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루이
“로봇은 인간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로봇은 감정 없는 빈 깡통과 같죠.”
“그것도 이제 옛말입니다. 로봇도 다 표현하고 느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지가 언제인데요.”
“하지만 그것도 결국 인간의 주입일 뿐이죠.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건 큰 착각입니다.”
자리를 잘못 골랐다. 식당 안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티브이 소리가 내 머리 위에서 소란스럽게 울려댔다. 티브이 소리를 줄일까 생각도 해봤지만, 간혹 티브이 화면에 눈길을 주는 손님들이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나는 뚝배기 안에 있는 거의 다 식은 국물을 빠르게 들이켰다. 고춧가루가 목에 껴 헛기침이 몇 번 나왔다. 컵에 조금 남은 물을 전부 들이켜고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하마터면 머리 위에 있는 티브이에 정수리가 찍혀 우스운 꼴이 될 뻔했다.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카운터 앞으로 갔다. 카운터 뒤 주방에선 레디가 종지에 밑반찬을 담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있던 이모가 나를 발견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천 원입니다.”
이모는 포스기를 누르지 않고 이마를 긁적이며 가격을 말했다. 내가 먹은 갈비탕의 가격은 만 원이었다.
“만 원 드리겠습니다.”
“그냥 오천 원만 줘.”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지폐와 동전이 잔뜩 겹쳐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지폐를 잡히는 대로 꺼냈다. 지폐와 엉켜있던 동전 몇 개가 주머니에서 튀어나왔다. 내가 주춤하고 있는 사이 주방에서 밑반찬을 담던 레디가 나와 동전을 주워 주었다. 나는 카운터에 만 원짜리 한 장을 올려놓았다. 만 원 다 받으세요. 이모는 이럴 필요 없다고 구시렁대며 구깃구깃 접힌 지폐를 포스기 안으로 대충 밀어 넣었다. 어느새 동전을 다 주운 레디가 팔을 쭉 늘려 내 눈앞까지 동전을 들이밀었다. 나는 동전을 받아 바지 앞주머니 깊숙한 곳에 찔러넣었다.
“고마워요. 레디.”
내 말을 듣고 레디는 팔을 높이 들었다. 호스같이 얇은 팔이 물결을 치며 움직였다. 작은 화면에는 웃는 얼굴이 띄어졌다.
“별말씀을요. 또 와요. 로.”
별말씀을요. 또 와요. 할 수 있는 말이 몇 안 되는 레디가 매번 나에게 하는 상투적인 말들이었다. 나는 레디와 똑같이 웃어 보였다. 용건을 마친 레디는 다시 주방 안으로 들어가 아까와 같이 밑반찬을 담았다. 손님들 계산을 끝마친 이모가 내게 말을 걸었다.
“눈치 보지 말고 밤엔 꼭 들어와. 갈 곳도 없잖아.”
“알겠습니다. 잠깐 산책 다녀오는 거예요. 밤엔 들어오겠습니다.”
이모에게 가볍게 눈인사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 문 쪽으로 향했다. 벽에 달린 티브이에선 아직도 휴머노이드 로봇에 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유리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리자 레디의 인사 소리가 닫히고 있는 문틈으로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평일 오후, 길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도로 위로 쓰레기 수거차가 지나갔다. 차에서 나는 냄새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얇은 쓰레기봉투 안에는 찌그러진 머리와 팔다리가 각각 분해된 채 들어있었다. 폐기처분 된 로봇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지 않으려 눈을 감았다. 빨리 머릿속에서 그 로봇의 얼굴이 떠나가길 바라며 고개를 휘저었다.
기술이 발전하여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며 사는 세상이 되었다. 방금까지 내가 머물렀던 식당에서도 아마 몇 대의 로봇이 있었을 것이다. 우선, 이모의 일을 도와주는 레디도 로봇이었고, 나 역시도 로봇이다. 레디와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레디는 바이어인 이모가 있었고, 나는 바이어로부터 폐기처분 요청이 되어있는 로봇이었다. 나는 떠돌이 로봇이다.
*
내 이름은 ‘로’다. 나의 바이어가 이름이 필요하다는 나에게 ‘로봇’이라는 단어의 앞 글자를 대충 따 지어준 이름이었다. 내심 인간 같은 이름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상관없었다. 이 세상에 하나의 구성원으로 바이어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바이어는 나에게 잘 지내보자고 짧게 인사한 후 바로 식탁으로 향했다. 같이 밥을 먹자는 거였다. 바이어는 나에게 말을 가르치거나 사회적인 규범을 가르쳐 줄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때 당시 인간의 형태에 가장 가까웠던 3세대 로봇이었다.
오 년 전, 감정을 느끼는 로봇이라며 1세대 로봇이 출현했다. 하지만 1세대 로봇은 눈을 감지도 못했으며 입만 움직일 줄 알았다. 사람의 살갗을 두르고 있긴 했지만, 상처가 나면 바로 그 안에 있는 고철 덩어리가 드러나는 몸이었다. 사람들은 어설프게 사람의 형태를 지닌 로봇을 불쾌해했다. 그렇게 1세대 로봇에 대한 반응은 차가웠고 그 이후로 일 년 후 2세대 로봇이 나왔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연이은 개발의 실패는 성공의 발판이 되었고, 로봇 이외의 다른 기술들도 나날이 발전했다. 개발자들은 로봇이 어떻게 하면 더 사람 같아질까에 심혈을 기울였고, 인간의 모습을 모방하고 또 모방했다. 그리고 이 년 후 3세대 로봇이 나왔다. 인간의 감정을 정확히 공감하고, 표현할 줄 알았다. 밥을 먹고,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했다. 몸에 상처가 나면 피가 나오기도 했다. 언뜻 보기엔 길거리에 인간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개발자들과 언론은 삼 년 만에 인간과 가장 가까운 형태에 로봇을 개발해 냈다며 열광했다. 처음엔 인간과 너무나도 비슷한 모습에 꺼림칙하다는 여론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금방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꼈다.
나는 3세대 로봇이었다. 10대 후반 남자아이의 외형을 갖춘 로봇. 바이어는 나를 보자마자 데려와야겠다고 결심했다 말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바이어에게 나를 선택해줘서 고맙다고 대답했다.
바이어는 두 명이 눕고도 충분히 남을 넓은 침대에서 잠을 잤다. 나는 밤이 되면 바이어 옆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3세대 로봇은 잠을 자지 못했다. 그렇기에 꿈도 꿀 수 없었다. 바이어는 매번 꿈을 꾸고 난 날이면 나에게 꿈 이야기를 해 주었다. 꿈이란 건 신기했다. 항상 새로운 사건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저도 앞으로 꿈을 꿀게요.
“무의식 한가운데에 기억을 가져오는 게 꿈이라면, 저는 의식 속에서 가져오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건 그냥 상상이지.”
“저는 이걸 꿈이라고 명명하기로 했습니다.”
바이어는 항상 나의 꿈을 ‘상상’이라고 칭했다. 어제는 어떤 상상을 했는지. 오늘은 어떤 상상을 할 것인지. 그럴 때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꿈이라고 바꿔 이야기했다. 어제는 비행기를 타는 꿈을 꿨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꿀 겁니다. 키 크고 싶으니까요. 바이어는 내 꿈 이야기를 들을 때면 항상 입가에 옅게 미소를 띠었다.
바이어는 나를 데려온 지 이 년이 되는 날, 나를 폐기처분 신청했다. 로, 널 폐기처분 신청했어, 곧 있으면 널 데리러 올 거야. 그 말을 하는 바이어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이 없었다. 무표정했다. 아니 그날따라 눈꼬리가 처져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결코 슬픔의 표현은 아니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집 밖으로 나왔다. 아무것도 챙기고 나오지 않은 빈손에 마치 산책하러 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엄연히 말하면 나는 폐기처분이 되지 않기 위해 도망친 것이었다.
아파트 계단을 내려오면서 계속 눈물이 흘렀다. 버림받은 것이었다. 폐기처분이라는 단어보다 버림받았다는 말이 더 가슴 한구석을 아프게 찔렀다. 길거리를 계속 걸었다. 일부러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택했다. 계속 걷고 걸어서 이제 돌아가는 방법을 도저히 모르겠을 때, 아무 상가 건물 계단에 앉아서 울었다. 그때는 낯선 장소에 대한 두려움의 눈물도 함께였다. 품에 한가득 끌어안은 무릎은 눈물로 젖어 축축했다. 그때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그 옆에는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도우미 로봇이 있었다. 이모와 레디였다.
이모는 나를 바로 식당으로 데려갔다. 나를 아무 식탁에 앉히곤 뭘 먹고 싶냐고 물었다. 아무거나 다 잘 먹어요. 이모는 내 말을 듣고 바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이어 레디가 컵에 물을 따라주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나는 곧바로 물을 마셨다. 기력이 없어 손과 입술이 떨렸다. 나는 벽면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눈이 부어있었다. 볼에는 눌어붙은 눈물 자국이 몇 갈래로 나누어져 있었다. 계속 나오는 콧물을 식탁에 있는 휴지로 닦아냈다. 코끝이 아렸다.
낡은 식당이었다. 의자와 식탁들 사이에서 세월이 느껴졌다. 가게는 전체적으로 채도 낮은 옐로우 톤으로 인테리어 되어있었다. 왼쪽 벽면에는 거울이 있었고, 다른 쪽 벽면에는 종이에 쓰인 메뉴들이 코팅되어 붙어있었다. 메뉴 밑에는 가격을 자주 바꿨는지 그 위로 다른 가격표가 몇 장씩 붙어있었다. 나는 가게를 둘러보다가 이모가 가져오는 돈가스 정식을 먹었다. 감정은 생각보다 쉽게 진정되어 갔다.
이모네 가게 뒤쪽에는 이모의 집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살게 되었다. 이모는 나에게 매일 매일 용돈을 주었다. 밖에서 먹고 싶은 거 먹고 다니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는 매번 끼니를 이모네 가게에서 해결했다. 이모는 너한테 돈을 주면 결국 나한테 다시 돌아온다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나는 이모의 가게 일을 돕기도 했다. 그렇게 삼 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이젠 떠돌이 로봇으로 사는 삶이 익숙해졌다.
높은 아파트가 즐비해 있던 바이어의 동네와는 달리 이곳은 주택과 낮은 건물들이 가득했다. 나는 매일 새로운 거리를 산책했다. 각기 다른 디자인의 건물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나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렇게 삼십 분 정도 구경을 하고 나면 한적한 골목길로 들어선다. 그 골목길을 따라 이십 분 정도 걸어가면 또 다른 단독주택 단지가 나온다. 나는 거기서 한 주택 앞에 멈춰 섰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하얗고 지붕이나 창문의 몰딩은 갈색으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정원을 전체적으로 감싸는 담벼락은 회색빛이 돌았다. 나는 울타리처럼 생긴 낮은 문 앞에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앉았다. 그러면 마당에 있는 빨간 지붕을 가진 작은 집 안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나왔다. 그 강아지는 작은 집 바로 옆에 배를 깔고 누워 자리를 잡았다. 강아지의 이름은 루이였다. 나는 루이에게 살짝 손을 흔들었다. 루이는 항상 나를 보며 꼬리만 살짝 흔들 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금 더 울타리 문 앞에 다가가 루이를 바라보았다.
루이는 일주일 전부터 알게 된 강아지였다. 우연히 이 주택 단지에 들어서고 마주치게 되었다. 처음에는 마당에 있는 빨간 지붕을 가진 작은 집이 장난감같이 귀여워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구경하다가 그 작은 집 안에서 나오는 루이를 만나게 되었다. 루이의 이름을 알게 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루이의 빨간색 목줄에는 검은색 자수로 ‘루이’라는 글자가 삐뚤빼뚤하게 박혀있었다. 루이의 목에는 항상 목줄이 되어있었다. 그 목줄은 빨간 지붕 집 바로 옆에 박힌 말뚝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 목줄 때문에 루이의 행동반경은 크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어쩔 수 없이 루이를 매번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루이의 주인은 이 시간에 직장에 가 보이지 않았다. 한 번은 주말에 루이를 보러 갔다가 루이의 주인을 마주쳤다. 들어와서 놀지 않겠냐는 상냥한 어투에도 나는 빠르게 거절하고 그곳을 벗어났다.
“루이, 답답하지 않아? 루이, 내가 내일은 네 장난감이라도 사 올게.”
루이의 반질반질한 검은색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루이는 이름이 불릴 때마다 꼬리만 조금씩 흔들었다. 루이와 나의 유일한 소통 방법이었다.
루이가 마당에서 햇빛을 받으며 스르르 눈을 감고 잠이 들면 나는 식당으로 돌아왔다. 이모는 내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조금 안심하는 거 같아 보였다.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 재료 손질을 도왔다. 티브이에서는 어김없이 로봇 관련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뉴스에서는 로봇에 관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새로운 발견과 발전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로봇들의 모습.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7세대 로봇 출시 소식이었다. 6세대 로봇이 나온 지 5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다. 새로운 로봇이 나오는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올해 3월에 출시된 6세대 로봇에 이어 7세대 로봇이 출시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 출시되는 7세대 로봇은 이전에 출시된 로봇들의 사양은 물론 동물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 기능까지 탑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J 연구소 개발진들은 7세대 로봇의 개발을 통해 동물과 사람 간의 소통을….”
“강아지 키우는 사람들이 많이 들이겠는데?”
뉴스 화면에서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동물들과 소통하는 로봇의 모습이 나왔다. 그 모습이 동물원에서 동물들을 돌보는 사육사 같았다. 뉴스에 나온 강아지를 보니 루이 생각이 났다.
3세대 로봇이 나온 지 1년 후에 바로 4세대 로봇이 등장했다. 그 당시 나는 바이어의 집에 살게 된 지 7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다. 지금과 같이 뉴스에서 4세대 로봇의 출시 소식이 보도되었다. 잠을 잘 수 있는 로봇. 4세대 로봇의 대표적인 기능 중 하나였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잠을 자는 로봇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 뒤로 나온 5세대, 6세대 로봇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가지지 못한 인간의 능력을 갖춘 로봇의 등장은 점점 나를 위축시켰다. 그리고 이젠 동물들과 소통할 수 있는 로봇이 등장했다. 로봇은 인간의 영역이 아닌 곳까지 발전했다.
*
점심을 먹고 동네를 산책했다. 루이하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트에 들렸다. 강아지 물품을 파는 코너로 갔다. 수십 가지가 넘는 장난감 종류에 무엇을 골라야 할지 고민했다. 나는 재고가 제일 조금 남은 장난감을 골랐다. 재고가 가장 조금 남았다는 건 가장 많이 팔렸단 소리겠지. 내가 고른 것은, 삑삑이 소리가 나는 초록색 공이었다. 비닐로 포장된 공을 살짝 눌러보았다. 바스락거리는 비닐 소리와 함께 공에서 삑삑 소리가 났다. 공을 눌렀을 때와 뗐을 때의 소리의 높낮이가 은근히 다른 것이 재밌었다. 강아지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있구나. 공은 고무 재질로 되어있어 먼지가 잘 붙을 것 같긴 했다. 루이는 야외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장난감이 금방 더러워질까 고민했다. 장난감은 얼마 하지 않기 때문에 더러워지면 또 사주면 되었다. 매일 누워만 있는 루이가 이 장난감을 보고 좋아할 모습을 상상하니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다른 장난감들도 한 번씩 눌러보았다. 다 비슷비슷한 소리가 났다. 내 옆에는 강아지를 가방에 넣고 강아지 옷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물론 나와 같은 로봇일 가능성도 있었다. 겉모습만 봐서는 쉽게 알 수 없었다. 강아지의 주인이 인간인지 로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 가방 안에 있는 강아지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강아지는 혀를 내밀고 나를 쳐다보았다. 강아지는 루이와 조금 다르게 생겼다. 루이는 흰색 털을 가진 몰티즈였고, 가방 안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강아지는 갈색 털을 가진 푸들이었다. 비슷한 것이 있다면 눈이었다. 강아지들은 하나같이 새까만 눈을 가졌다. 인간은 다 약간은 다른 색의 눈동자를 가졌다. 그렇기에 로봇들 역시도 그것을 모방하여 눈동자의 색이 조금씩 다 달랐다. 나의 눈동자 색은 밝은 브라운이었다. 나는 강아지에게 가볍게 손 인사를 하고 계산대로 향했다.
마트에서 나와 바로 루이가 있는 동네로 갔다. 평소라면 조용한 거리가 오늘따라 어수선했다. 그리고 바로 옆 도로에서 경찰차 두 대가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따라붙었다. 골목을 도니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이 시간에 이 동네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있다니. 사람들 너머로는 아까 지나간 경찰차 두 대가 서 있었다. 굉음을 내던 사이렌은 꺼져있었고 빨간 불빛만 조용히 돌아갔다. 경찰들이 한 사람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나는 약간의 호기심이 생겼지만, 혼자 있을 루이가 떠올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매일 봐서 내 집처럼 정겨운 하얀색 건물이었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루이를 불렀다. 빨간 지붕 작은 집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다시 한번 루이 이름을 불렀다.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내가 늦게 와서 루이가 화가 난 것일까. 하지만 루이는 내가 하루를 빼먹고 오지 않아도 언제나 내 소리가 들리면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겨주었다. 나는 아까 마트에서 산 장난감 공을 던졌다. 공이 빨간 지붕을 맞고 잔디 위로 떨어졌다. 떨어질 때 희미하게 삑 소리가 났다. 다시 보니 굳게 박혀있는 말뚝에 연결된 줄에 빨간색 목줄이 없었다. 루이가 없는 것이었다. 루이가 목줄을 풀고 나갔을까. 순식간에 불안감이 온몸을 뒤덮었다. 울타리 문은 조금의 틈도 없이 닫혀있었고, 높은 담벼락은 루이의 몸집으로는 넘어갈 수 없었다.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루이도 없고, 루이의 주인도 없었다. 나는 잔디 위에 있는 장난감 공을 바라보았다. 그새 흙이 묻어있었다.
그곳에 한 시간 정도 더 머물러 있었지만, 루이를 볼 수 없었다. 루이의 주인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모네 식당으로 돌아갔다. 아까 길거리에 있었던 사건은 일단락되었는지 평소와 똑같은 거리가 되었다. 식당에 다다르니 레디가 보였다. 레디가 팔을 길게 빼 식당 유리문을 닦고 있었다.
“힘내요. 레디.”
“감사합니다. 로.”
나는 레디의 금속 머리통을 쓰다듬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모는 나를 보자마자 나에게 달려왔다, 신이 난 듯 보였다. 평소보다 한 톤 높은 톤으로 말하며 무언가를 나에게 건넸다. 이모가 내게 건넨 것은 300페이지 정도 되는 문제집이었다. 문제집 앞표지에는 돋움체로 ‘로봇능력 검정시험 기출문제집’이라고 적혀있었다. 이제 천천히 준비해야지. 이모는 웃으면서 말했다. 로봇능력 검정시험은 일 년 전부터 정부에서 내놓은 제도였다. ‘떠돌이 로봇에게도 기회를!’이라는 문구를 달고 한 정치인이 거창한 의도를 기자들 앞에서 연설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떠돌이 로봇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이 시작하고 만들었으니 그들을 끝까지 보살피고 책임지는 것도 우리 인간이어야 합니다. ‘로봇능력 검정시험’을 통과한 로봇들에게는 취업의 기회와 배움의 기회를 줄 예정입니다. 이제 인간만이 홀로 살아가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로봇들과 공존하며 우리나라를 더 발전시켜야 합니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단상 앞에 서서 말하는 정치인을 보고 채널을 돌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와 같은 로봇들의 안위를 생각해주는 말이었지만 달갑게 들리지 않았다. 옆에서 같이 티브이를 보던 이모는 좋은 기회가 찾아올 것 같다고 오히려 더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그 기회가 정말 한 달 전부터 시행되었다. 반대하는 여론을 무시하고 정부는 막무가내로 추진했다. 실제로 로봇능력 검정시험을 통과해 고등학교에 다니게 된 로봇을 인터넷 기사로 본 적이 있었다. 같은 반 아이들과 어깨동무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그 옆에 아이들은 사람이었다. 정말 사람일까. 겉으로는 구분을 할 수 없으니 그냥 똑같은 로봇을 데려다 놓고 웃으며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닐까. 로봇이 정말 바이어와의 삶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이질감 없이 섞일 수 있을까.
이모는 문구점에서 연필과 지우개까지 사 왔다. 나를 식당 구석에 있는 식탁에 앉혀놓고 차근히 풀어보라고 하셨다. 이모가 주방으로 들어가고 어느새 유리창을 다 닦은 레디가 힘내요. 로. 라고 이야기하며 지나갔다. 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이고 천천히 문제집을 폈다. 첫 장에는 시험을 볼 때의 유의사항이 적혀있었다. 나는 읽지 않고 바로 다음 장으로 넘겼다. 어차피 시험을 볼 생각은 없었다. 문제집을 사다 준 이모의 성의를 생각해 몇 문제 풀어보기만 할 생각이었다. 문제는 전부 서술형으로 되어있었다.
‘인간의 가장 선명한 감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적으시오. 그 이유도 함께 적으시오.’
첫 번째 문제였다. 1세대 로봇부터 모방해온 인간의 감정에 대한 문제였다. 나는 나와 대화할 때면 웃어주던 바이어가 떠올랐다. 나는 기쁨이라고 적었다. 이유는 무엇이라고 적어야 할까. 내가 인간에게서 가장 많이 본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유가 너무 빈약하다고 느껴졌다. 나는 이모에게 핸드폰을 빌려 문제를 똑같이 검색해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글이 쏟아졌다. 로봇능력 검정시험의 1번 문제라고 수많은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와 있었다. 사람들은 인간의 가장 선명한 감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토론했다.
‘슬펐던 기억, 특히 누군가를 잃었을 때의 기억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나오면 그 감정의 여운이 계속 남잖아. 그래서 나는 슬픔이라고 생각해.’
다수의 의견이 슬픔으로 쏠렸다. 다른 감정을 주장하던 사람들도 슬픔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설득당해 생각을 바꾸기도 했다. 나는 방금 손님의 계산을 끝마친 이모에게 다가가 물었다.
“인간의 가장 선명한 감정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기출 문제 내용이 그래? 문제가 생각보다 추상적이고 어렵네. 아마 기쁨 아니면 슬픔?”
이모는 이유까지 말하지 못하고 손님의 주문을 받으러 갔다. 나와 2년 동안 같이 살았던 바이어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바이어는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물론 눈물이 슬픔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나는 바이어와 같이 살았을 때 두 번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한 번은 아까 댓글에서 본 것처럼 슬픈 영화를 봤을 때였다. 나는 눈물을 흘렸고, 바이어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슬프다. 라며 무미건조한 감상만 남겼다. 그리고 두 번째는 폐기처분 신청이 되었을 때. 이건 바이어의 집에서 도망쳐 나오고 나서 흘린 눈물이니 조금 애매했다. 눈이 짓무를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이모가 주문받은 음식을 내오고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그런 문제는 정답이 없지. 그냥 네가 생각하는 거 쓰면 돼. 나는 이모에게 질문했다.
“제 바이어는 절 폐기처분 요청했을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눈물을 한 방울도 흐리지 않았는데도 그가 슬퍼했다고 할 수 있나요?”
“눈물이 슬픔의 전부는 아니란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알고 있어서 질문한 것입니다.”
이모는 내 이야기를 듣고 입꼬리에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위로의 표시였다. 이모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데도 슬퍼 보였다.
정갈하게 앉은 아나운서의 밑으로 파란색 바탕의 굵은 글씨로 써진 자막이 보였다. ‘인주동 폭행 사건의 가해자는 6세대 로봇으로 밝혀져’ 인주동이라면 루이가 있는 동네였다. 아까 낮에 내가 본 것이 폭행 사건이었던 것이었다.
“인주동에서 일어난 폭행 사건의 가해자는 사람이 아닌 5개월 전에 출시된 6세대 떠돌이 로봇으로 밝혀졌습니다. 처음으로 로봇이 일으킨 범죄에 시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에 언론과 정부는 이번 사건을 일으킨 6세대 로봇을 출시한 J 연구소에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뉴스를 보도하는 아나운서의 톤은 무섭게도 차분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인간이 로봇을 상대로 하는 범죄는 있었어도 로봇이 인간을 상대로 하는 범죄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뉴스 화면이 고개 숙이고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J 연구소 개발자들에게로 넘어갔다.
“이번에 있었던 6세대 로봇 사건은 완벽히 점검하지 않고 사회에 로봇을 내보낸 저희의 불찰입니다. 문제를 일으킨 6세대 로봇은 즉시 폐기처분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카메라 앞에 서 있던 세 명의 개발자는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완벽히 점검하지 못한 로봇. 한마디로 실패작이라는 소리였다. 지금까지 불량인 로봇들을 판매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다. 갑자기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던가, 제대로 걷지 못한다던가. 하지만 내가 본 6세대 로봇은 달랐다. 제대로 걸었으며 경찰들을 상대로 반항하며 소리를 질렀다.
“드디어 로봇이 사람을 죽이네! 썩을 것들.”
“다 폐차장 같은 곳에 데려가서 고통스럽게 죽어봐야 인간 무서운 줄 알지.”
식당에 온 손님들이 뉴스를 보곤 큰 소리로 떠들었다. 자기들끼리 큰 소리로 말을 내뱉으며 웃었다. 카운터에 있는 이모는 내 눈치를 보았다. 나는 일부러 더 신경 쓰지 않는 척했다.
로봇과 떠돌이 로봇에 관한 인식이 안 좋아지면서 ‘로봇능력 검정시험’에 관련된 이야기가 다시 화두에 올랐다. 안 그래도 로봇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뺏길 것을 염려했던 청년층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내었다.
“로봇이 더욱 인간과 같아지면서 도리어 범죄를 저지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까?”
“로봇의 진화를 이제 멈추어야 합니다.”
“진화는 차치하고 로봇의 생산부터 중단해야 합니다.”
급기야 로봇의 생산까지 중단하자는 여론이 나왔다. 예정대로라면 일주일 후에 있을 로봇능력 검정시험은 미뤄졌다. 시험장 앞에서 사람들이 시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난 시험에 지원하지 않았다. 왜 지원하지 않냐고 묻는 이모에게 아직은 시험을 치를 자신이 없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다른 떠돌이 로봇들은 나와 생각이 다른 듯했다. 이번 사건으로 떠돌이 로봇에 관한 인식이 안 좋아지면서 빨리 시험을 통과해서 떠돌이 로봇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6세대 로봇 폭행 사건의 뉴스 보도가 나온 날 지원율이 두 배로 뛰었다고 한다. 나는 문제집을 펴 연필 자국만 가득한 1번 문제를 바라보았다.
루이를 보지 못한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루이가 보이지 않은 날 이후로 매일 루이를 보러 갔지만 루이는 없었다. 루이의 주인을 마주칠 각오를 하고 주말에도 찾아가 보았지만, 루이는 물론 루이의 주인까지 보이지 않았다.
울타리 문 앞에 섰다. 루이의 주인이 마당에 나와 있었다. 나는 순간 놀라서 담벼락 뒤에 숨을 뻔했다.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마당을 살폈다. 루이는 없었다. 루이의 주인이 루이의 작은 집을 청소하고 있었다. 루이의 주인은 울고 있었다. 목 놓아 울면서 손은 계속 루이의 집을 닦고 있었다. 루이의 주인은 숨을 헐떡이며 넋이 나간 사람처럼 루이의 이름을 읊조렸다. 루이의 집을 어루만지며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천천히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루이의 주인 눈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마당의 잔디 위로 떨어졌다. 루이의 주인은 루이의 작은 집을 안고 쓰다듬었다. 나 역시도 루이의 주인과 똑같이 눈물을 흘렸다.
루이의 주인은 한참을 루이의 집 앞에 앉아있더니 비틀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루이의 집 안에는 작은 항아리와 작은 강아지 사진이 놓여있었다. 루이가 새끼 강아지였을 때 사진이었다.
루이는 죽었다. 아마 나이가 많이 들어서 자연사한 것 같았다. 나는 울고 있는 루이의 주인을 위로할 수 없었다. 어설픈 위로는 독일 뿐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저 담벼락 밖에서 똑같이 눈물을 흘렸다. 며칠 전 보았던 댓글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잃었을 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을 때의 감정이 이렇게나 선명한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식당으로 돌아갔다. 루이의 주인처럼 힘이 다 빠진 느낌이었다. 루이를 이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다시 눈물이 나왔다. 나는 조용히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항상 내가 앉는 식당 구석에 있는 식탁으로 걸어갔다. 아까 펼쳐놓고 갔던 로봇능력 검정시험 기출문제집이 책상 위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나는 넋이 나간 채로 거기 있는 문제들을 다시 훑어보았다. 나는 식탁 끝자락에 걸쳐져 있는 연필을 다시 집어 들었다. 1번 문제의 답안을 적었다.
‘저의 바이어는 저를 폐기 처분했을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슬퍼하지 않았단 소리겠지요.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인간의 가장 선명한 감정은 슬픔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잃어 슬퍼하는 인간을 보았을 때, 내게 다가왔던 감정이 너무 선명해서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나는 1번의 답을 적고 곧바로 2번 문제를 풀었다. 그리고 3번 문제를 풀었다. 나는 계속 문제집의 문제를 풀어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