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잠
찬 공기가 이불을 뚫고 들어와 피부를 찌르는 탓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더위가 가신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집 안이 서늘했다. 소설이다. 24절기를 전부 아는 건 아니지만 소설만큼은 제대로 알아챘다. 소설은 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비로소 겨울임을 알려주는 절기니까. 눈이라도 쌓인 것처럼 몸이 무겁고 잠이 쏟아졌다. 이럴 때면 겨울잠을 잘 수 있는 동물이 되고 싶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다가 도로 내렸다. 이럴 때일수록 움직여야 했다. 이불에서 겨우 팔을 빼 휴대폰 화면을 켜자마자 전화가 울렸다. 익숙한 듯 낯선 번호가 상단에 적혀 있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사무적인 말투의 남자 목소리가 이름을 불렀다.
– 이수현 씨 맞으실까요.
사뭇 심각한 목소리에 자세를 고쳐 앉아 맞다고 하자 남자는 오랜만에 듣는 이름을 꺼냈다.
– 지소은 님이 깨어나 연락드립니다.
스무 번째 소설을 맞이한 11월 22일, 소은이 짧은 동면을 끝내고 깨어났다.
인공동면이 임상실험까지 이렇게 빠르게 이루어질 거라고 사람들은 쉽게 예측하지 못했다. 윤리적인 문제를 넘어서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과학은 모든 걸 해결할 힘을 가지고 있었고, 인간은 끝내 인공동면을 성공시켰다. 곧 우주 영화처럼 다른 행성으로 멀리 떠날 때 동면을 이용해 시간을 멈추는 게 가능할 거란 소식에 온 지구가 떠들썩해졌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인류를 만나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터였다. 실행을 위한 모든 실험을 마치고 정부는 첫 번째 참가자를 모집했다. 소은은 그 해 만났다.
인공동면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기사가 뜨자마자 여러 인터넷 카페가 생겨났다. 인공동면을 함께 할 사람을 모집하는 카페부터 동면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카페 등 가지가 뻗어가듯 인공동면은 빠르게 퍼져 갔다. 소은은 동면을 함께 할 사람을 찾기 위해 카페에 막 가입한 신입 회원이었다.
소은을 처음 만난 해의 소설도 11월 22일이었다. 유독 추위를 잘 탔던 나는 옷을 두툼히 입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한 카페 회원이 자신과 함께 첫 번째 참가자가 되자는 쪽지를 보내서였다. 처음 보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는 상식은 나중에 소은을 집에 들이고 나서야 떠올랐다. 아이보리색의 떡볶이 코트를 입고 온 소은은 나이보다 더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별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어색해지길 반복했다. 말재주가 없는 게 처음으로 원망스러운 순간이었다.
소은은 멍하니 창문을 보다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제 유일한 목표예요. 왜 그런 거 하나씩 있잖아요. 막연하지만 이루고 싶은 거. 저는 새로운 세대 속에서 살고 싶거든요.
새로운 세대가 뭔지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괜한 논쟁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저 몇백 년 뒤의 지구를 막연하게 머릿속에서 그려보다 말았다. 내가 아무 말 없자 소은은 조금 상기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들어 줄 사람이 생겨 기쁜 듯 그녀는 말하면서 종종 옅은 미소를 짓기도 했다. 사람의 웃는 얼굴을 마주 보는 게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얘기보다 얼굴에 더 신경이 집중됐다. 소은은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그 모습은 말한다는 행위보다는 배설한다는 행위에 더 가까웠다.
소은은 더 이상 입에 남는 말이 없는지 만족스럽게 웃으며 앞에 놓인 커피를 홀짝였다. 다시 오랜 정적이 이어졌다. 소은은 입에 빨대를 문 채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내가 말할 차례라는 걸 알았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다신 안 볼 것 같이 인사하던 마지막과 달리 소은은 쪽지를 보냈고 나는 꾸준히 답했다.
원래라면 소은은 아주 먼 미래에, 빨라도 2300년에 깨어날 예정이었다. 그런 면에서 소은은 동면에 든 사람들 중에서도 유독 비정상적으로 빨리 깬 편이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긴 건지, 기계 이상인지 알 길이 없지만 문제가 있는 건 확실했다.
대충 씻고 옷을 아무거나 주워 입고 지하철을 타는 순간까지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소은을 다시 만날 생각에 설렌다거나 걱정이 된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다. 그저 30분 만이라도 더 자고 싶었다.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제 얼굴을 보자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했고, 피부는 20년 전보다 더 푸석했다. 어제 야근을 한 탓에 피곤함도 묻어 있었다. 소은이 만약 알아보지 못한다고 해도 이해가 될 정도로 20년 전과는 많은 게 달라졌다. 검지로 주름을 억지로 펴보려고 했지만, 피부만 빨개질 뿐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빠르게 지나가는 바깥 풍경에 시선을 뒀다. 왜 지금 깨어난 걸까.
카페 이후 몇 번의 만남이 더 이루어졌다. 쪽지에서 시작한 연락은 전화와 문자로 나아갔고, 소은은 처음 집에 초대된 이후 매번 갖은 핑계를 대며 집에 찾아왔다. 한두 번 받아주자 이제는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매번 찾아오는 걸 집들이라고 생각했는지 선물은 항상 빼놓지 않았다. 주로 맥주 두 캔과 과자가 전부였지만. 맥주를 따며 소은은 항상 얘기하는 버스 너머의 풍경에 대해 말했다.
점점 올라올수록 건물이 많아져요. 서울에 산이 있다는 게 거짓말인 거 같아요. 어쩜 건물만 보여.
소은은 그게 아직 적응이 안 된다고 하면서 젓가락으로 과자를 집어 먹었다.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왜 왔냐고 물었다. 오늘은 또 어떤 핑계를 궁리해 왔을지 몇 가지 답을 예상했지만, 소은은 간단하고 명료한 답을 내놓았다.
보고 싶어서 왔죠.
그게 다야?
소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말고 무슨 답이 더 필요하냐는 듯 어깨까지 으쓱거렸다. 집에서 자기 싫다는 말이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소은은 젓가락으로 과자 두 개 집기에 집중하면서 웅얼거렸다.
핑계 만들기 너무 귀찮아요. 어차피 언니는 믿지도 않잖아.
처음부터 소은의 말을 믿지 않은 건 아니었다. 목소리와 몸을 떨며 찾아오는 소은의 모습은 거절하기 미안할 정도로 불안해 보였다. 그래서 들어오라고 한 건데, 점점 집 안에 소은의 흔적이 남기 시작했다. 칫솔이 두 개로 늘어났고, 베개도 두 개가 고정이 되었다. 무엇보다 집안에서 소은에게 나는 달달한 향이 집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언니랑 그냥 같이 살면 좋을 텐데.
소은의 시선을 따라 거실 옆에 있는 큰 방을 봤다. 그 방은 이모의 것이었다. 이모가 병원에 입원하고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살던 방. 소은은 그 방을 가리키며 뭐가 있길래 문이 항상 닫혀 있는 거냐고 물었다. 주인 잃은 이모의 물건이 그곳에 여전히 살고 있었다.
이모는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당당했고, 모든 걸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이 이혼하고 엄마는 곧장 이모에게 찾아갔다. 이모는 엄마보다 언니였고, 엄마 말로는 돈도 더 많다고 했다. 그 두 가지 조건은 엄마가 이모에게 나를 떠밀 수 있는 명분이 되었다. 엄마는 내 손을 마지막으로 세게 잡아 준 뒤 맞은편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이모에게 보냈다. 정확히는 떠밀었다. 등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토닥임이 재촉처럼 느껴졌다. 이모는 엄마의 체온이 아직 남아 있는 손을 세게 잡았다.
소식 전해 줄게. 자주 보러 와.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보는 앞에서 나를 거부했다.
미안해, 둘 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입안에서 모래알처럼 까끌까끌한 무언가를 토할 것만 같아서. 등을 돌려 이모의 손과 그 얼굴을 번갈아 봤다. 이모는 내 손을 더욱더 세게 잡고 엄마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노려봤다. 분노와 동시에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이모는 무책임하게 제 딸을 버린 동생을 원망하고 분노하면서도 동정하고 있는 걸까. 동정은 엄마보다 나한테 더 잘 어울리는 건데. 엄마가 완전히 사라지자 이모는 몸을 돌려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엄마의 손보다 따뜻하고 안정적인 체온이 느껴졌다.
같이 행복하게 살자. 엄마가 질투할 정도로 행복하게.
장난스럽게 웃는 이모의 얼굴은 아까와 달리 눈썹이 팔자로 내려가지도 눈매가 매섭지도 않았다. 그저 장난스러운 웃음만 남아 있었다. 그 웃음을 보며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뒷말이 마음에 들었다, 엄마가 질투할 정도로 행복하게 살자는 그 말이.
이모는 함께 살면서 효도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내가 효도는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었을 때, 이모는 특유의 가벼운 웃음을 지으면서 방법을 하나하나 일러 줬다. 마지막 방법은 필수라며 강조도 잊지 않았다.
너를 사랑해야 강해져. 강한 사람이 되는 게 내겐 효도야.
그런 의미에서 이모는 정말 강했다. 그리고 영원히 강할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이모가 병상에서 모든 힘을 끌어와 양손으로 겨우 내 한 손을 잡고 운을 뗐다.
널 위해 살아. 나는 이미 다 받았어. 강한 사람이 돼.
하지만 난 여전히 사랑하지 못했고, 강한 사람이 되지 못해서 이모를 보낼 수 없었다.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놓지 못했다. 날 위해 살려면 이모가 필요했다. 이모와의 기억이 영원히 필요했고, 나는 점점 늙어갔다. 그런 점에서 동면은 완벽한 해결책이었다. 더 먼 미래에도 이모의 기억을 가지고 살 수 있을 테니까. 지금 도망쳐도 이모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거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소은은 한참을 그 방 앞에서 서성거렸다. 들어가 보고 싶다는 마음과 이모의 방이라는 사실이 부딪히는 모양이었다. 마시고 있던 맥주를 내려놓고 팔을 괴고 가만히 소은을 구경했다.
들어가고 싶어?
작은 목소리로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선뜻 들어가 보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 이모가 그곳에 있는데. 정적이 한참 이어지고 나는 별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소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맥주 마시는 소리가 주고받듯 이어졌다.
방 필요 없으니까 같이 살면 안 돼요?
너무 늦었다. 막차 끊겼을 것 같은데 거실에서 자고 가.
나는 말을 돌렸다.
시설에 도착하자 정장 차림의 남자가 이름을 묻고 자연스럽게 소은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이미 깨어나서 임시로 만들어 둔 회복실에 있다고 했다. 왜 임시인지 묻자 남자는 머뭇거리다가 아직 완벽히 완성되지 않아 참가자들이 깨어나기 전까지 완성할 생각이었다고 했다. 남자의 말에 이맛살을 잔뜩 찌푸렸다. 이런 곳을 믿고 소은이 동면에 들게 놔뒀다는 사실이 조금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남자는 회복실 입구에서 카드키를 주고 자리를 떠났다. 20년 만에 깨어난 사람을 대하는 태도치고 남자는 무덤덤했다. 오히려 관심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같았다. 나는 작게 심호흡을 한 뒤 출입문에 카드키를 댔다. 문이 열리자 침대 위에 가지런히 누운 소은의 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24살인 지소은은 47살이 된 이수현을 어떻게 볼까.
언니, 안 오고 뭐 해요.
입구 앞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멈춰있자 소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몸을 일으킨 소은이 커튼을 살짝 걷어내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주름이 생기고 피곤함이 사라지지 않는 얼굴을 한 상태였지만 소은은 단번에 알아본 듯했다. 나는 천천히, 아주 느린 걸음으로 소은의 앞에 섰다. 가까이서 본 그녀는 조금 야윈 상태였다. 손목과 손가락이 더 가늘어져 뼈가 드러났고, 볼도 조금 패여 있었다.
왜 이렇게 야위었어.
언니는 눈가에 주름도 생기고, 더 어른처럼 보여요.
당연하지. 나 이제 47살이야.
오랜만이라고 눈물이 나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평소에 하던 가벼운 말이 튀어나왔다. 마치 27살로 돌아가 소은을 만난 기분이었다. 침대 끝에 걸터앉자 소은의 손이 이마를 시작으로 천천히 얼굴을 쓸어내렸다.
진짜 오래 자긴 했구나. 이렇게 달라질 줄이야.
당연하지. 20년이면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데.
그래도 언니는 변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소은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회복실에는 우리 외에 아무도 없었고, 숨소리만 간간이 들리고 있던 탓에 소리가 은은히 울렸다. 나는 그런 건 없다고 말하고 소은을 도로 눕혔다. 아직 동트지 않은 새벽이었다.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으니 소은이 손을 뻗어 무릎 위에 올렸다. 그 손을 맞잡자 시린 냉기가 피부를 찔렀다. 내 손은 따뜻하길 바라며 양손으로 소은의 손을 꼭 잡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얼핏 잡은 손이 작게 떨렸던 것 같기도 했다.
아침이 되자마자 간호사와 의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몰려온 탓에 어쩔 수 없이 눈이 떠졌다. 소은은 옆에 빈 침대로 가서 자라고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젓고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오히려 소은은 관심 없다는 듯 왼팔에 꽂힌 주삿바늘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진찰이 다 끝나고 떠나기 전에 의사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밖으로 나가자는 손짓을 했다.
환자가 어제는 자던가요?
의사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묻자 의사는 아까보다 느려진 속도로 말했다.
환자가 깨어나자마자 잠을 깰 수 있는 약은 없냐고 물었어요. 아까 얼굴을 보니 밤새 깨어 있는 것 같은 얼굴이기도 했고요. 새벽에 환자가 자는 걸 봤나요?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먼저 잤는데 봤을 리가.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알려 주는 그의 표정에서 귀찮음이 읽혔다. 아마도 예상보다 너무 빨리 깨어난 소은이 탓에 급히 들어온 것 같았다. 멀어지는 의사를 보다가 회복실 안으로 들어갔다. 등받이를 올려 앉은 자세를 한 채 눈을 감은 소은이 있었다. 잠이 든 모양인지 희미하게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내부를 채웠다. 조심스럽게 앞에 앉았지만 결국 인기척을 느꼈는지 소은이 경기하듯 몸을 떨며 눈을 떴다.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저 지금 잠들었어요?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악몽을 꿨나. 그 순간 의사의 말이 뇌리에 스쳤다.
응. 너 혹시 어제 안 잤어?
20년 전보다 탁하고 낮은 목소리가 회복실 안에 맴돌았다.
응. 언제 깨어날 줄 알고 자.
높고 어린 음성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이모는 한 번도 나를 불쌍하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가끔 보는 할머니도 그랬다. 이모는 주위에 딸이라고 소개하면서도 나에게는 엄마라고 부를 필요 없다고 했다. 그 모습에 작은 오기가 생겼다. 편하고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의무를 자꾸 쥐여 주는 탓이었다. 이모는 가끔 엄마 이야기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말을 꼭 붙였다.
수현이 네가 더 행복할 거야.
왜?
엄마는 이렇게 이쁜 널 버린 걸 평생 후회할 거니까.
엄마는 후회하지 않는다. 않을 것이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이모에게 가는 동안 그 후련한 얼굴과 미세하게 올라간 입꼬리를 봤으니까.
이모와 함께 지내기 시작하고 며칠간은 이모 옆에 붙어서 잤다. 어린애처럼 함께 자자고 졸랐다가 울기도 했다. 나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었다. 그럴 때마다 이모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렇지만 그게 엄마를 보던 이모의 표정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이모는 떠맡겨진 조카가 아니라 진짜 딸을 보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소은은 자주 그 위로 기어 올라왔다. 거실이 너무 춥다고 이불을 꽁꽁 싸매고 몸을 일부러 떨고는 웃었다. 절대 쫓아내지 못한다는 믿음이 담긴 웃음이었다. 그러면 나는 안 된다고 잔소리하면서도 이불을 목 끝까지 올려 줬다. 이모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고 난 뒤 며칠 지나지 않아 소은은 캐리어 하나를 끌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뭐야?
제 짐이에요. 거실에서 지내도 돼요?
얼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여분의 이불을 꺼냈다. 소은은 웃지도 울지도 않은 어딘가 묘한 얼굴로 캐리어를 열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거실에 이불을 놓고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소은이 고개를 돌려 눈을 맞췄다.
제 표정 이상해요?
조금.
소은은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짐을 정리하는 손이 점점 느려지고 어깨가 축 처졌다.
딱히 화가 나거나 하진 않아요. 굳이 내가 필요 없을 것 같아서 나온 거예요. 내 자리가 완벽하게 없어진 걸 봐버렸거든요.
큰 싸움은 아니라고 했다.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본인이 먼저 도망쳐 나온 거라고 소은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엄마가 갑자기 친한 척을 하는 거예요. 이상하게. 그래서 왜 그런가 했더니 동생이 엄마한테 돈을 달라고 했더라고요. 엄마는 그 돈을 받아 보려고 친한 척을 한 거예요. 평생을 무시한 딸인데. 어이없지 않아요?
나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소은은 침을 크게 한 번 삼키고 다시 말을 이었다. 아까보다 더 낮은 목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그때 진짜 필요 없어졌다고 생각했어요. 남아 있는 쓸모가 그거라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
말이 다 끝나자 소은은 눈으로 집 안을 둘러봤다. 마치 제 쓸모를 찾으려는 것처럼 그 시선이 애처로웠다. 나는 소은에게 침대에서 같이 자자고 했다. 이모가 군말 없이 제 침대의 절반을 내어준 것처럼. 너의 쓸모는 이 침대의 반을 차지하는 것부터 시작이야.
침대는 푹신함에 기대 모든 걸 말하게 했다. 잠결에 마음대로 움직이는 입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더니 나는 어느새 소은의 가족 사정을 알게 됐고 소은은 이모를 만나고 이모의 방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소은은 이모의 방에 들어가도 된다는 허락을 맡았지만, 여전히 침대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고 나는 점점 이모처럼 행동하고 싶어 했다.
언니, 참가자 신청받아요!
어느 날 소은이 휴대폰을 얼굴 가까이 들이밀었다. 한껏 상기된 목소리가 그녀의 흥분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나는 느리게 액정 속 글씨를 읽어 갔다. 복잡한 말들 속에 동면 참가 희망자에 관한 이야기가 아래 나열된 채 있었다. 그렇구나. 그토록 원하던 동면이었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가라앉았다. 시원찮은 반응에 소은은 아까보다 진정된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 좋지 않아요?
좋네….
소은은 동면에 들려고 신청할 게 분명했으니 처음 약속처럼 함께하는 게 맞았다. 우리의 본 목적은 동면이었으니까. 소은을 가만히 응시하자 그녀가 왜 그러냐며 앞에 섰다. 이모의 행동을 알고서 따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침대의 반이 채워지지 않으면 많이 허전해졌다.
안 할 거예요…?
소은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나는 그런 소은의 양손을 잡았다.
그냥 둘이 이러고 살면 안 될까? 소은아?
소은의 얼굴이 점점 구겨졌지만, 손을 빼진 않았다. 내가 너무 세게 잡고 있어 못 뺀 것에 가깝겠지만.
소은은 정말로 자지 않으려는 건지 스스로 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우연히 잠든 걸 보게 되더라도 금세 몸을 떨며 일어나려고 애썼다. 머리를 쥐어뜯고 허벅지를 때리기도 했다. 한번은 강도가 너무 심해 안정제를 투여하고 검사를 받기도 했다. 지친 얼굴을 한 소은은 금세 다시 잠에 빠졌다. 미간이 여전히 구겨져 있어 손가락으로 꾹 눌렀지만 그럴수록 더 심해지기만 했다.
한창 일이 바빠서 다행이었다. 시간 내서 소은을 보러 가기까지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24살인 소은은 20년 전보다 더 어려지고 어려워졌다. 소은은 아침, 점심, 저녁 가리지 않고 연락을 보냈다. 답이 느리면 느리다고 삐졌고, 그렇다고 바로 답장하면 멈추지 않았다. 정도가 없는 반응이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그렇게 찾아가진 않은 지 열흘이 되던 금요일이었다. 여느 때처럼 야근하고 있던 밤에 휴대폰이 울렸다. 무거운 눈두덩이를 문지르고 휴대폰을 켰다. 소은의 문자였다. 전과 달리 간결한 문장이 화면 상단에 떴다.
– 내일은 와 줘요 더 이상 찡찡거리지 않을게요
나는 달력을 확인한 후 알겠다고 보냈다. 소은이 좋아하던 간식 같은 걸 사서 갈까 생각했지만,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20년 전의 소은은 뭘 좋아했지. 가장 마지막에 먹은 걸 기억해내고 싶었지만 떠오르는 장면은 하나밖에 없었다. 소은이 온종일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던 모습. 동면에 들 연습을 하는 모습이었다.
소은은 공지가 뜰 조짐이 보이기 순간부터 오래 누워 있는 연습을 시작했다.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소은은 이것도 필요한 거라고 강한 어조로 의심을 차단했다. 나는 그 옆에서 혹시나 욕창 같은 게 생길까 너무 오래 눕지는 말라고 당부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이미 동면보다는 소은과 이 집을 유지하는 게 우선이 되어서 함께 누워 있을 여력 같은 건 없었다. 둘이 있을 방법이 내겐 더 중요했다.
소은에게 계속 같이 살자고 말한 날부터 소은은 더 이상 침대로 오지 않았다. 거실에서 누워 있는 연습을 더 오래 했다. 마치 꼭 할 거라는 의지를 보여 주려는 것처럼 그녀는 오기로 하루 내내 누워 있었다. 그녀의 꽉 쥔 주먹과 부릅뜬 눈이 오기라는 걸 보여 줬다. 연습이 절정에 다다를 때쯤 소은이 오랜만에 말문을 열었다.
갑자기 왜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냥. 지금이 좋아서.
그렇구나.
나는 저녁을 준비했고 소은은 여전히 누워 있었다. 주방 식기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요즘 130세는 기본으로 살 수 있을 거라고 하잖아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고개를 돌리자 소은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 오랜만에 보는 앉아 있는 소은이었다. 소은은 무릎을 모아 턱을 괴고 마저 입을 열었다.
내가 동면에 드는 동안 여러 과학기술이 발전할 거니까. 그러면 제가 깨어나도 언니가 있을 확률이 아예 없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소은은 동면을 포기하는 게 아닌 어떻게든 만날 가능성을 계산하고 있었다. 입술 새로 실소가 새어 나왔다. 말도 안 되는 말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소은은 여전히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는 내가 그 막연한 가능성 하나만 믿고 기다리라는 거야?
소은은 입을 여러 번 벙긋거렸지만, 문장으로 완성되진 않았다. 이내 한숨을 내쉰 소은은 아니라며 다시 몸을 뉘었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겠다는 신호였다. 입술을 깨물어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비집고 나오려는 말을 전부 막을 순 없었다.
네가 동면에 들면 나는 영원히 너를 못 볼 거야. 나는 그 막연함에 기대 살 수 없어. 우리가 마지막으로 보는 날은 네가 잠들기 직전일 거야.
동면은 죽음과 정말 많이 닮았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걸 다시 볼 수 없다는 점이 가장 비슷했다. 죽긴 싫어서 선택한 잠. 소은과 함께 있으면서 깨달은 거였다. 이모를 따라갈 자신은 없으면서 죽고는 싶은 마음에 고른 선택지가 동면이었다는 결론에 다다르자 소은이 보였다.
그럼 나는 언니를 버린 사람처럼 보이겠네요.
소은의 눈썹 끝이 서서히 내려갔다. 불편할 때 나오는 소은 특유의 표정이었다.
미안해요.
소은은 말끝을 길게 늘어뜨렸다. 나는 다시 입술에 피가 날 때까지 세게 깨물었다.
우리는 마치 남이 되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소은이 시설로 들어가기 전까지 대화하지 않았다. 밥 먹어. 다녀왔어. 다녀와. 세 마디만 반복되자 더 이상 말하고 싶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소은이 시설로 들어가는 날이 되어서야 그 뻔한 문장들에서 탈출해 다른 대화를 꺼냈다. 소은에게 어떠냐고 묻자 한참 뒤에 답이 돌아왔다.
별 생각 안 들어요. 실감이 안 나는 거 같아.
사실 나도.
가는 내내 시시한 얘기만 해서 그런지 그냥 여행을 가는 느낌이 들었다. 소은도 그런지 간간이 웃으면서 웃긴 이야기를 마구 쏟아 냈다. 한참을 얘기하고 있으니 흰색 돔 모양의 건물이 점점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은 초록색으로 물든 산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이질적인 모습 때문인지 곧 그곳으로 갈 소은 때문인지 거부감마저 들었다. 소은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그 건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소은아.
여전히 창문 밖에 시선을 둔 채 소은이 대답했다.
왜 내 쪽은 안 봐?
그제야 소은이 느리게 몸을 돌려 이쪽을 봤다. 오는 내내 창문에 비친 소은을 보며 얘기했다. 소은도 창문에 흐릿하게나마 비친 나를 보고 있었겠지. 막연하게 추측만 할 뿐이었다. 소은이 한참 있다가 입을 여는 순간에 운전기사가 도착했다고 알려 줬다. 소은은 다시 입을 다물었고 나는 창문 너머 소은의 뒤통수를 봤다. 짐을 챙겨 입구 앞에 놓아 주고 나는 소은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소은은 숨을 크게 내쉬고 입꼬리를 한껏 올렸다.
나중에 또 봐요.
행복했어, 진심으로.
우리 또 볼 수 있어요.
그건 가 봐야 아는 거지.
소은은 입을 삐죽 내밀고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자를 따라 안으로 걸어갔다. 소은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다녀올게요.
행복하게 지내.
아마 그 인사를 듣는 모두가 알고 있었을 거다, 마지막이었다고.
분명 그때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등받이에 기대앉아 있는 소은을 보며 중얼거렸다. 결국 빈손으로 찾아왔다. 20년이라는 숫자가 크긴 한지 소은의 사소한 것들이 흐릿했다. 나이를 먹은 탓도 있었다. 조 심스럽게 회복실 문을 열자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소은이 힘없이 손을 흔들었다. 누가 봐도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한 얼굴이었다. 잔소리가 나오려는 입을 꾹 다물고 앞에 서자 소은이 내 손을 끌어당겼다.
바빴어요?
응. 워낙 일이 많아서.
그래도 좀 올 줄 알았는데.
소은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잡은 손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잡히지 않은 손으로 소은의 손목을 잡고 잡힌 손을 조심스럽게 뺐다. 여전히 손목을 잡은 채 자리에 앉아 소은을 올려다봤다. 소은의 손이 힘없이 늘어졌다.
내가 잡고 있을게. 그게 더 편하겠어.
내가 잡고 싶었는데.
잡은 손에 일부러 힘을 세게 쥐었다. 그제야 울상이던 소은의 얼굴이 조금은 풀어졌다. 그 얼굴을 유심히 보고 있자 소은은 은근슬쩍 시선을 피하며 말을 꺼냈다.
언니가 안 오는 내내 계속 잠이 들었어요. 밥 먹다가 졸고, 진찰 받다가 졸기도 하고. 근데 계속 같은 꿈을 꿔요.
무슨 꿈?
일어났는데 언니가 없는 꿈.
소은의 왼손이 내 손 위에 포개졌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소은은 입술을 달싹거리다 앓는 소리를 냈다. 말하기를 주저하는 모습은 처음이라 조금 낯설어 반응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언니가 화냈던 막연한 가능성이 계속 떠올랐어요. 진짜 무모한 일이었더라고. 내가 또 상처를 준 거였어.
괜찮아. 이해해.
나이를 헛먹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인 순간이었다. 괜찮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처음으로 반가웠다. 소은은 눈을 여러 번 깜박이다가 이내 미세하게 웃었다. 입매가 희미하게 올라가고 눈이 힘이 조금 풀어지고 있었다.
지금 자도 내일이면 깨어나. 네가 지금 맞고 있는 건 영양제밖에 없어.
하지만 기계 안에 들어가서 맞았던 약물도 저런 색이었어요. 이렇게 아무 느낌 없다가 갑자기 눈이 감겼다고요. 깨고 싶어도 못 일어나고.
소은이 보낸 문자가 무색하게 소은은 다시 우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안심시켜야 할지 고민하던 중 소은이 이름을 불렀다. 제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의심하는지 미간을 구겨 째려봤다. 고민을 잠시 눌러놓고 소은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나중에 해도 충분한 고민이었다. 비슷한 꿈 얘기가 반복됐지만 결론 보고 싶었다고 끝났다. 어느새 중천이던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창밖에 하늘이 주황빛에서 푸른색으로 물들어갔다.
자는 거 보고 갈게. 너 좀 자야 해.
소은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눈에 졸음이 가득했다.
자면 언니 갈 거잖아요. 내가 만약에 못 깨거나 하면 어떡해.
그럴 리 없다니까. 정 불안하면 너 일어날 때까지 여기 있을게. 아침에 깨워 달라고 하면 깨워 줄 수도 있어.
소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내 손등을 계속 건드렸다. 실랑이를 벌이다 이야기를 나누기를 반복하니 밖이 온통 까맸다. 진짜 자야 할 시간이었다. 밖에서 간간이 들리던 발소리도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소곤거리는 소리도 크게 들릴 정도의 고요함이었다. 내일이면 일어나 평소처럼 이곳을 돌아다닐 사람들과 몇백 년을 더 죽은 듯이 잘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유일하게 눈을 뜨고 얘기하고 있었다.
이제 진짜 자. 내일 깨워 줄게. 제발 좀 자.
소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등받이를 내렸다. 눈을 감았다 뜨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눈이 완전히 감기자 곧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회복실 안에 희미하게 퍼져갔다. 잡고 있던 손목을 풀어 손을 맞잡고 침대 시트에 고개를 파묻었다. 푹신한 시트 탓인지 피곤이 무겁게 짓눌렀다. 소은의 희미한 향이 코끝을 찔렀다. 결국 우리는 마지막 인사를 지킨 사람들이 됐다. 소은은 무사히 다녀왔으며 내 부탁대로 행복하게 지낼 기회를 얻었다.
의식이 멀어지고 있음에도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체온은 여전히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