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레이 프로젝트
서리가 잔뜩 낀 목도리를 풀어 가방에 집어넣었다. 드러난 목에 감기는 눈바람이 그다지 춥지 않아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얼굴까지 올라오는 목폴라를 입고 있어 생살에 닿지는 않았지만, 원래는 목도리를 칭칭 감아 중무장해도 파고드는 칼바람에 목이 아려왔으니까.
또 한 번 지구가 바뀌고 있었다. 날씨 앱에 찍힌 온도는 영하 15도였다. 뉴스는 지구가 얼어붙은 이후 5년 만에 연일 경신하고 있는 최고 온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보도했다. 두 번째 희망, 리셋, 재시작……. 그런 단어가 제목 앞에 붙을 때마다 나는 항상 의아했다. 저 사람들, 5년 전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그 많은 희생을 치르고도 정신을 차리고 있는 사람은 고작 나 한 명뿐인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 발 끝부분에 무언가 걸려 밑을 봤다. 파묻혀 있는 기다란 막대 표지판 같았다. 3. 끄트머리에 적혀 있는 숫자였다. 2022년 아카이빙 지도 앱을 켜 위치를 확인했다. 당산역 3번 출구였다.
시계는 두 시 오 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어디야, 카톡을 보내니 곧바로 답장이 왔다. 기다려 봐봐. 자전거 바퀴가 얼어서 끌고 오는 중이야. 대체 그놈의 자전거는 언제쯤 갖다 버릴 거야. 그러게, 이제 정말 포기해야 하나 봐.
정말이지 버티기가 힘들었다. 말이 따뜻해졌다지 기온은 여전히 영하 20도 언저리를 맴돌았다. 장갑을 꼈음에도 손가락 관절이 얼어 타이핑을 치는 것조차 힘들었다. 추우면 어디 들어가 있던가. 뛰어가고 있으니까. 윤의 딴에는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나는 정말로 절박한 마음이 들어서, 혹시, 정말, 만에 하나라도 들어갈 곳이 없는지 주위를 둘러봤다. 예전에 고층 빌딩이었던 몇몇 개의 건물들이 눈 위로 우뚝 솟아 테트리스처럼 자리 잡고 있었지만, 들어가는 입구가 땅 아래에 있어서 무용지물이었다. 아무리 타지역보다 얼음 지반이 두껍다고 해도 이 정도로 버려져 있는 동네는 요즘엔 보기 드물었다. 뭐 이딴 데서 만나재, 진짜.
하필이면 여기서.
신경질이 나 신발로 쌓인 눈을 퍽퍽 찧었다.
그러다 문득 또. 역시 이 꼴 보기 전에 죽었어야 했다고. 뭘 하건 간에 생각의 흐름이 닿는 결론은 항상 같았다. 언니가 너무 부러웠다. 홀랑 먼저 죽어버린 언니가 부러워서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
언니는 8년 전에 죽었다. 2022년 7월 27일, 지구가 건강했던 마지막 하루. 사인은 화재사.
언니는 그날 나에게 오늘은 집에 빨리 오라며 카톡을 했다. 너 좋아하는 봉골레 파스타 만들고 있어. 나는, 오랜만에 일찍 퇴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카톡을 받고는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져 길바닥을 의미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언니는 냄비에 면을 삶으며 재료 손질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불 끄는 것도 깜빡하고 마트에 갔고, 바지락이 없어 마트 세 군데 정도를 돌아다녔다고 했다.
걷잡을 수 없이 번져버린 불길 사이로 언니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들어갔다. 내가 한여름 땡볕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 동안, 언니는 고깃덩이가 되었고, 새카맣게 타 버렸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거기에 뭐가 있었던 거야? 뭘 보고 안으로 들어갔던 거야. 언니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다음 날부터는 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언니를 발인하던 날에는 그야말로 폭우가 쏟아졌다. 장례를 도와주던 친구들은 뻔하기 그지없는 말을 했다. 하늘도 슬퍼서 우나 봐 진원아. 딴에는 유일한 가족인 언니마저 잃은 나를 위로해 주려고 건넨 말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짜증이 확 치밀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두가 장례 내내 나를 걱정하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맙거나, 더 슬프거나, 그도 아니면 참을 수 없는 화가 나서 장례식장을 뒤집어엎거나. 장례 내내 나를 지배했던 감정은 그런 축축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내일이면 그칠 텐데. 그러면 딱 하루 슬퍼하고 만다는 뜻이야?”
“진원아.”
“야, 그거 웃기는 새끼네.”
친구들은 쩔쩔매며 나를 달랬는데, 속으론 솔직히 그 애들을 비웃고 싶었다. 정작 나는 하루도 슬펐던 적이 없었으니까. 보험이 어쩌고저쩌고, 상조 회사에 연락하고 장례식장을 잡고 친척들에게 부탁에 부탁을 해 고모부 회사의 거래처 몇 군데에서 껍데기뿐인 근조 화환을 받아 오는. 그런 형식적인 일들에 온 신경을 쏟아야 하는 것에 넌덜머리가 났다. 귀찮았다. 화재보험금과 사망보험금만으로 내 삶의 터전이, 그리고 유일한 가족이 없어진 구멍을 메울 수 있을지를 계산기 두드려 가며 골똘히 고민하는 것. 호기롭게 입학한 건축과에서 사실상의 자퇴인 장기 휴학을 하고 취업한 카페 사장님은 내 연락을 받고 힘들면 쉬어도 된다며 은근히 퇴사를 종용했다. 그는 내 답장을 보지도 않은 채로 구인 사이트에 연봉을 낮춰 카페의 새 매니저 채용 공고를 올렸다. 내게는 언니의 죽음보다, 죽음이 가져오는 그 귀찮은 일들이 더 스트레스였다. 나는 장례를 치르는 3일 동안 바싹 말랐다. 비틀어 짜도 단 한 방울의 물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정말 그랬다.
그러나 내 말과 달리 다음날이 돼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새카맣게 타버린 언니가 화장장에서 또 한 번 불에 타 주먹만 한 함에 담기고, 핸드백만 한 나무 상자에 담기고, 아파트를 축소한 듯한 모양의 납골당에 안치될 까지도. 49재가, 100일이, 1주기, 2주기, 3주기가 될 때까지도. 비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내렸다.
*
“진원, 미안하다니까. 뭐 좀 찾고 오느라 그랬어. 화 좀 그만 부려.”
30분이나 늦게 도착한 윤이 뻔뻔하게 말을 걸어왔다. 윤의 가방에서 허겁지겁 핫팩을 꺼내 손을 녹이다가 눈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너 누나 좀 그만 찾아. 이쯤 되면 못 찾아. 만에 하나 살아 있어도 지금이면 벌써 찾았을 시기야. 그리고, 화를 부린다는 건 무슨 뜻이야. 화를 내는 거겠지. 짜증을 내거나. 난 화낸 적도 없고 짜증 낸 적도 없어. 그 고물은 언제까지 붙잡고 있을 거야? 의미가 있는 거면 집에다 박제를 하던가.”
“지금 이러는 거, 이게 짜증 부리는 거지.”
죽일 듯이 노려보자 윤은 또다시 빙긋 웃었다.
“네가 살아 있다고 했잖아.”
*
2년쯤 전에 윤을 만났다.
그때 나는 죽지 못해 버티고 있었다. 사실은 희망이 없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그 누구보다 부러웠다. 기약도 없이 삶이 아닌 생존을 하며 짐승처럼 버텨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껴있기가 너무 싫었다. 그래도 난 살아야 했다. 혹시라도 죽으면 언니를 마주칠까 봐 무서웠다. 언니를 만나면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몸과 마음의 괴리가 커져 제일 혼란스러울 때 윤을 보았다. 기온이 잠깐 내려간 사이 생필품을 쓸어 오려고 마트 방향으로 걸어가던 차에 무언가 발에 툭 하고 걸리는 게 느껴졌다. 바닥에 대 자로 뻗어 있는 윤이었다.
그건 그 당시의 가장 흔한 자살 방법이었다. 제일 쉽게, 고통스럽지 않고 빠르게. 두 시간만 누워 있으면 심장이 얼어붙어 죽는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렇게 죽은 시체를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잔잔하게 눈을 감고 겸허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돌이켜보면 나는 그 모습이 정말 아니꼬웠다. 누군 죽고 싶어도 못 죽고 이렇게 억지로 살고 있는데, 하는 마음으로 윤을 끌고 벙커로 왔다. 할 수 있는 난방은 다 해 놓고 딱딱해진 윤의 팔다리를 계속 쓰다듬었다. 녹아라, 녹아라, 녹아라…….
꼬박 이틀이 지나서 눈을 뜬 윤은 처음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했다. 그러다 눈앞의 나를 보곤 상황을 파악했는지, 억 억 소리를 내며 울었다. 야, 네가 뭔데 날 살리는 거야, 무슨 자격으로 그러는 거야, 저리 가, 다시 갈 거야, 죽으러 갈 거야……. 그걸 듣고 있다가 나는 화를 냈다. 좀 이상하게 냈던 것 같다. 살고 싶어도 살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말을 하면서, 네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같은 개소리를 하면서. 내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말들을 하며 윤을 다독였다.
“왜 죽으려고 했는데?”
쉽게 죽음을 택할 수 있는 이유가 궁금했을 뿐이었다. 두려움이 없는 이유를.
“누나가 죽었다는 걸 알았어. 실종이 아니라 사망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따라가려고 했던 거야?”
“살아갈 이유가 없어졌으니까.”
조금 흥미로워진 나는 이것저것 질문하며 윤의 누나에 대한 이야기를 다 들었다. 윤의 누나, 은영, 2남 1녀 중 차녀. 목포의 이비인후과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며 대학에 간 윤과 윤의 큰형(윤은 나와 다니는 2년 동안 죽어도 그 첫째 형이라는 사람의 이름은 알려주지 않았다)의 뒷바라지를 했다고 했다.
은영은 윤을 아꼈다.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윤을 항상 만나고 싶어 했으나 병원 막내였던 은영은 연차를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푹푹 찌는 여름날에, 은영은 겨우 윤의 공강 날로 연차를 잡고, 전날 퇴근 후에 고속버스를 타고, 그리고 서울에 와서는, 사라졌다.
“저녁에…… 택시를 탔다더니 그다음부터 연락이 안 왔어. 찾으러 갔어야 했는데 솔직히 좀 귀찮았어. 잘 오고 있겠지. 생각하고 그냥 잠이 들었어. 일어났더니 아침이었는데,”
“그런데?”
“그날이 7월 27일이었거든, 누나가 사라진 날이. 다음 날에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면서 전화를 걸다가 경찰서에 갔는데 실종 신고를 안 받아줬어.”
“받아줄 리가 없지.”
“그렇지, 실종된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우리 누나는 다르다고, 우리 누나는 어제 택시를 타고 나서 사라졌다고 하니까 그러면 왜 어제 신고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서, 대답할 수가 없었어.”
“죽었다는 걸 알았다고 했던 건?”
“며칠 전에 인터넷에서 누나 지갑을 봤어. 사망자 유품 아카이빙 사이트에서.”
이 사람을 잡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의 죽지 못할 이유가 누군가에게는 살지 않을 이유가 된다. 흥미로웠고, 배우고 싶었다. 나도 살지 않을 이유를 키워서 언젠가, 마음 편히 죽고 싶다. 그땐 그 생각뿐이었다. 정말로.
“너희 누나, 살아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너도 살아. 살아서 누나를 찾아.”
*
“진원, 여기 핸들 좀 잡아 줘.”
“진원이라고 부르지 말랬잖아. 언니 생각나. 싫어.”
“진원.”
“야.”
“진원아, 그거 알아?”
“하지 말라니까.”
“넌 언니가 싫다면서 맨날 언니 얘기만 하잖아. 내가 볼 때 넌 이 세상에서 너희 언니를 제일 좋아해. 내가 누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더.”
“싫어하니까 생각이 나는 거야. 핸들이나 내놔.”
다 알고 있다는 듯 흐음, 하고 한쪽 입꼬리를 올리는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속을 들킨 기분이었다.
“이해가 안 가.”
“또 그 소리야?”
“아무리 봐도 난,”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고?”
“아무리 봐도 그래.”
윤이 가방에서 식용유를 꺼내 바퀴 체인에 들이부었다. 휴지로 체인을 살살 닦아 내자 뻑뻑하게 각기 춤을 추던 페달이 슬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 좀 잘 되네. 따뜻해서 그런가.”
“거짓말 아니야. 그냥 이유 없이 싫을 수도 있잖아.”
“유일한 가족이었다며.”
윤은 곧이어 행주에 기름을 묻혀 자전거 곳곳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핸들, 안장 밑, 바퀴 이음새 등을 차례로 닦아 내면 그 부분이 차례로 살아났다.
“…그냥 싫었어. 우리 언니는 너무 착했어. 말했잖아. 호구였어.”
“우리 누나도 그랬는데.”
“잘났다.”
어차피 눈바닥에 좀만 구르면 다시 얼어버릴 자전거를 윤은 저렇게 고치고 또 고쳤다. 자전거는 이런 식으로 몇 번이고 윤에 의해 강제로 좀비처럼 살아났다. 말을 해주지 않아 나는 그 자전거를 누나가 선물해 줬겠거니, 하고 짐작만 했다. 우기에도 버틴 자전거라면, 분명 빙하기에도 버리기로 마음먹긴 힘들었을 거다.
*
3년간 줄기차게 비가 내리다 멈췄을 때, WHO는 이미 인구의 30퍼센트가 사망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전 세계에 3년간 비가 쉬지 않고 내렸는데 열 명 중 세 명밖에 죽지 않은 것에 많은 사람이 놀랐다. 과학자들이 비를 한데 모아 강과 바다로 흘려보내는 시스템을 개발해낸 이후 사망 인원과 피해 규모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다만 사망 인구의 40퍼센트는 그 혁신적인 기계가 개발되기 이전에, 3년 중 첫 넉 달에 죽은 사람들, 그러니까 해안가와 강가에 살다 어찌할 방도도 없이 그냥 잠겨 죽어버린 사람들이었고, 나머지 55퍼센트는 개발도상국과 제3세계 국민들이었으며, 해안가와 강가 주민들을 제외하면 사망 인구 중 G20 국가 국민들은 단 5퍼센트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55퍼센트로 분류된 그 사람들의 사인은 대부분이 아사 혹은 장티푸스 등으로 인한 합병증이었다. 직접 요인은 이것이고, 간접 요인은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의 후원 저조로 인한 자금난. 기부를 할 만큼의 여유가 있었던 나라, 기업, 혹은 개인이 자기 살기 급급해지면 제일 먼저 타격을 받는 건 그런 사람들이었다.
비가 쏟아져 내릴 땐 일언반구도 없었던 세계의 언론은 비가 그치자마자 인류의 비극이니 약자의 숭고한 희생이니 요란하게 떠들어댔다. 너도나도 애도식을 열고 개회사의 처음에 5분간 묵념을 했다. 매일 속보로 새로 발표된 국제 협약이 보도됐다. 그런 걸 보고 있으면 코웃음이 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도민들을 위한 추모회가 열린 다음 날에는 추모회 주최 고위 공무원 다섯 명 오피스텔형 성매매 업소 방문했다 적발, 충격. 그런 헤드라인이 메인을 장식했다. 그리 충격일 일도 아니었다. 그것 또한 일상이 회복되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었다. 개회식에 딱 5분 있는 묵념의 시간처럼 그저 의무적인 애도를 하며 속으로는 이미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재난은 끝이 났다는 믿음은 유난히 높게 뜬 태양처럼 밝았으니까, 어쩌면 당연했다.
두 달 남짓의 평화로운 시간을 거쳐 갑자기 시작된 빙하기가 언제 끝날지 전문가를 모셔 놓고 토론을 진행하는 아나운서.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패딩 입은 기후학자. 미처 낮추지 못한 수심 속으로 잠겼던 섬들과 도심의 건물들을 건져낼 새도 없이 얼어 버린 땅들. 5분에 한 번꼴로 오던 한파 경보와 교통 경보 재난 문자가 더 이상 오지 않았던 날. 동파되어 나오지 않는 수도. 기술 개발에 매진해 얼음을 물로 녹여 파는 사업을 시작한 모 대기업. 그 속에서 과로로 사망한 연구원. 회로가 얼어 다운된 증권회사 서버. 복구되지 않는 주식 계좌. 얼어 죽은 사람과 뛰어내려 죽은 다음 언 사람들. 깨져 있는 통유리 너머 텅텅 빈 등산용품 매장. 아주 가끔 기온이 영하 20도 위로 올라오는 날이면 떼로 몰려나와 마트를 쓸고 나가는 주민들.
그런 것들은 살아있는 사람을 좀비로 만들기에 충분한 성질의 일들이었다. 질량 보존의 법칙은 극한의 환경일 경우 살아야 하는 이유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문명을 살며 삶에 대한 높은 차원의 고찰을 즐기던 인간들이 자연 앞에서 일차원적 짐승이 되었고, 그다음엔 뭘 해도 안 될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빗속에서 살아남은 나머지였던 70퍼센트 인간의 절반가량이 스스로 땅에 누워 죽음을 택한 이유는 그들이 더는 일차원적 짐승이길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몇 개월 전, 세계의 하루 평균 온도가 아주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고, 생존자들은 그들의 희망을 보지 못하고 죽은, 안타까운 자들이라고 말했다.
내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운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앞으로 지구가 또 변한다는 가정을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언제든지 지구는 다시 바뀔 수 있었다. 비가 오고, 땅이 얼고. 그다음엔 무엇이 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와중에 세상은 그들을 안타까운 자들이라고 말했다.
틀렸다. 그들은 현명했다. 바보 같은 희망을 안고 살아가며 또 언제 지구가 망가질 여부는 애써 무시하는 오늘의 생존자들보다 훨씬 똑똑하다. 가족의 죽음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고, 머리 아픈 사회적 경쟁일랑 할 필요가 없었던 짧은 시기를 살았으며, 그저 열심히 죽으면 됐었던 사람들. 나는 그들도 부럽다. 부럽긴 매한가지다.
*
나는 무엇이 무서웠던 걸까.
*
어릴 때 한 번은 내가 집에서 혼자 달고나를 해 먹다가 불을 낼 뻔한 적이 있었다. 그때 언니는 중학교를 마치고 돌아왔다가 부엌에 주저앉아 있는 나를 보곤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땐 정말 언니가 날 두고 도망을 가는 건가 싶어 엉엉 울었다. 점점 더 커지는 불길을 보고만 있는데 언니가 양동이에 물을 퍼 담곤 달려와 부엌에 흩뿌렸다. 불길이 옮겨붙었던 팬에는 탄 냄새와 연기만이 남았다. 덩달아 흠뻑 젖은 나는 긴장이 풀려 젖은 채로 더 세게 울었다.
“앞으론 물을 뿌려, 진원.”
그새 수건을 들고 온 언니가 내 얼굴을 닦아 주며 말했다. 머리가 잔뜩 헝클어져 있는 모습으로.
젖었네. 다 젖어 버렸어. 이걸 어떻게 다 닦아. 푸념하듯 농담을 던지며 푸흐흐 웃는 언니를 따라 웃었다. 웃음이 나왔다. 어쩐지 말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언니는 꼭 나를 본인이 키운 줄로 알고 애처럼 대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언니와 나는 나이 차이가 꽤 돼서, 언니가 취업했을 무렵에도 나는 아직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내가 열네 살이 될 무렵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님은 죽기 전에도 매일 일을 하느라 우리 자매를 보는 일이 없었는데, 그래서 우리는 남들보다 각별했다. 적어도 내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진 말이다. 우리는 매일 붙어 다녔고, 방학이 되면 둘끼리 여행을 갔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제일 먼저 서로에게 물었고 옷장을 스스럼없이 공유했다.
언니가 싫어졌을 즈음에 나는 특이하다는 단어에 진절머리를 치고 있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어. 하면 돌아오는 질문들이 싫었다. 그러면 밥은 어떻게 먹어? 옷은 어떻게 사? 학교는 어떻게 와? 내가 일일이 대답하면 주로 돌아오는 말은 특이하네, 였다. 제일 참을 수 없었던 건 내가 우리 반의 여타 아이들과는 다른 쪽에 분류된다는 사실이었다. 분류 방법이 사회적 제도건 아이들의 시선이건 간에 똑같이 싫었다.
이전까지는 언니 이야기를 즐겨 했었다. 언니랑 여행 갈 거야. 이거 언니 옷인데 나한테도 딱 맞아. 우리 언니 공기업 취업해서 같이 밥 먹기로 했어.
와, 보통은 안 그러지 않나.
우리 오빠는 악마 같은데.
우리 언니는 내가 자기 옷 입으면 개 화내.
너넨 아무래도…. 그래서 그런가, 언니랑 사이가 좋을 수밖에 없나 보다.
아 그러네.
그런 대답이 싫어지고 부끄러워져서 나는 마음에 없는 말을 했다. 아니야, 우리도 엄청 싸워. 우리 언니도 엄청 못됐어. 여행도 난 가기 싫은데 억지로 가는 거야.
나 우리 언니 싫어. 난 그때부터 자기암시를 했다.
*
몇 달째 뉴스 메인은 2035 빙하 도시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기사가 차지하고 있었다. 기온이 상승하고 사람들이 기어 나오자 숨어 있던 정치인들도 다시 나타났다. 그들은 멈추었던 총선과 대선을 동시에 진행했고, 대선의 최대 화두가 이 재생 프로젝트였다.
파묻히지 않고 살아남은 지역뿐 아니라 눈 속에 파묻혀 버린 몇몇 동네들까지도 끄집어내 완벽한 국가 재건축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여당과 얼음을 파내는 순간 지반이 받을 부담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야당의 대립이 연일 이어졌다. 굳이 따지자면 남은 35퍼센트의 인구가 살기에는 지금 솟아나 있는 지역들만으로도 충분했다. 오천 년의 역사, 조상의 지혜가 깃든 땅. 명분 같지도 않은 명분보다는 그 뒤에 따라오는 마지막 이유가 더 중요했다. 고작 8년 전까지의 추억과 삶의 터전을 얼음 속 깊숙한 곳으로 묻어 버린 생존 국민들, 그들의 불안한 여론을 잡을 명분이 필요한 건 여당이나 야당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뉴 서울 랜드마크 건설 디자인 공모전. 나는 이 공모전을 윤과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 버려진 고층 빌딩을 이용한 랜드마크를 기획하다 현실성이 없다는 걸 깨달은 우리는 기획안을 뒤엎고 새로운 장소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당산역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허허벌판이었다. 대체 여길 왜 온 것이며, 제출 기한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이냐고 몇 번을 물어도 윤은 대답하지 않은 채 똑같은 말만을 반복했다. 따라와 보라니까. 보여줄 게 있어서 그래. 윤의 눈이 반쯤 돌아 있었다. 나를 감동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설렘과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그따위 종류의 감정이 윤의 눈에서 보였지만 굳이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따라 걸었다.
“만약에 말이야.”
“응.”
“너희 누나가 진짜로 죽은 게 맞는다면,”
“응.”
“날 원망할 거야?”
“음…….”
“대답해 줘.”
푹푹 꺼지는 발을 끄집어내며 걷고 또 걸었다. 언젠가는 물어봐야 할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영이라는 사람은 죽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또 한 명이 나를 등지게 될까 봐 무서웠다. 날씨가 따뜻해지니 별생각이 다 들었다. 나도 여타 사람들처럼 옛날로의, 정상적 사고로의 회귀를 하고 있었다.
“왜 널 원망해.”
“……”
“잠만 잔 나를 원망하겠지.”
대답할 때 잠깐 뒤를 돌았던 윤이 다시 앞을 보고 걸었다.
*
언니 입장에선 착하던 동생이 갑자기 차가워진 이유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담임은 언니가 상담 때 혹시 진원이가 아직도 사춘기일까요, 하고 물었다고 했다. 우리도 평범한, 그러니까, 사이가 좋지 않은, 자매일 뿐이라고 매일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나는 그때쯤 이미 그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담임의 그 말 또한 언니가 미운 이유에 하나를 더 보탤 뿐이었다.
그래도 언니는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말도 안 하고 건축학과에 입학 원서를 넣은 나에게 도면 설계 프로그램이 수월하게 돌아가는 맥북 프로를 선물했고, 알바를 할 필요가 없게 용돈을 넉넉히 줬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솔직히 말해 어렴풋이 알았다. 잘못한 건 나고 언니에겐 흠이 없다. 나는 몇 년 동안 철없이 굴어 언니를 슬프게 했다. 그 무렵부터는 그 사실 자체가 부끄러워 언니와 거리를 두었다.
3학년을 마치고 휴학했다. 아직 2년의 과정이 더 남아 있었지만 버틸 재간이 없었다. 당시에 난 자괴감에 죄책감이 겹쳐 우울증에 걸린 상태였다. 나와 맞지 않는 학과에 온 것 같았다. 의욕이 떨어져 학점은 곤두박질치는데 도저히 2년을 더 다닐 엄두가 안 났다. 언니가 보내는 카톡은 무시하면서 언니가 선물한 맥북은 계속 쓰는 것에 속이 아파져서 중고 업자에게 맥북을 팔고 그 돈으로 바리스타 학원에 등록했다. 언니는 계속 나를 응원했다. 진원, 너무 좋다. 다 배우면 내가 좋아하는 라떼 해줘. 그럼 나는 받아쳤다. 학원 다닌다고 라떼만 배우는 거 아니야.
언니는 나와 달리 걷는 걸 좋아했다. 자격증을 따고 매니저로 취업한 카페가 합정역에 있었고, 언니가 다녔던 공기업은 당산에 있었다. 일이 없어 정시 퇴근을 한 날에 언니는 곧잘 우리 카페로 놀러 왔다. 지하철 타면 5분 안에 오는 거리를 거의 한 시간이 걸려 내가 퇴근하기 직전에야 도착하는 게 늘 이상했는데, 물어볼 만한 염치가 생기지 않아 물어보진 않았다. 우리가 그 정도를 물어볼 수 있는 사이가 될까 하고.
그러다 어느 날엔 진상 손님도 없었고, 말썽을 부리던 에어컨도 수리했고, 급하게 올린 알바 공고에 괜찮아 보이는 한 명이 지원했고, 그래서 일을 정말 못 하던 알바 한 명에게 내일부턴 나오지 말라고 이야기했던 참이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밖에 나가 콧노래를 부르며 창문을 닦다가 뒤를 돌아보면, 해가 다 진 하늘에 부는 선선한 바람 같은 것들이, 정말 상쾌해서, 그날은 언니가 오는 날인데도 속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물을 수 있었다. 그날은 왠지 우리가 그 정도를 물어볼 수 있는 사이는 되는 것 같아서, 그럴 정도의 염치가 생겼고, 물었다. 왜 지하철을 타지 않느냐고. 왜 걸어서 한강을 건너오냐고.
“진원, 나는……. 그 풍경이 좋아. 한강 한가운데에서 보이는 노을 말이야. 너도 알 걸, 아마도.”
“그건 지하철 안에서도 볼 수 있잖아.”
“너무 짧잖아. 한 번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 봤는데, 몇 초 나왔게.”
“……”
“……12초 나왔어. 내가 아무리 고개를 뒤로 틀어서 거기에 집중해도 딱 12초 볼 수 있는 거야. 그건……. 너무 짧은 시간이야. 근데 거길 걸어서 건너면, 아무리 빨리 걸어도 30분은 걸려. 또 나는 빨리 걸을 필요가 없으니까. 그냥 천천히 한참 동안 걷는 거야. 한강 밑에 공원도 좀 내려다보면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도 참 즐거워 보이고, 그날 풍경에 어울리는 노래 고르는 것도 꽤 재밌어. 음악이 안 끝났는데 한강이 끝나면 괜히 좀 돌아가서 다시 걷기도 하고. 나한테는 그게 되게 힐링이야, 힐링.”
걷고 있는 다리가 바로 그 양화대교 옆 2호선 철길인 것은 걷기 시작한 지 20분이 지나서야 알았다. 푹푹 꺼지는 발밑에 철길의 흔적이라곤 없어서 알아차리기가 힘들었다. 걷다가 보니 더운 기분이 들어 롱패딩 지퍼를 열고 짧게 숨을 쉬었다.
여전히 여기 왜 왔는지는 설명하지 않는 윤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나도 그냥 걸었다. 이 철길을 지나며 스톱워치를 켰을 언니를, 고작 12초가 찍히는 화면을 보며 아쉬워했을 언니를 생각하며.
본 적이라곤 한 번도 없는 하얀 들판 위로 뚝 올라와 있는 어떤 다리 비슷한 곳. 그 위에도 눈이 덮여 있는. 우기가 시작되기 전, 그러니까 언니가 죽기 전에는 물론 본 적 없었고, 언니가 죽은 후에도 보려 하지 않았던, 어떤 황홀한, 될 수만 있다면 평생 이 안에 앉아있고 싶을 정도의,
12초를 지난다. 아쉬워한다. 그곳을 내가 20분째 걷고 있다.
기분이 확 나빠졌다. 불쾌한 후끈함은 덤이었다.
그날, 언니의 말을 듣고 나는 면박을 줬었다. 또 잘난 척하지, 또. 편하게 지하철 타고 그냥 집으로 가. 나 좀 기다리지 마. 그거는 진짜 한강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 허세야. 허세. 나는 이 정도로 감성적으로 산다, 나한테 과시하고 싶은 거야.
기분이 나름 좋은 날이었는데도, 언니와 말을 하니 또 대화가 이런 식이 되어버리는 건 누구 때문이었을까. 나 때문은 절대 아닐 거라고 당시의 나는 생각했다. 알게 모르게 그동안의 자책감이 해소되지 않고 쌓여왔던 거고, 오늘 딱 하루가 괜찮다고 기저의 우울이 나아질 리는 없다는 걸 간과했던 것이었으며, 그 우울은 내가 쌓고 싶어 쌓은 게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같이 살고 있는 집의 공과금과 대출 이자를 언니 혼자 다 내는 것에 대한 은은한 미안함이 마음속에서 필터로 걸러져 열등감으로 변하는. 그런 건 내 탓이 아니니까. 라고.
그때 언니가 했던 대답은 한마디였다. 그래, 미안해. 사과에도 종류가 있는데, 언니가 했던 사과는 진심의 사과였다. 자기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마음을 담은 한마디. 그러나, 허세를 부렸다는 것에 대한 사과가 아닌, 불편한 내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한 것에 대한 사과.
언니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나를 끝까지 초라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내가 진짜 초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허세 부리지 말라고 대놓고 화를 냈으면서, 웃기게도 나는 다음날 퇴근길에 합정과 당산 사이에서 언니 생각을 했다. 언니 말대로 노을은 정말로 예뻤다. 그건 사실 나 역시 그전에도 좋아하던 구간이었다. 넓고도 잔잔한 강에는 아주 조금의 움직임만이 있었다. 해가 지며 강을 비추면 강은 그대로 햇빛을 머금으며 또 동시에 나에게로 반사했다. 그렇게 강이 튕겨낸 빛이 내 동공에까지 닿으면 그때 눈이 부신 것이다. 살짝 눈을 찡그리다 보면 지하철은 터널로 들어오고, 후에 암전, 그리고 곧, 이번 역은 당산, 당산역입니다.
그 순간 내 안의 어떤 매듭이 뚝 하고 잘리는 기분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지어진 매듭을 문지르고 또 문지르며 직접 망가뜨렸다. 풀리지 않는 매듭이었다. 그렇다면 자르면 되는 것이었다.
몇 년 만에 결심했다. 언니에게 사과해야지. 다시 잘살아 볼 거야. 복학하고 졸업까진 가야겠다. 어쨌거나 전공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
그날은 오랜만에 언니가 칼퇴근을 한 날이었다. 또다시 당산에서 합정을 건너 카페로 오려는 언니에게 이미 집에 와 있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언니, 빨리 와.
고민하다가 카톡을 했다.
-오랜만에 파스타 먹고 싶다. 봉골레 파스타.
답장이 왔다.
*
그러니까. 무슨 생각을 하건, 내 결론은 다 내 언니라고. 아까 윤이 했던 말이 생각나 기분이 더 나빠졌다. 걔는 마치 내 마음 어디 깊숙한 곳에 있는 걸 긁으려고 내 앞에 나타난 사람 같았다. 화가 나서인지 계속 걸어서인지, 아까보다 훨씬 더운 기분이 들어 패딩을 벗었다.
“내가 생각한 것부터 말해볼게. 일단 핵심은 도시철도 리모델링인데, 어차피 지금 지반으로 지하철 재운행은 불가능하대. 그렇다면 지상에 있는 역사를 이어서 한 쪽은 기념관, 한쪽은 복합 문화시설. 이런 식으로 하는 거야. 어차피 롯데월드타워같이 높은 건물은 이제 못 지으니까. 아예 이미 서울에 쫙 깔려 있고 연결까지 돼 있는 역사를 이용하면 좀 특이한 랜드마크가, 근데 진원, 좀 덥지 않아?”
갑자기 너무 더웠다. 햇빛이 쏟아져 내려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소매를 걷었다. 마찬가지였던 모양인지 윤도 한참 열심히 떠들다 갑자기 부채질했다. 갑자기 이렇게 더울 리가, 그럴 리가 없는데. 윤이 중얼거리며 휴대폰을 켜 날씨 앱을 봤다. 윤의 표정이 눈에 띄게 심각해졌다.
“진원, 지금 여기 날씨가,”
“……”
“온도가, 28도야.”
주위를 둘러봤다.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눈은 엄청난 속도로 녹고 있었다. 다리 아래로 생긴 물길이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물길은 점점 더 빠르게, 그리고 크게 지상을 덮쳐들었다.
살지 않을 이유. 죽지 못할 이유. 두 가지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완전히 같은 것이다. 겹쳐 있다. 우린 평생 그 두 개 사이에서 저울질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까, 원래는.
재난 문자 경고음이 들렸다. 들어 보니 딱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재앙 재시작. 모두 대피. 기온 급상승.
윤은 무언가에 쫓기는 표정이 되어 내 손을 잡았다. 넋을 놓고 아래만 바라보고 있는 나를 낚아채 얼마 남지 않은 건너편을 향해 달렸다. 다리 위에는 엄청난 양의 눈과 얼음이 있었다. 그것들은 곧 물이 될 것이다. 그걸 버텨주고 있는 다리 밑의 얼음은 얼마 안 가 다 녹아버릴 것이다. 건축을 배우지 않았더라도 다리가 곧 하중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것임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우리는 한 방향을 향해 달렸다. 무너질 다리를 피해.
또 한 번 무언가가 사라진다. 나는 왜 죽어도 죽기 싫었던 것이었더라. 왜 윤을 살렸던 거였더라. 정말 아니꼬워서? 정말 내게 필요한 인물이어서? 그도 아니면.
그때 나는 파스타를 만들고 있었다. 오랜만에 언니가 칼퇴근을 한 날이었다.
-오랜만에 파스타 먹고 싶다. 봉골레 파스타.
*
그건 언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마늘에 볶은 향긋한 조개를 포크로 콕콕 찍어 먹는 행위 자체를 언니는 아끼고 사랑했다.
그날 사과를 결심한 나는 바로 냄비를 꺼내 물을 올리고, 파스타 면을 꺼내고, 마늘을 썰었다.
-언니가 해줄까? 같이 먹자.
-내가 할게. 언니는 요리를 너무 짜게 해.
언니는 그러면 자기는 같이 먹을 와인을 사 오겠다고 했다. 근데 자기가 그렇게 요리를 못 하냐며 입이 댓 발 나온 오리 이모티콘을 잔뜩 보냈다. 나는 휴대폰을 거실에 두고 끓는 물에 면을 넣었다. 그리곤 냉장고를 열었는데 조개가 없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는데, 먼저 장을 봐오는 것도 까먹고 내가 급하게 물을 올렸던 것이다.
그냥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까 하다가, 지갑을 챙겨 나와 마트로 향했다. 파스타 먹고 싶다. 봉골레 파스타. 언니가 뭔가를 콕 집어먹고 싶다고 했던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서.
부재중 전화 세 통, 마지막 통화로부터 3분 뒤에 문자 하나. 진원, 집안에 없는 거 맞지. 다행이야. 마트 세 군데를 돌아다니다가 빈손으로 허겁지겁 달렸다. 이미 층 너머로 번진 불, 저 너머에서 오고 있는 소방차.
3분간의 고민 이후 언니는 내가 없는 집으로 뛰어들었다. 언니와 달리 나는 그 앞에서 얼어붙은 채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차라리 지구가 지금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처음, 그다음엔, 차라리 내가 죽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
넋을 놓고 달리다가 우뚝 멈춰 섰다. 덩달아 발을 멈춘 윤이 다급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소용이 없어.”
“아니야. 진원, 제발. 살 수 있어.”
“살 이유가 없잖아.”
“왜 없어.”
“너희 누나 죽었어. 애저녁에 죽었어. 알고 있잖아.”
“야!”
“뭐!”
굉음이 들렸다. 눈과 얼음이 조각조각 갈라져 녹아서 강 위로 쾅 쾅, 떨어졌다. 강 위에 겨우 져 있던 살얼음이 무참히 깨졌다. 등 뒤에서 굉음이 들렸다. 눈과 얼음만으론 나기 힘든 소리, 철이 함께 있어야 나는 소리.
“알고 있어, 진원아. 이미 알고 있었어. 몇 달 전에 연락이 왔어. 당신 누나로 추정되는 유골 찾았다고.”
서울역 근처에, 과학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곳에, 파묻혀 있었다고 했어. 시신이 억울해서 거기 버티고 있었던 것 같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할 수가 없다고.
윤은 꼭 날 처음 봤을 때처럼 울었다. 억억, 하면서. 죽고 싶었다고. 근데 그때처럼 쉽게 죽을 방법이 없었다고. 한참 동안 어떻게 죽을지를 궁리하며 걷다가 이곳을 봤다고. 노을이 정말 예뻤다고.
그러니까 살자. 이게 희망일지 절망일지 어떻게 알아. 우리 둘 다 죄책감에 살고 있잖아. 부채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잖아.
살아가는 데 이유란 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불길에 활활 타올라 무너지던 집에 이어 눈 덮인 철도가 무너져 내린다.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도 얼어 있을 것 같았던 눈밭이 녹으며 단단한 철근을 순식간에 휘어 놓는다. 칠판 긁는 소리가 굉음처럼 여기저기에서 났다.
추위를 아득바득 버텨냈던 이유. 누워 있던 윤을 살렸던 이유. 윤의 누나만은 살아있길 빌고 또 빌었던 이유.
철도가 빠르게 무너졌다. 다시 윤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듯 위협적으로 움직이는 그것들이 우리의 뒤에서 같이 달리며 우릴 바짝 쫓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 도저히 뛸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할 즈음에, 발아래로 바람이 불었다.
윤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하강하며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손에서 힘을 풀려 하는 윤을 다시 내가 붙잡았다. 우리는 같이 아래로 내려갔다.
“떠 봐, 눈.”
어깨를 툭툭 치자 윤이 눈을 떴다. 찰나의 순간에 아름다운 노을을 봤다. 얼음은 다시 강이 되어 태양을 반사하고 있었다. 우리의 아래에는 그늘에 있어 아직 녹지 않은 눈밭이 있었다. 저것이 딱딱할지 아니면 폭신할지. 모르겠다.
괜찮을 것 같은데. 떨어져도 폭신할 것 같은데. 근데 만약에 죽어도 상관은 없을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