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사를 마무리하며
진이는 새벽마다 재미도 없는 강연 프로그램을 틀었다. 강연 프로그램이 나오지 않는 날이면 다큐멘터리나 교양 프로그램이라도 봤다. 9년을 같이 사는 동안 매일 그랬다. 죽음을 세 가지로 나눈다면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요. 죽음의 종류를 생각하는 것보다 강사를 바라보는 방청객들의 표정을 보는 게 더 흥미로웠다. 눈을 끔뻑이기만 하는 사람이 있고 시선을 피하는 사람이 있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도 있었다. 진이는 팔짱을 끼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입술을 달싹이는 진이를 가만히 바라보다 진이의 다리를 베고 누웠다. 진이는 나를 보지도 않으면서 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기 시작했다. 진이의 얼굴이 보이게끔 몸을 돌리면 그제야 진이가 나를 내려다봤다.
야, 진아. 너도 그런 생각해 본 적 있어?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온 사람들이 무슨 반응일지.
갑자기 왜? 내가 보지도 못할 걸 생각해서 뭐 해.
아니, 죽음 얘기하니까 궁금하잖아. 빨리 생각해 봐. 네 장례식에선 어떨 것 같은데?
…….
어떨 것 같냐니까 진아?
몰라. 가서 잠이나 자. 주말 내내 안 자고 놀다가 졸려서 출근하기 싫다고 하지 말고.
진이는 그 뒤론 입을 다물고 티브이를 보기 시작했다. 진이의 대답을 다시 보챘다가 이마나 한 대 맞고 몸을 일으켰다. 티브이에서는 재미없는 내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핸드폰을 켜면 새로운 메신저와 알람이 쌓여 있었다. 규하 너 곧 생일이더라. 가지고 싶은 거 없어? 한효원의 연락이었다. 요즘에는 근황 얘기도 잘 안 하더니 어쩐 일이지. 효원이 보낸 알림창을 크게 늘렸다 줄이기만 반복했다. 티브이 속 강사는 여전히 죽음과 관련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와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방법이나 알려주지. 결국 효원에게 답장하기를 미루고 이어폰을 연결했다.
새로 나온 웹드라마를 리뷰하는 나긋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리뷰 영상은 열여덟이나 되었을 것 같은 여학생이 교실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시작했다. 여학생의 옆에는 텅 빈 책상 하나가 더 붙어 있을 뿐이었다. 빈자리를 바라보다 엎드리는 여학생의 뒤통수 위로 효원의 모습이 겹쳐졌다. 효원이가 무당의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애들은 효원이의 옆자리를 피했다. 효원이의 어머니처럼 효원이도 귀신을 본다느니, 근처에 있으면 귀신 때문에 재수가 없어진다느니 하는 소문까지 돌았다. 효원이는 새 학기가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고도 비어 있는 자리를 자주 바라봤다. 티브이가 꺼지는 소리에 화면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벌써 자러 가게? 아니, 편의점 갈 건데 필요한 거 있냐? 별로, 밖에 추우니까 겉옷은 가지고 가. 진이는 고개를 설렁설렁 끄덕이더니 얇은 겉옷 하나만 챙겼다. 다른 거 가지고.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현관문 도어록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이가 나가는 그 잠깐 사이에 찬 바람이 들어와 팔을 문질렀다. 춥다고 금방 들어오겠네. 한 번 기지개를 켜곤 소파를 다 차지하고 누웠다. 진이가 돌아올 때까지 안 비키고 있으면 인상을 찡그릴 게 분명했다. 그리고 발로 툭툭 차려나. 진이의 반응을 상상하며 킬킬거렸다.
핸드폰을 켜 보고 있던 영상물을 재생했다. 여학생의 옆에 누군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새로 등장한 학생은 여학생을 신경 쓰지도 않고 공부만 했다. 쟤네도 저러다 친해지나. 진이는 그러다가 효원이랑 친해지던데. 둘이 어떻게 친해지게 되는지가 궁금했는데 리뷰를 하는 사람은 이미 둘이 소꿉친구가 된 후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흥미가 떨어져 영상을 끄고 재미있어 보이는 다른 영상물을 틀었다. 며칠 전에 끝난 드라마 클립본이었다. 남주인공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게 된 여주인공이 몸을 벌벌 떨다 달려 나가는 장면이 나왔다. 둘이 포옹을 나누고 있을 때쯤 메시지 미리보기 창이 떴다. 진이의 연락이었다. 나 네 선물로 줄 거 찾았어. 진짜 상상도 못 했을걸. 며칠 뒤에 있을 생일에 줄 선물을 얘기하는 모양이었다. 진이의 연락을 미리보기로만 슬쩍 보고 답하지 않았다. 그 밑에 있는 효원이의 연락을 눌렀다. 나 가지고 싶은 거 많은데 감당 가능해? 일단 만나서 술부터 마시고 싶은데. 잘 지냈어? 간단한 답장을 보내고 핸드폰을 엎어 놨다. 막상 얘기하니까 어색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점점 감기는 눈을 크게 뜨며 눈동자를 한 번 굴렸다. 그렇게 해도 여전히 눈이 무거웠다. 진이가 소파를 다 차지하고 누운 나를 보고 어떤 반응을 하는지 살펴보고, 선물 얘기 좀 하다가 효원이랑 만나게 될 것 같다는 얘기를 전해 줘야지. 잠들기 전에 왔으면 좋겠는데 얘 왜 안 와. 눈을 비비다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잠깐만 눈을 감고 있는다는 게 잠이 들어버린 모양이었다. 소파에서 몸을 구기고 잤더니 허리가 아팠다. 아직 창밖이 어두웠다. 핸드폰을 켜자 화면이 밝아 눈을 가늘게 떴다. 5시 40분. 진이가 들어왔을 텐데 그 소리도 못 들은 모양이었다. 들어와서 여기 있는 거 봤으면 좀 깨워주지. 투덜거리며 기지개를 켜다 진이의 방을 바라보았다. 문이 아직도 열려 있었다. 진이는 내가 화장실 가는 소리에도 깬다고 문은 꼭 닫고 잤다. 그렇다고 이 시간까지 안 자고 있을 리도 없었다. 무슨 일이래. 문 닫아 줘야겠지?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문 앞으로 다가섰으나 진이는 방 안에 없었다. 입고 나갔던 잠바도 걸려 있지 않았다. 산책하러 가겠다거나 아는 사람을 만나서 늦는다거나 하는 연락은 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도 수신음만 이어졌다. 불안한 상상을 쥐고 잠바 안에 팔을 집어넣었다. 진이를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한참을 찾아도 진이는 보이지 않았다. 동네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의점까지 가 진이의 모습을 설명했으나 모르겠다는 대답만 나왔다. 진이를 찾으러 나올 때는 꽤 어두웠는데 이미 날이 밝아지고 있었다. 근처에 빼놓은 편의점이 있었던가. 뒤를 돌아 다시 골목 사이를 지나갈 때 전화가 울렸다. 진이의 번호였다.
야 너 대체 어디…….
혹시 유은진 님 가족 되시나요?
놀이터에서 나오던 진이가 차를 피하지 못하고 사고가 일어났다는 경찰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손끝만 바라봤다. 자꾸만 초점이 어긋나서 흐려졌다가 정신을 차리기를 반복했다. 어제 본 여주인공은 고작 3개월 알고 지낸 남주인공이 다쳤다는 소식에도 몸을 떨던데. 그렇게 큰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조용히 몸 밖으로 피가 빠져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진이와 만난 게 중학교 1학년 때고 우리가 지금 28살이니까 벌써 15년째였다. 15년을 붙어 다녔고, 9년을 함께 살기까지 한 친구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데 집중이 되지 않았다. 손톱 옆에 올라온 거스러미만 잘 보였다. 죽어버린 살인데도 떼어버리면 아플 것 같았다. 분명 며칠 내내 거스러미를 떼어버린 걸 후회할 게 분명했다. 내가 아는 진이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다. 놀이터 방향에 있는 편의점은 훨씬 멀고 가게도 작았다. 굳이 그쪽으로 갈 필요가 없었다. 15년 동안 진이는 혼자 놀이터에 간 적도 없었다. 내가 가자고 해야 마지못해서 가곤 했던 애였다. 그런 애가 놀이터 앞 골목길에서 혼자 죽었을 리 없었다. 빌어먹을 낭만으로 사람 괴롭히지 말라는 말을 달고 살았으면서 낭만적인 말만 남겨두고 죽었을 리도 없었다. 손톱 옆에 올라온 거스러미를 뜯지 못해 오른손을 감싸 쥐었다. 장례식에서 어떨지 생각해 보랬지 내가 언제 직접 보고 싶댔나. 아침부터 뛰어다닌 탓에 지쳐서 자꾸만 고개가 숙였다. 진이가 자주 즐겨 신던 신발과 같은 신발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진아? 고개를 들면 진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아, 진짜 바보 같다. 진이한테 알려 주면 한참 웃겠다. 멍하게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3일 뒤, 내 생일 일정이 있습니다. 화면에 떠오른 안내 문자를 지웠다. 안내 문자가 사라진 자리를 읽지 않았던 진이의 연락이 채웠다. 진이의 연락을 누르지 못하고 조금 더 스크롤을 내렸다. 진이의 연락 밑으로 효원이의 답장이 와 있었다. 나야 잘 지냈지. 너랑 진이도 잘 지내지? 둘 다 시간 언제 돼, 내가 오늘이라도 맛있는 곳으로 안내할게. 자판을 눌렀다가 지웠다. 다시 자판을 눌렀다가 고개를 떨궜다. 장례식장에서 만나야 할 것 같아. 유은진이 죽었대. 혹시 너희 어머니 연락처 좀 주면 안 될까. 진이랑 인사만 하고 싶어서 그래. 아무렇지 않게 답장을 보내고 느릿하게 눈을 끔뻑였다. 눈앞이 흐릿하고 코가 막히기 시작했으나 그뿐이었다. 구청에 가서 진이의 사망 신고서를 작성하고, 장례 절차도 물어봐야 하고……. 할 일을 정리하다 뻑뻑한 눈가를 문질렀다.
걔 가족 없어요. 할머님도 돌아가셨고 그 후로는 저랑 계속 같이 살았어요. 그런 경우엔 친구가 장례 치러줄 수 있다던데…….
고인은 호적상 남아있는 가족분들이 있으셔서요. 가족분들을 찾아서 전부 시신 인계 거부 의사를 밝히셔야 신규하 님이 장례를 치르실 수 있어요.
그러면 보통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데요? 혹시 그거 오래 걸리나요?
보통 가족 찾는 데에 30일 정도 걸려요.
구청 직원은 자꾸만 진이의 가족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내가 여기에 있는데 도대체 누구를 찾는다는 걸까. 진이의 가족은 나였다. 진이의 또 다른 가족이었던 할머님은 18살 봄에 떠나셨다. 진이가 5살일 때 진이를 할머님께 떠맡기고 연락을 끊었다는 진이의 부모님은 당연히 가족에서 제외였다. 20살 봄에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함께 살기 시작했으니 벌써 9년째 함께 살고 있는 셈이었다. 이 정도면 가족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아? 바닥에 앉아 가계부를 쓰고 있는 진이의 등에 기대 그렇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래, 넌 내 가족이지. 그냥 말뿐이긴 하지만. 말뿐인 건 고작 낭만이 되는 거야 규하야. 낭만은 아무것도 해결 못 해. 나를 힐끗 바라보던 진이는 그렇게 대꾸하며 가계부를 정리했다. 아니라고 그렇게 우겼는데, 이번엔 진이의 말이 맞았다. 나는 진이의 장례식을 준비할 수도 없었다.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속으로 단어를 고르고 골랐다. 살아있는 어린 딸도 혼자 사는 할머님에게 버리듯이 두고 갔는데 죽은 딸이라고 데려가려고 할까요. 그 말은 혹여나 진이가 들으면 속상할 것 같았다. 그럼 30일 동안 진이는 잘 가라고 작별 인사도 못 듣고 차가운 곳에 누워 있어야 하나요. 돌아올 답이 뻔했다. 굳이 구청 공무원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뭐라도 뱉어 보려 입을 열었다가 다물기를 반복했다.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고 수많은 이유로 기각되었다. 제대로 질문하지도 못하고 구청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의미 없는 질문을 한두 개 더하긴 했는데 무슨 질문을 했는지, 무슨 답변을 들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현관에는 진이가 즐겨 신던 운동화 한 켤레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아침에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다른 신발을 신고 나갔던 모양이었다. 신을 사람도 없으니 저것도 신발장 안에 정리해 둬야 했다. 신발을 집으려 손을 뻗었다가 운동화 앞코만 느리게 문질렀다. 어제 이거 신고 갔으면 제대로 피했으려나. 말도 안 되는 가정을 하며 한참 진이의 신발만 만지작거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진이의 방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거뭇한 물체가 나왔다. 문턱 위에 선 거뭇한 물체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기울이더니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걸 뒤늦게 떠올렸다. 뒤로 물러서려다 발이 꼬여 벽을 짚고 섰다. 휘청인 건 나인데 거뭇한 물체가 더 크게 반응했다. 거뭇한 물체가 뻗은 손이 내게 닿지 못하고 떨어졌다. 거뭇한 물체는 신발장 옆 선반을 뒤적이는가 싶더니 약을 하나씩 꺼내 쥐여 줬다. 그건 내가 아파할 때 진이가 하던 행동이었다. 내가 안 꺼내 주면 약도 꺼낼지 모르냐? 그렇게 화를 내는 진이에게 나 아파, 하고 엄살을 부리면 등을 느리게 쓰다듬어 주곤 했다. 손에 들린 약통을 느리게 문질렀다. 차갑고 매끄러운 감각이 선명했다. 거뭇한 물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끝에 닿은 건 미지근하고 아주 조금 거칠었다. 엄지손가락으로 거뭇한 물체를 문지르며 가만히 바라보았다. 얄쌍하고 나와 키가 엇비슷했다. 고작해야 4센티 정도나 클 거였다. 그 정도야 진이가 아니어도 많았다. 경계선이 흐릿하고 회색과 검은색 정도로만 이루어져 있어 그림자 같기도 했다. 계속해서 문지르자 거뭇한 물체는 간지러운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앞과 뒤를 단번에 구분하기도 힘들었다. 계속 조용한 거 보니 말도 못 하는 모양이었다. 오늘 죽었다던 애가 이렇게 오려면 귀신 말고는 설명이 안 되는데 귀신이라기엔 물건도 잘 집고, 손에도 닿았다.
나 아파.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나, 아파 진아……. 아무런 답도 돌아오지 않았으나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가만히 서 있던 거뭇한 물체는 내 등을 느리게 쓰다듬었다. 거뭇한 물체의 팔을 잡아끌어 소파에 앉혔다. 거뭇한 물체가 일어나려는 걸 잡아 누르고 다리를 베고 누웠다. 잠시 나를 바라보던 거뭇한 물체는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빗어 내렸다. 주먹을 꾹 쥐었다. 거뭇한 물체는 진이었다. 죽어서도 진이가 나를 기억하고 찾아왔다. 진이가 죽을 때까지 나를 생각했다. 그랬으면 좋겠다. 거뭇한 물체를 끌어안았다. 진이가 아니더라도 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인생에 미련 가지는 거 아니라던 진이의 미련이 내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낭만적일까. 그렇게 되면 낭만이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던 진이의 말도 틀렸다. 네가 죽어서도 내게 돌아오는 것만큼 완벽한 해결법도 없었다. 진이의 허리를 끌어안고 배에 얼굴을 문질렀다. 내 얼굴을 미는 손에도 꿈쩍하지 않고 웃었다. 진이의 가족을 조금 더 오랫동안 찾았으면 좋겠다. 진이와 마지막 인사를 아주 오래 나누고 싶었다. 효원이에게 다시 연락을 해야겠다. 나도 너처럼 죽은 사람과 낭만적인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다고. 예전처럼 셋이서 만날 수 있겠다고.
몸을 웅크리고 이불을 끌어당기다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잠든 기억이 없었다. 방도 아니고 소파 위에서 자고 있었던 걸 보면 어제 진이의 다리를 베고 누웠던 상태 그대로 잠든 모양이었다. 덮지도 않았던 이불은 있는데 진이가 없었다. 비틀거리며 진이가 자고 있을 방을 찾아갔다. 방문에 귀를 가져다 대도 진이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신경을 더 곤두세워도 뒤에 있는 냉장고가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내가 자는 사이에 진이가 사라진 걸까. 이번에는 진이가 사라졌다고 알려줄 곳도 없는데. 엄지손톱을 깨물며 방 앞을 서성였다. 죽은 사람도 잠을 잘까. 혹시 진이가 자고 있는데 문을 열면 깰지도 몰랐다. 자는 거 방해하면 싫어하는데 내가 잠을 깨워서 기분이 나쁘다고 사라지기라도 하면. 한참을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문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작은 문틈 사이로 진이의 뒤통수가 보였다. 문을 열었는데도 날아오는 베개가 없는 걸 보면 아직 자는 모양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려다 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진이는 이불은 죄 내팽개쳤으면서 담요를 꼭 끌어안고 있었고, 어딘가 불편한 것처럼 자꾸 뒤척이면서도 일어나진 않았다. 죽어서도 습관은 안 변하는구나. 이거 속담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 실없는 생각이나 하며 조금 더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진이가 잘 보이는 곳을 찾으려 몇 번 더 자리를 옮기다 벽에 머리를 기댔다. 오늘도 진이가 보였다. 그거면 충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이가 몸을 뒤척이며 일어났다. 진이는 문 앞에 앉은 나를 보더니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더니 고개를 기울이며 문과 나를 번갈아 가리켰다. 그 손을 잡아 진이를 주방으로 끌었다. 일어나면 바로 토스트를 해 먹었는데 아무것도 안 먹고 진이를 기다리려니 배고팠다. 보통은 진이가 일어날 때쯤엔 난 이미 토스트를 물고 웹드라마나 애니메이션 같은 거나 보고 있었다. 토스트를 거의 다 먹고 남은 소스가 흘러내릴 때쯤에 일어난 진이가 방 밖으로 나와 잔소리를 하는 식이었다. 다신 돌아오지 못할 일상이었다. 팬 위에 버터를 올려놓고 옆에 있는 진이에게 몸을 기대었다. 버터가 반쯤 녹았을 때 진이도 나를 떼어 놓으려 점점 바닥으로 주저앉고 있었다. 진이의 팔을 잡아채 진이를 끌어 올렸다. 진이가 일어나고도 손을 놓지 않았다. 손을 놓으면 버터가 다 녹았을 때쯤엔 진이는 이미 녹아 사라진 후일 것 같았다. 귀신이 녹는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그랬다. 잠깐 토스트를 굽는 사이에도 진이는 사라지고 나는 뒤늦게 알고. 진이의 팔을 더 세게 붙잡았다. 불을 쓰고 있는데도 날이 싸늘했다. 진아 창문 좀 닫아 주라. 부탁하려다 진이를 끌고 함께 움직였다. 효원이에게 귀신이 사라지거나 녹지 않는 방법이 있는지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두 개 중 더 잘 구워진 토스트를 진이의 앞에 내려놓았다. 두 개를 준비해도 진이는 먹지 않을 것 같은데 내 몫만 준비하기도 좀 그랬다. 토스트를 바라보던 진이의 시선이 토스트 그릇과 맞닿아 있는 내 손가락을 타고 올라오다 내 얼굴까지 다다랐다. 한숨을 쉬는지 어깨를 크게 들썩인 진이는 그릇을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 죽어서 먹지도 못하는데 지금 나 놀리냐? 너나 많이 먹어. 말할 수만 있었다면 딱 그렇게 말하고 있었을까. 싫어도 먹는 척이라도 좀 해 혼자 먹기 싫어. 그릇을 다시 진이 쪽으로 밀었다. 진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으나 내 쪽으로 그릇을 밀지 않았다. 대신 토스트를 쥐고 있기만 할 뿐이었다. 역시 먹지는 않는구나. 토스트를 한입 물고 핸드폰을 켰다. 나를 걱정하는 효원이의 연락과 여전히 변하지 않은 진이의 마지막 문자가 떠 있었다. 토스트를 입에 물고 자판을 쳤다. 장례식장에서도 못 만나겠다. 당분간 장례식도 못 치를 것 같아. 그래도 진이가 귀신이 된 채로 집에 돌아왔어. 어머니 번호는 안 줘도 괜찮아. 진이를 슬쩍 바라보았다. 진이는 한 손으로 소파를 더듬거리는가 싶더니 리모컨을 찾았다. 티브이를 켜 굳이 채널을 하나씩 넘기며 느긋하게 방영 중인 방송을 훑었다. 효원이에게 진이는 다시 잘 지내고 있고 언제든 만나자는 연락을 추가로 전했다. 그사이에 진이는 스무 번을 넘게 채널을 넘기고 있었다. 몇 번 더 티브이에 나오는 얼굴이 바뀌었다. 느릿하고 낮은 중년의 남성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진이가 죽기 전에 함께 보던 그 강의 프로그램이 재방송되고 있었다. 진이는 채널을 넘기지 않았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강사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진이의 손을 잡았다. 입안에 있는 토스트가 퍼석하고 목이 막혔다.
내가 설거지할 동안 진이는 거실에 있는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릇 하나를 닦았을 때 진이는 탁자에 있는 달력을 만지작거리고 있었고, 다른 그릇 하나를 닦은 후에는 진이가 내게 오고 있었다. 진이는 무어라 입을 벙긋거리다 입가를 더듬었다. 할 말이라도 있어? 물으면 다시 입을 열었다가 내 팔을 툭 쳤다. 몇 번 더 팔을 친 진이는 펜과 종이를 가져와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손에 묻은 물기를 털며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아무런 답도 하지 않자 진이가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못 읽겠어 진아. 한참 더 들여다보다 입을 열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 같았다. 진이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번엔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진이가 그림을 지웠다가 그리기를 반복할 동안 핸드폰을 확인했다. 효원이의 문자가 쌓여 있었다. 미안한데 오늘 바로 만날 수 있을까. 진이도 같이. 내가 너희 집으로 갈게. 진이를 힐끗 바라보다 주소를 적어 주었다.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밤쯤에 도착할 것 같다는 답장이 돌아왔다. 오면 초인종 눌러. 어두울 땐 운전 조심하고. 짧은 걱정을 남기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진이가 팔을 두드려 고개를 돌리면 삐뚤빼뚤한 선들이 그려진 종이가 보였다. 이번에도 알아볼 수 없었다. 진이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입을 둥그렇게 모아 앞으로 내밀다 손뼉을 쳤다. 촛불 부는 거? 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손가락 두 개를 폈다. 이틀 뒤에 있을 내 생일을 얘기하고 싶은 것 같았다. 다시 진이가 그린 그림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알아볼 수 없는 그림을 문질렀다. 선물 말하는 거야? 어렴풋이 무슨 그림인지 알 것도 같았다. 진이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으로 동그란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이게 무슨 소리야……. 네 선물 동그랗다고? 네가 선물이 어딨어. 진이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몇 번 끔뻑이다 내 다리를 찼다. 맞은 곳을 문지르다 자리를 옮기려는 진이의 팔을 붙잡았다.
진아, 오늘 효원이랑 만나기로 했어. 오랜만에 효원이 안 보고 싶어?
…….
아니, 인사해 주라고 말한 거 아니거든? 손 흔들지 마. 미안한데 우리 집으로 오겠다고 그랬거든? 밖에서 만나자고 할까 하다가 괜히 사람들이 너 볼 수 있을까 봐……. 그리고 효원이면 귀신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 줄 수 있을 거 아니야. 혹시 모르잖아, 막 작아지는 능력 쓸 수 있는데 모르고 있고 그럴 수도. 작아지면 나랑 같이 출근해도 되는데.
…….
왜 그렇게 봐? 너도 혼자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 나는 네가 편의점 갔다 오는 거 기다리는 것도 심심하던데.
진이는 귀찮은지 대답도 하지 않고 거실로 돌아갔다. 마음대로 정해서 화났어? 진이의 뒤를 따라가며 표정을 살폈다. 입술을 조금 내밀고 있고 눈도 평소보다 가늘게 뜬 걸 봐서는 화난 게 맞는 모양이었다. 진아 미안해, 응? 두어 번 사과하자 진이는 내 입을 틀어막았다. 입술을 뻐끔거리던 진이는 머리를 붙잡더니 혼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진이의 방 앞까지 갔다가 소파로 돌아와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혼자 돌아가고 있었던 티브이 화면을 보다 진이의 방문을 살피기를 반복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문을 열면 하얀 꽃다발을 들고 있는 효원이가 보였다. 진이 줄 꽃 사 온 거야? 응, 국화는 없다길래……. 효원이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꽃다발을 더 끌어안았다. 효원이는 문밖에서 머뭇거리며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입술을 잘근거리거나 꽃다발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내 건 안 사 와서 못 들어오는 거야? 그 질문에 효원이는 작게 입을 벌리더니 지금이라도 선물을 사 오겠다며 몸을 돌렸다. 효원이가 진짜 뭐라도 사 오기 전에 붙잡아 집 안으로 안내했다. 진이는 현관문 닫히는 소리를 들었는지 느린 걸음으로 나와 효원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효원이는 진이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효원이는 계속 그 방향을 보며 서 있을 뿐 손을 흔들거나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효원이가 고개를 돌리고 있어 무슨 표정을 하는지 정확히 진이를 보고 있는 게 맞는지 알 수 없었다. 효원아. 효원이는 대답이 없었다. 다시 한번 효원이의 이름을 부르자 효원이가 나를 바라봤다.
규하야. 더 늦기 전에 보내야 해.
갑자기 무슨 소리야. 때 되면 너희 어머니께 부탁해서 퇴마든 굿이든 할 텐데 벌써부터 영업하는 거야?
우리 엄마까지 부를 거 없어. 내가 할 수 있으니까. 지금 보내줘야 해 규하야.
효원이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나와 효원이를 보고 있는 진이의 표정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이럴 때엔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무슨 말도 덧붙일 수가 없어서 입만 벙긋거리다 엄지손가락을 느릿하게 문질렀다. 진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설명을 들을 때에 떼지 못했던 거스러미가 눈에 거슬렸다. 거스러미를 잡아 뜯으려다 헛손질하기를 몇 번 반복했다. 잡기도 어려운 걸 억지로 뜯어내자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살이 파인 모양이었다. 역시 뜯지 말았어야 했는데. 규하야. 효원이가 다시 내 이름을 부르고 진이가 내 손을 잡았다. 파인 살이 아파서 볼 안쪽 살을 씹었다.
규하야. 자기 가족이나 애인 편하게 보내달라고 엄마한테 찾아온 사람들이 제일 많이 후회하는 게 뭔지 알아?
……뭔데?
자기 욕심 때문에 너무 늦게 보내줘서 미안하다고.
…….
귀신이 이승에 오래 있어서 좋을 거 하나도 없어 규하야. 떠나지 못한 사람도 붙잡은 사람도 다 힘들어지기만 해.
잠시 침묵하던 효원이는 몸을 일으켰다. 효원이는 안고 있던 꽃다발을 거실 탁자 위에 올려놓더니 내 어깨를 느리게 두드렸다. 바깥 한 바퀴만 돌고 올게. 밖으로 나가는 효원이에게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인사 한마디도 뱉지 못했다. 효원이가 빠져나가자 집 안에는 내 숨소리 하나만 울렸다. 일부러 크게 숨을 쉬었다. 들리는 숨소리가 하나뿐이라는 게 더 실감 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숨소리를 죽이며 진이의 입가를 만졌다. 진이의 입꼬리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았다. 손을 더 올려 눈가를 더듬어도 눈이 휘어져 있거나 물기가 묻어나지 않았다. 진이는 텅 빈 눈동자로 나와 눈을 맞출 뿐이었다.
진아. 너도 힘들어?
…….
되게 이상해. 너는 아무 말도 안 하는데 자꾸 말이 달라져. 당연한 거 묻지 말고 보내 달라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다가 난리다 진아.
…….
힘들어도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돼? 내가 네 가족이라며. 가족이라면서 장례식도 못 치르게 하고 생일 선물도 안 주고. 너 서프라이즈도 구려. 누가 친구 죽었다는 연락 받기 같은 걸 해줘? 진짜 다신 하지 마.
…….
……설마 네 장례식장이 집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겠다 너. 나 먹고 싶은 걸로만 차릴 거야. 생일 선물 주고 가면 한 달 뒤에는 장례식 제대로 해줄게.
진이는 느리게 내 등을 느리게 쓰다듬었다. 나 안 아픈데. 중얼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진이에게 기대려다 멈추었다. 진이에게 닿지 못한 머리가 허공을 맴돌았다. 그렇게 멈춘 채로 앞만 바라보았다. 애매한 자세 탓에 목이 뻐근해졌다. 그게 전부였다. 생각만큼 아프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코를 훌쩍이다 고개를 들고 핸드폰을 찾았다. 효원아 너 빨리 와야겠다. 진이 보내고 내 생일 파티까지 하려면 할 거 많아 우리. 가볍게 연락을 보내고 눈가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 발을 움직였다. 효원이가 오기 전에 진이 사진 정도는 찾아 둬야 했다.
다시 돌아온 효원이는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있었다. 이게 다 뭐야? 효원이는 식탁 위에 짐을 얹더니 그 안에서 반찬 통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건 나물이고, 이건 은진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고, 이건 규하 네가 좋아하는 귤이고……. 진이는 다른 짐을 열더니 그 안에서 다른 반찬 통들을 꺼냈다. 진이가 좋아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대부분이었다. 대체 언제 준비한 건데? 물으면 효원이는 오기 전에 그냥……. 하고 얼버무리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을 것 같아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목을 쓸었다. 장례 안 치를 거라고 했으면 큰일 났겠네……. 장난스레 대꾸하며 반찬을 예쁜 그릇에 옮겨 담기 시작했다. 그랬으면 네 생일상으로 써야지. 효원이는 거실에 있던 탁자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그 위에 반찬을 가져다 뒀다. 내가 계란말이를 그릇에 옮기자 진이가 그릇을 가져가려 손을 내밀었다. 누가 자기 장례식 준비하는 걸 도와? 내가 진이의 손을 밀어내면 효원이가 진이를 소파로 데려갔다. 진이는 소파에 앉아 고개를 돌리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진이의 조촐한 장례식이 거의 다 준비되었으나 셋 중에 아무도 울지 않았다.
규하야. 은진이 가기 전에 이거.
이게 뭔데?
은진이가 놀이터 근처에서 죽었다길래 갔다가 찾은 거. 네가 맨날 하고 다니던 목도리지 그거? 은진이가 놀라게 하려고 숨겨뒀었나 봐.
쇼핑백에는 진이에게 생일 선물로 받았다가 잃어버렸던 회색 목도리가 들어있었다. 선물 받은 지 오래된 탓에 여기저기 올이 풀리려 했으나 매일 매고 다녔던 목도리였다. 목도리를 만지작거리다 진이를 바라봤다. 진이는 입꼬리를 올린 채 눈을 접어 웃고 있었다. 허공에 손가락으로 네모난 상자와 리본을 그린 진이는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생일 축하해, 생일마다 이렇게 셋이 모이겠다 우리. 효원이가 손을 잡자 진이도 반대 손을 잡아 왔다. 목도리를 한 번 꾹 쥐었다가 목에 둘렀다. 눈앞이 흐릿하고 코가 막혀왔으나 괜찮았다. 마지막 인사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