는데 저런 거 들어오면 장사 못하는 거 아닌가 몰라. 망치라도 들고 가서 없애버리든 해야지.”
  밥집 아주머니가 반찬을 가져다주며 말했다. ‘알콜 중독’. 나는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공사 중인 건물을 바라봤다. 외관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 보였다. 얼마 남지 않은 밥을 깨작거리고 있는데 밥집 문이 열렸다. 밥집 아주머니의 남편이었다. 티비 소리밖에 들리지 않던 밥집은 빠르게 소란스러워졌다.
  “아무거나 좀 줘봐. 속 쓰려서 뒤지겄어.”
  아주머니는 혀를 차며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근처에 오지는 않았지만 술 냄새가 밥집 전체로 퍼진 것 같았다. 나는 남은 밥을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망치를 들고 없애버리는 게 아니었네. 저 인간부터 보내야겠어.”
  아주머니는 계산을 하며 말했다. 나는 빠르게 아저씨를 지나 밥집을 나왔다. 술 냄새가 역한 건 아니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면 나는 냄새였다. 그저 속이 쓰린 건 나 하나로 충분했다.

  공사 흔적이 말끔하게 사라진 날, 나는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가자 상담사로 보이는 여자가 커튼을 치며 내게 인사했다. 병원 안은 따듯했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중단발머리에 화장기 없는 모습이 단정해 보였다. 상담사의 손짓에 따라 의자에 앉았다. 나도 모르게 의자에 풀썩 앉았다. 엉덩이를 끝까지 붙이고 가장 안정된 자세로 앉았다.
  그때 내가 앉았던 자리에서 지금의 내가 꽃을 만들고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공사가 끝나길 가장 기다린 건 나였다.

  가게 안에는 서늘한 기운이 돌았다. 꽃의 신선도를 위해서 계절과 상관없이 난방은 잘 켜지 않았다. 나는 앞치마를 두르고 천천히 꽃을 바라보았다. 색이 바랜 장미 몇 송이와 어제 새벽 꽃 시장에서 가져온 장미가 한 대 꽂혀 있었다. 사람들은 주로 만개하기 직전이거나 진하고 뚜렷한 색을 지닌 꽃을 찾았다. 색이 바랜 장미를 제외하고 꽃다발 세 개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장미 몇 송이와 델피늄을 집어 들었다. 장미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아 가시가 있었다. 원예 가위로 길이에 맞춰 줄기를 잘라냈다. 잘린 줄기는 책상 위를 나뒹굴다가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책상 위에 하얀색 포장지를 펼치고 그 위에 비닐 포장지를 올렸다. 포장지 위에 올려놓은 꽃은 볼품없었다. 가시는 잘리고 종류에 상관없이 길이가 맞춰져 있었다. 생기가 없어 늘어진 꽃잎은 툭, 하고 떨어졌다. 걸치고 있던 것들이 없어지니 꽃은 더욱 빈약했다. 꼭 지금의 나와 같았다. 속은 빈약했다.
  마지막 꽃다발을 포장지에 올려놓는 동시에 손님이 들어왔다. 올려 묶은 머리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저, 세 시에 예약한 꽃 찾으러 왔는데요.”
  여자는 말끝을 흐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예약자 명단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꽃을 건넸다. 여자에게 건넨 꽃다발에는 파란색 델피늄이 가득했다. 여자는 받아든 꽃다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자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고일 것 같았다. 다른 손님이었다면 꽃말을 설명하며 대화를 나눴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입 밖으로 꺼내려던 말을 무겁게 삼켰다. 나는 조용히 꽃말이 쓰인 종이를 손에 쥐고 구겼다. 델피늄의 꽃말은 나를 싫어하는 당신에게. 여자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내가 떠올랐다.
  알콜 상담을 다니면서 생각한 미래는 꽃집이었다. 꽃을 좋아한다고 하기에는 꽃다발 한 번 사본 게 전부였고 주로 꽃을 키우기보다 꺾는 쪽이었다. 꽃 냄새는 익숙하지 않았고 향기로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비릿한 풀내음이 전부였다. 꽃은 물을 마셨고, 나는 술을 마셨다. 꽃은 물 없이 살 수 없었고 나는 술 없이 살길 바랐다. 내가 꼭 술을 마셔야 한다면 내 몫까지 꽃에게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혜원, 목이 마르면 술 대신 물을 마시는 습관을 가져보면 어때요?”
  시간까지 자세한 기억은 없었지만 상담사의 말은 메아리가 되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

*

  머리가 아팠다. 밀려오는 졸음에 잠시 버스 창문에 머리를 기댔을 뿐이었다. 버스가 방지턱을 지나가면서 내 머리는 힘없이 튕겨져 나갔다가 무겁게 창문에 부딪쳤다. 머리의 통증은 조금씩 사라지는 동시에 뇌가 머리 안에서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두 손으로 머리를 잡아도 뇌는 추가 되어 잘게 떨리고 있었다. 나를 지배하고 있던 졸음은 달아난 지 오래였다. 뇌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며 정신을 차리려 했다. 머리가 울리던 아까와는 달리 버스 바닥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도로 위 차선은 잘게 쪼개졌고 버스도 차선에 따라 달렸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핸드폰으로 만화를 보고 있었다. 잠시 공포감을 느꼈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꽃시장에 들렀다가 바로 꽃집으로 왔다. 아직 영업시간까지는 1시간이 남았지만 부동산 아저씨의 눈을 피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찌뿌둥한 어깨를 돌리며 가게 문을 열었다. 신문지에 둘러싸인 꽃을 내려놓고 커튼을 쳤다. 밤새 시든 꽃을 햇빛이 드는 창가에 두었다. 저녁에 있는 동아리 모임에서 만나자던 민석의 말이 생각났다.
  작은 진동이 울려 주변을 찾아보니 포장지에 가려진 핸드폰이 보였다. 남자친구 민석이었다. 나는 여보세요, 하며 전화를 받았다.
  “원아, 오늘도 일곱 시면 끝나?”
  민석은 나를 원, 이라고 불렀다.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하는 자리에서는 혜원, 이라고 소개를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응. 끝나고 동아리 애들 만나는 날이잖아. 오늘 온다고 하지 않았어?”
  내 말투는 무미건조했다. 의식을 한 건 아니었지만 확실한 건 민석에게 가장 건조해진다는 것이었다.
  “가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안될 것 같더라. 오늘도 부동산 아저씨 찾아왔어?”
  나는 민석의 말에 문을 쳐다보았다. 인적이 드문 거리가 보였다.
  “아니, 오늘은 안 왔어.”
  내 말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매일 그렇게 달달 볶이지 말고 꽃집 옮기자. 너 스트레스 받잖아.”
  나는 민석의 말을 들으며 괜히 앞치마를 털었다.
  “그런 말 할 거면 끊어.”
  민석의 대답을 듣기 전에 나는 전화를 끊었다. 계속해서 민석의 말이 지워지질 않아 입에 박하사탕을 물었다. 조금은 편안해진 것 같았다.
  나는 2년 전 친목 동아리에서 민석을 처음 만났다. 말만 친목 동아리였지 일상이 따분한 사람들이 만든 술자리와 다름없었다. 동아리를 주최한 사람은 지은이었고, 나와는 대학 동기였다. 지은은 나와 만날 때면 술에 취한 상태이거나 술을 깨는 중이었다. 나는 동아리의 인원이 채워지면 나올 생각으로 지은과 함께 주최 멤버로 활동했다. 동아리 사람들과는 저녁 8시에 만나 술집으로 갔다. 새로움이라면 경계하던 나에게도 동아리는 꽤 즐거웠다. 민석을 만나던 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야, 인사해. 아는 친구인데 동아리 와보고 싶다 해서.”
  지은은 이미 혀가 풀린 채로 민석을 소개했다. 나는 알았다며 지은의 시선을 다른 것으로 돌렸다.
  “김민석 너 왜 혜원이 쳐다보냐.”
  술에 잔뜩 취한 지은도 알아챌 만큼 이쪽을 쳐다보는데 내가 모를 수 없었다. 나는 곁눈질을 하며 시선을 살폈다. 나를 쳐다보고 있던 건 민석이었다. 민석은 흰색 반팔티에 검은색 바람막이를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민석의 두 눈에는 초점이 정확하게 잡힌 것 같았다. 술에 취한 사람일 거라는 예상이 틀렸다. 민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무일 없다는 듯이 술을 홀짝였다. 나는 민석의 시선을 피해 술집 밖으로 나왔다. 술을 마신 탓에 목부터 귀까지 열이 올라 있었다. 유리창으로 된 술집은 내부가 잘 보였다. 나는 입에 박하사탕을 물고 유리창 너머로 민석을 쳐다보았다. 민석은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쳐다보았다. 나와 바로 시선을 맞추는 것을 보니 계속해서 눈으로 나를 쫓고 있었던 것 같았다. 민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에 걸친 바람막이를 의자 위로 올려놓았다. 민석의 하얀 몸과 붉은 얼굴이 대비되어 보였다. 민석이 나오려는 것 같아 벽에 등을 기대고 숨을 골랐다. 저기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민석의 목소리였고 급하게 침을 삼키다가 사레가 들렸다. 불안정한 박자로 켁켁거렸다.
  “혹시 그거 사탕이면 저 하나만 주실래요?”
  민석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말을 걸었다. 민석이 가까이 올수록 섬유유연제 향과 술냄새가 섞여 알 수 없는 냄새가 났다. 나는 잔기침을 하며 민석과 눈을 맞췄다. 또렷하게 빛나는 눈은 민석을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이거 박하사탕이에요. 술 대신 물고 있으려고 먹는 건데, 드릴까요?”
  여전히 내 말에는 기침이 섞여있었다. 민석은 내 말에 더 가까이 손을 내밀었다.
  “혹시 밥집 옆에 있는 병원 다니는 거예요?”
  민석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헛웃음을 지었다. 민석은 나를 따라서 어색하게 웃었다.
  “근데 그게 병원을 다닌다고 치료가 되는 건가. 생각해보면 그렇잖아요. 중독이 누가 치료한다고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자기 의지니까요.”
  민석은 눈썹을 들썩이며 말했다. 짙은 눈썹이 목소리 높낮이에 따라 움직였다.
  “그래도 나름 괜찮아요. 저도 지금 괜찮아지고 있고.”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민석은 내 말에 수긍하는 것 같았다. 점점 녹는 사탕을 깨물었다. 사탕은 쉽게 바스라졌다.
  “술은 왜 끊으려고 하는데요?”
  단순한 궁금증으로 던진 질문이었다.
  “꽃집 하려고요.”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입에서 연기가 나오는 것만 같아 보였다. 연기는 이내 공기에 스며들어 사라졌지만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이 년 만의 친목 동아리였다. 각자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만나지 못했다. 그마저도 모든 애들이 모이지는 않았다. 우리는 마주 보며 앉았지만 서로를 쳐다보지는 않았다. 우리의 시선은 핸드폰을 보거나 음식점 벽에 붙어 있는 티비를 향했다.
  “우리 얼마 만인데 이렇게 삭막해? 게임이라도 할까?”
  지은은 거리낌 없이 말을 꺼냈다. 지은의 머리카락이 흔들릴 때마다 달큰한 향이 났다. 익숙하면서도 가깝지 않은 냄새였다.
  “다들 핸드폰을 가운데 모으고, 모든 연락을 공유하는 거야. 주변에 내 뒷담 깐 사람들은 빨리 지우고.”
  지은에게 시선이 집중된 걸 보니 모두 싫지 않은 눈치였다. 오히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길 기다리는 눈빛들이었다. 나는 연락 목록을 살펴보았다. 민석과 부모님, 가끔 오는 부동산 아저씨의 전화가 줄지어 있었다. 딱히 걸릴 것도 숨길 것도 없었다. 각자 핸드폰을 가운데로 모으고 다시 지은이 말을 꺼냈다.
  “오랜만이네. 꽃집은 잘 돼?”
  가벼운 지은의 질문에는 많은 감정이 묻어 있지 않았다. 꽃집이 잘 되냐는 말은 겉치레였지만 괜히 가슴이 시큰거렸다.
  “늘 똑같지. 그래도 나름 좋아. 너는?”
  나는 작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입꼬리는 올라갔지만 눈은 변하지 않았다. 꽃집에 대한 얘기를 한 마디라도 줄이고 싶었다. 지은은 내 말에 자신의 근황을 줄줄이 이어나갔다. 새롭게 사귄 애인부터 사회적 이슈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지은의 말에 나는 조금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요즘 식물원 카페가 난리잖아. 어제도 갔다 왔는데 너무 예쁘더라.”
  식물원 카페는 나의 관심을 끌었다. SNS에 올라오는 카페의 규모는 상당했다. 꽃집을 10개 합쳐도 부족할 것 같은 크기였다. 사람들은 아침부터 줄을 섰고 식물보다 사람이 많아진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카페 안에는 풀냄새보다 커피 향과 버터 냄새가 진동할 것 같았다. 나는 음료수 컵에 꽂힌 빨대만 만지작거렸다. 빨대는 쉽게 들렸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조금씩 속이 답답해지는 것 같아 음료수를 마셨다. 빨대가 아니라 컵에 입을 대고 벌컥 들이마셨다.
  “어? 혜원이 핸드폰. 부동산인데?”
  나는 빠르게 핸드폰을 쳐다봤다. 다양한 핸드폰 중 내 핸드폰 화면만 켜져 있었다. 부동산 아저씨면 할 얘기가 뻔했다. 이제 모든 집중은 내 핸드폰으로 향했다. 뭐 투자라도 하려고? 정보 좀 있나 보다? 다들 한 마디씩 거들었다. 나는 안 받아도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핸드폰에서는 여전히 진동이 울렸다. 손을 뻗어 핸드폰을 잡으려 하자 여러 개의 손이 나를 밀쳤다. 그 사이 지은은 통화를 받았다.
  ‘어, 아가씨 나야. 다름이 아니라 이제 진짜 못 기다려. 아가씨한테 돈도 줄 거고 손해 보는 거 하나 없어. 동네 하나 살리는 셈 치고 빨리 나가, 응? 요즘에는 아무데나 꽃집 많잖아. 꼭 여기 아니어도 상관없을 거고. 지금 아가씨 때문에 그쪽 하나도 못 팔고 나도 중간에서 정신이 없어. 왜 이런 걸로 고집을 피우고 그래.’
  아저씨는 내가 여보세요, 라고 대답할 틈도 없이 말을 했다. 한 귀로 듣고 흘리던 말이 오늘따라 마음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아저씨의 말은 친구들의 흥분을 단숨에 가라앉혔다. 나를 제어하기 위해 일어났던 사람들은 쭈뼛거리며 다시 앉았다. 나는 여전히 우뚝 서 있었지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의자 등받이를 잡고 상체를 지탱했다. 진한 음식 냄새도 달큰한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제가 다시 전화드릴게요.”
  나는 천천히 걸어가 스피커를 끄고 전화를 받았다. 아저씨의 끝내지 못한 말이 들렸지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야, 이거 괜히 했다. 관두자. 다들 자기 핸드폰 가져가.”
  지은의 말에 식탁 위 핸드폰이 빠르게 사라졌다. 각자 핸드폰 잠금 화면을 풀고 연락을 확인하기 급했다. 나는 핸드폰을 손에 쥔 채로 자리에 앉았다. 이미 분위기는 흐려졌고 내 눈치만 보고 있었다. 지은은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나는 친구들을 살피다가 먼저 나왔다. 지은은 나를 따라 나와 옆에 섰다. 시간은 벌써 한 시를 지나고 있었다.
  “너 막차 끊긴 거 아니야?”
  나는 지은의 말에 민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를 데리러 와줄 사람은 민석뿐이었다. 민석의 목소리보다 익숙한 통화 연결음이 계속됐다.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민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무슨 일이야?’
  민석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전화를 받았다. 주변이 시끄러운 탓이었다.
  “나 좀 데리러 와줘.”
  나는 차분하게 얘기했다. 민석의 주변이 시끄러운 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나를 데리러 와줄 수 있는지만 알고 싶었다. 민석은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여러 번 되물었다. 평소 같으면 이미 끊었을 전화였다.
  ‘어딘데? 나 지금 바빠.’
  민석은 내 말이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귀에 박히는 음악 소리를 들으면서 바쁘다니, 우스웠다.
  “나 좀 데리러 와달라고.”
  나도 모르게 민석에게 소리를 질렀다. 높은 하이톤을 아니었지만 큰소리를 낸 건 처음이었다. 민석은 그제야 알겠다며 주소를 알려달라고 말했다. 내가 주소를 말하는 동안 웅성거리는 소리가 전화를 통해 들렸다. 대충 일이 있어서 먼저 가겠다는 민석의 말이었다. 조금씩 음악소리가 작아졌다.
  ‘근데 지금 나 술 마셔서 운전 못해. 대리 불러서 갈게.’
  민석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소리를 질러서인지 목을 긁는 소리를 냈다.

  두 시가 지나갈 때쯤 멀어지는 지은의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민석의 차가 보였다. 차 곳곳에 지워진 페인트를 보면 지난 세월을 알 수 있었다. 민석은 내가 보이자 정지등을 켜놓고 나를 기다렸다. 불이 켜지면 민석과 대리 기사의 얼굴이 보였다가 불이 꺼지는 동시에 사라졌다. 나는 차 번호를 확인한 후 차를 향해 걸어갔다. 민석은 나를 보자마자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문은 가볍게 열렸다. 뒷자리에 타자 민석은 자동적으로 내 손을 잡았다. 민석의 손목에는 클럽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건조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손길이었다. 민석의 손은 내 손을 잡는 것보다 자연스러웠다.
  금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아직도 거리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술에 취한 사람과 취객을 피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공존했다. 나는 민석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민석은 내 시선을 의식하지 못했는지 숙취해소제를 들이켰다. 이제는 아무 말 하지 않는 민석이 편했다. 내 손을 잡은 민석은 두툼한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내 손은 민석의 손과 맞물린 채로 굳어버린 것만 같았다.
  “집으로 갈 거지? 무슨 일 있어? 얼굴이 안 좋아.”
  민석이 먼저 말을 꺼냈다.
  “집으로 가자. 그냥, 내가 요즘 너를 자주 기다리는 것 같아서.”
  나는 민석의 질문에 하나씩 대답했다. 민석의 말은 다정했지만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민석은 내 말에 당황했는지 손을 세게 쥐었다. 나는 민석이 손에 힘을 줄수록 힘을 풀었다. 서로의 손 사이로 공기가 통하지 않아서인지 답답했다. 나는 창문을 내리고 숨을 내쉬었다. 차 안에 가득하던 술냄새가 조금은 빠진 것 같았다.
  “사람들 만나서도 술 안 마셨어?”
  민석은 나를 따라 창문을 내리며 말했다. 내가 한 말에 대답은 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창밖을 바라봤다. 나는 답답한 손을 잠시 풀었다. 민석은 여전히 힘을 풀지 않았다.
  “응. 너는 술 많이 마셨어?”
  민석은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스트레스 받았나 봐. 클럽도 가고.”
  나는 손에 힘을 빼며 말했다.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손 사이로 바람이 통했다. 창문을 조금 내리니 아직은 바람이 쌀쌀했다.
  “너도 스트레스 받으면 좀 풀어. 그냥 나한테 전화만 하지 말고. 가끔 술도 한두 잔 마시고. 가끔 한두 잔은 괜찮아. 내가 매일 마시라는 것도 아니고. 오늘 같은 날은 내가 데리러 오잖아.”
  민석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툭 던져지는 말은 내게 상처를 내는 것 같았다. 민석은 담담하게 행동했다. 평소 같으면 그 담담함에 의지를 하고 싶었겠지만 오늘은 바스라졌으면 했다.
  “그리고 이제 옮겨도 괜찮지 않아? 언제까지 그렇게 버틸 거야. 그거 너한테도 다른 사람한테도 도움 안 되는 거 알잖아. 뭐 꽃집은 아무데서나 할 수 있잖아.”
  민석의 말이 주저 없이 이어졌다.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민석은 아직도 술이 덜 깼는지 눈을 감고 반쯤 누워있었다.
  “막말로 손해 보는 것도 없잖아.”
  민석은 몸에 힘이 풀린 채로도 말을 이어나갔다. 두꺼운 민석의 입술이 붙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 말고 가게로 데려다줘. 그리고 이제 그만 만나자.”
  나는 짙은 술냄새를 깊게 들이켰다. 지금 당장 꽃집으로 가고 싶었다. 운전을 하던 대리 기사는 백미러를 통해 우리를 힐끗거렸다.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꽃집과 가장 가까운 편의점 앞에서 내렸다. 민석은 집에 가자고 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나를 붙잡는다며 손목을 잡았지만 쉽게 풀려버렸다. 나는 편의점에 들어가 무작정 주류 코너로 갔다. 오랜만이었다. 다양한 술 중에서 자주 마시던 소주 한 병을 손에 들었다. 차가운 병의 감촉이 손에 스며들었다. 예전 같으면 비닐봉지가 찢어질 만큼 샀겠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두운 꽃집에 간이 등을 켜고 앉았다. 꽃은 아까와 변함없었다. 가만히 꽃들을 바라보다가 델피늄에 시선에 멈췄다. ‘나를 싫어하는 당신에게’. 나는 소주를 손에 들고 델피늄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늘색 델피늄은 바람이 불면 당장이라도 바람 따라 흩어질 것 같았다. 여전히 민석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늘어진 손에 힘을 줘 내려놓았던 소주를 집어 들었다. 조금씩 천천히 델피늄이 꽂힌 화병에 소주를 부었다. 화병 안에 소주가 들어갈수록 아지랑이가 크게 피어올랐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넣은 후에야 병을 내려놓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지랑이는 옅어졌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따듯하지 않았다. 창가에 놓인 식물들은 메말라가고 있었다. 환기를 시키지 않아 공기가 답답했다. 부동산 아저씨는 내게 앉으라는 말도 건네지 않았다. 나는 입술을 잘근 씹으며 말할 기회를 찾았다.
  “가게 팔러 왔어?”
  아저씨는 나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아직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결론이 난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표정을 풀며 내게 다가왔다. 처음 가게를 임대할 때 보았던 미소였다.
  나는 부동산을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미세먼지가 가득한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콧속이 건조해질수록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가장 익숙한 거리를 지나치며 걸었다. 민석의 뒷모습이 보였다. 민석은 빈 박스를 들고 신발 앞코로 땅을 파고 있었다. 나는 성큼 다가가 꽃집 문을 열었다. 민석은 흙이 잔뜩 묻은 신발을 신고 들어왔다.
  “뭐 하러 왔어. 네가 올 이유 없잖아.”
  민석은 움직일 때마다 앓는 소리를 냈다.
  “개업할 때도 도와줬으니까. 마지막 날도 도와주면 좋잖아.”
  나는 민석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잠시 쉴 시간도 없이 박스에 포장지와 줄지어 있는 리본을 차례로 담았다. 꽤 오랜 시간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박스 3개도 채우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가장 큰 화병에 남은 꽃들을 옮겼다. 민석의 발밑에 있는 박스는 반도 채워지지 않았다.
  “원아 이 꽃은?”
  마지막으로 남은 꽃은 델피늄이었다. 민석은 물이 떨어지는 델피늄을 손에 쥐고 내게 물었다. 나는 화병 정리하던 것을 멈추고 민석과 델피늄을 번갈아 보았다. 델피늄에서 물이 조금씩 떨어졌다. 잎을 보니 곧 시들 것 같았다.
  “그건 너 가져. 그냥 가지고 가. 마무리는 내가 할게.”
  민석은 내 말에 구겨진 신문지로 델피늄을 둘둘 말았다. 거친 손길 때문에 잎들이 떨어졌다. 더 이상 놓고 가는 것이 있을까 구석까지 보았다. 카운터 구석에 구겨진 종이가 보였다. 나는 쭈그려 앉아 종이를 펼쳐보았다. 델피늄의 꽃말은 나를 싫어하는 당신에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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