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취급 주의, 이채영

취급 주의

  편의점 입구 근처에 쭈그려 담뱃갑을 손바닥에 탁탁 털었다.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곧 회색 후드티를 입은 여학생이 편의점 문을 세게 밀며 뛰쳐나올 것이다. 오늘은 반 이상은 피웠을 때 나왔으면 좋겠다. 입을 벌리자 입김과 담배 연기가 섞여 눈앞을 뿌옇게 만들었다. 연기를 몇 번 정도 들이켰을까, 문 너머에서 빠르게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반도 못 피웠네. 담배를 바닥으로 가볍게 던지고 발로 지져 껐다. 딸랑. 편의점 문이 격하게 열리고 후드티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쓴 여학생이 불쑥 옆으로 나타났다. 나를 빠르게 지나치려는 학생의 손목을 붙잡았다. 아르바이트생 옆을 대놓고 지나가면서, 매번 빠르게 뛰어가면 잡히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는 게 신기했다.
  “오늘은 뭐 가지고 나왔어?”
  학생의 뒤통수에 대고 물었다. 앞에서 작게 아이 씨,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학생이 등에 메고 있던 검은색 가방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가방을 열어보니 편의점 샌드위치, 라면 두 봉지, 두유, 과일맥주 세 캔이 들어 있었다. 나는 가방을 가지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주류 진열대에 과일맥주를 다시 넣어놓고 있으니 여학생이 따라 옆에 섰다. 학생은 가만히 서서 내 행동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 학생과 눈을 마주했다. 학생의 얼굴을 제대로 본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동그랗고 큰 눈 주위로 속눈썹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학생, 오늘이 다섯 번째야. 안 들키고 잘 훔치는 것도 아니잖아.”
  학생의 눈앞에서 편의점 샌드위치를 흔들어 보였다. 학생은 샌드위치 한 번, 내 얼굴 한 번 번갈아 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대답도 안 하면서 티 나게 훔치는 일만 반복했다. 학생. 내가 다시 입을 열자 학생이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학생은 내 왼쪽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빤히 바라보았다. 언니 이름이 양선유예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맑고 여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언니가 저 좀 데려가서 키워 주세요.”
  지금 나는 무슨 표정을 하고 있을까. 아주 바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까?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물건을 정리하다 말고 머리가 굳어버린 탓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이게 과연 대답할 가치가 있는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고 나니 몸의 긴장이 조금은 풀린 것 같았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학생은 무시하기로 하고 뒤돌아 계산대 쪽으로 향했다.
  “아니꼬우시면 뭐, 저도 언니에 대해서 불어 버릴 게 좀 있거든요.”
  학생이 바짝 내 뒤를 따라왔다. 내가 인상을 쓰고 학생을 바라보자, 학생이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 여기서 과일소주 사 간 적 있거든요. 그거 언니가 계산해 준 건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따지려던 순간, 잠결에 이 회색 후드티를 봤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후드티 맨 밑에 거의 지워져 가는 영문 프린팅. 너무 피곤해서 신분증 검사도 안 하고 대충 계산해서 보낸 적이 몇 번 있었다. 여기 점장님, 낮 세 시쯤에 계시던데. 학생이 작게 중얼거리며 웃고 있었다. 갑자기 체력이 바닥나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피곤했다. 훔쳐 간 물건만 뺏고 바로 내쫓을걸, 내가 왜 말을 더 시켰을까.
  “나라고 할 말 없는 건 아니지. 네가 매일 와서 뭐라도 훔쳐 가려고 하는 거 CCTV에 다 찍혔는데.”
  학생이 표정을 굳혔다. 나는 뒤돌아 계산대 안으로 들어갔다. 언니, 저 갈 곳 없어요. 학생이 계산대 앞으로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그래, 부모님께 죄송하다고 하고 얼른 돌아가라. 나는 핸드폰을 들어 눈에 보이는 아무 아이콘이나 눌렀다. 일단 바쁘게 연락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다시 딸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겨우 쫓아냈네, 뭐 저런 애가 다 있지. 나는 길게 한숨을 내뱉으며 계산대 위로 얼굴을 묻었다.

  마지막으로 학생을 쫓아내고 일주일이 지났다. 학생은 적어도 내가 근무하는 시간에는 편의점에 찾아오지 않았다. 가끔 갈 곳이 없다고 말하던 학생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적어도 도둑질하는 삶보단 나은 하루를 보내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믿어야 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새벽 4시, 퇴근까지 한 시간 남은 시점이었다. 갑자기 편의점으로 돌아온 점장은 남편과 대판 싸웠다며 하소연을 시작했다.
  “집에는 다시 들어가기 싫고, 좀 일찍 교대하자. 먼저 들어가.”
  점장은 계산대 위로 턱을 괴고 앉아, 손을 휘휘 저었다. 안 피곤하시겠어요? 점장의 뒤통수에 대고 물었다. 점장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뱉었다. 챙겨 나온 게 지갑과 핸드폰뿐이라 근무복으로 입은 조끼만 벗어 놓으면 퇴근 준비는 끝이었다.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퇴근하고 나니, 괜히 큰 여유가 주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편의점에서 집까지는 10분 거리였다. 편의점 바로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15분 걸릴 거리를 10분 안에 갈 수 있었다. 그 골목에 있는 가로등이 몇 년째 고장 난 채로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만 빼면 괜찮은 지름길이었다. 가로등이 환한 큰길로 돌아가면 집까지 15분 정도가 걸리는데, 가는 길에 마카롱이 아주 예쁘게 진열된 무인 카페가 있었다. 이번 달부터는 월세도 올랐고, 몇 주 전에 수도관이 터져 수리 비용까지 더 들어 돈을 아껴야 했다. 골목 앞에서 자꾸 망설여졌다. 지금 빨리 들어가면 평소보다 못해도 30분은 더 잘 수 있었다. 어둑한 골목을 보고 있자니 자꾸 무인 카페에 진열되어 있던 마카롱들이 생각났다. 뭐, 4시간 자고 다시 아르바이트 가는 건 익숙하니까. 결국 큰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바람이 유독 매서웠다. 코끝도 시리고, 패딩 한 벌이 없어서 항공 점퍼에 달린 지퍼를 있는 힘껏 잠그려고 애쓰는 내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 혼자 실실 웃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공원 앞이었다. 무인 카페로 가는 길에는 벤치 두 개와 그네, 미끄럼틀이 놓인 작은 공원이 있었다. 공원치고는 꽤 좁아서 애들을 마음껏 뛰도록 놔두었다간, 놀이터를 둘러싼 나무들에 부딪히기 쉬울 것 같았다. 이 시간에 벤치에 누워 있는 사람은 보통 신문지로 온몸을 둘러싼 노숙자였는데, 오늘은 잔뜩 웅크린 형체 속에서 교복 치마가 보였다. 이 추운 날에 왜 저러고 있지. 내가 도와줄 처지는 못 되는데. 그때 후드티 밑에 새겨진 영문 프린팅이 눈에 들어왔다. 크기가 커서 다 지워져 가는 것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내가 정확하게 본 게 맞나 의심스러워 자꾸 가까이 다가가게 됐다.
  “……학생?”
  학생은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팔에 묻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냥 가세요. 도둑년 뭐가 예쁘다고.”
  학생의 입술에 힘이 들어간 게 보였다. 있는 힘껏 날을 세우고 있었다. 학생이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눈을 꾹 감았다. 학생, 여기서 이러고 있을 거면 그냥 우리 집 와서 자. 충동적으로 뱉은 말이었다. 학생이 다시 고개를 돌리고 나와 눈을 맞추었다. 꽤 놀란 눈치였다. 사실 나도 내가 뱉은 말에 놀랐는데, 놀란 걸 티 내면 상황이 더 웃겨질 것 같아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아니 뭐, 하루 이틀 정도는 재워 줄 수 있지. 날이 워낙 추우니까…….”
  결국은 무인 카페까지 들려서 마카롱을 두 개씩이나 사 왔다. 좋다고 장판 위에 앉아서 마카롱을 먹고 있는 학생을 보니, 괜히 데려왔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나는 내 몫의 마카롱을 들고 학생 옆으로 가서 앉았다. 가출? 학생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 학생이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보통 이럴 땐 통성명부터 하지 않나? 전 린이에요. 최린.”
  “아, 어, 나는.”
  “언니는 알아요, 선유 언니. 언니 몇 살이에요?”
  “스물두 살.”
  “저는 열아홉 살이에요.”
  뭐지. 점점 학생에게 말려드는 기분이 들었다. 학생은 다리를 흔들거리며 집안을 둘러보았다. 학생이 고개를 돌리는 방향을 따라 나도 괜히 집안을 다시 보게 됐다. 벽부터 천장까지 곰팡이가 잔뜩 핀 벽지, 창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아스팔트와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 콘센트 안에 잔뜩 낀 먼지, 가구라고는 옷장과 그 옆에 쌓아둔 눅눅한 이부자리가 끝인 방. 방 너머에 문지방을 두고 나름 주방처럼 꾸며둔 공간이 있었는데, 싱크대와 미니 냉장고가 공간을 다 차지해 버려서 그냥 원룸이나 다름없었다.
  “언니 대학생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요.”
  “시비 걸 거면 나가라.”
  “언니 최고. 아까 얼어 죽을 뻔했어요.”
  학생은 바로 방바닥에 엎드렸다. 아, 따뜻하다. 학생이 방바닥을 손바닥으로 작게 쓸었다. 방바닥에서 올라오는 온기가 어색했다. 돈 아끼겠다고 일 년에 한 번 틀까 말까 한 보일러를 오늘 틀다니. 나 지금 제대로 말려들었구나. 학생이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맞췄다. 해맑게 생긋 웃는 얼굴을 보니 괜스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와, 이불 깔게.”

  학생은 우리 집에 잠시 머무르는 대신 청소와 요리를 어떻게든 해 보겠다고 했다. 좀 미심쩍기는 해도 양심은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아침 8시 반쯤에 집을 나서면 새벽 5시는 넘겨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나 하나 먹여 살리는 데에도 돈이 꽤 필요했다. 배고픈 걸 무시하고 밥을 안 먹어도 월세는 나갔고, 귀찮다고 하루쯤 안 씻어도 물은 마셔야 살 수 있었다. 내가 출근하는 백반집은 아침부터 손님이 많았다. 직장인들이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가는 경우가 많다는데, 그럴 여유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조리대 밑에 쭈그려서 밥그릇에 잔뜩 묻은 된장 국물을 닦아냈다. 주방 너머로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 음식 주문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등 뒤에선 제육볶음 냄새가 진동했다. 새벽에 먹은 마카롱으로 아침까지 충분히 때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속이 쓰린 기분이 들었다.
  “너, 뭐 해?”
  집 앞으로 돌아왔을 때 내가 마주한 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린이었다. 노련하게 피우는 것도 아니고, 힘겹게 기침까지 해가며 담배 연기를 마시고 있었다. 독한 냄새가 집 주변으로 점점 퍼졌다. 린의 손에 들린 담배를 뺏어, 바닥에 놓고 밟았다. 너 이거 어디서 났어. 린의 얼굴은 여전히 해맑았다. 이것도 언니가 그냥 계산해 준 건데? 머리가 아팠다. 지금 이 상황도 결국 내 실수가 낳았다는 건가.
  “아주 잘하는 짓이다. 겨우 열아홉 살이면서 하지 말라는 건 다 해.”
  린을 지나쳐 계단을 내려갔다. 집으로 돌아오자, 방바닥에 널브러진 담뱃갑 빼고는 창문부터 주방까지 청소한 듯한 물 자국이 보였다.
  “저 잘했죠?”
  “담배는 언제부터 피웠어.”
  “저 나름 고생해서 여기 다 닦았어요. 칭찬 좀 해 주지.”
  린은 아랫입술을 내밀고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 바닥에 있던 담뱃갑을 주웠다. 독한 걸 피우네.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려니 괜히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나라고 누굴 가르칠 만큼 좋은 어른이 아니었다. 옷 주머니에 담뱃갑을 쑤셔 넣고 편의점에서 가져온 폐기 김밥을 냉장고에 넣었다. 린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내 주머니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냉장고 문을 닫고 린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린은 흠칫 놀라더니 목을 한 번 가다듬었다.
  “전에는 그렇게 독한 거 안 피웠는데, 궁금해서 한 대만 해 봤어요.”
  “냉장고에 김밥 넣어 놨으니까 점심 전까지는 꼭 먹어. 기한 살짝 지난 거라 금방 상해.”
  “저 담배 피운 거 봐주는 거예요?”
  “방 청소해 준 건 고맙다.”
  나는 이부자리를 펴고 먼저 누웠다. 린이 등 뒤로 이불을 펴고 눕는 게 느껴졌다. 요 며칠 겪은 일들이 전부 복잡하게 느껴졌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얘를 데려왔을까. 자꾸 편의점에 찾아와서는 매번 나한테 잡히면서 물건을 훔치려고 하고, 하지 말라고 하니까 자기 좀 키워 달라고 하고, 어린애가 남의 집 얹혀살면서 담배나 피우고 있고. 꼭 부모 잃은 길고양이처럼. 린은 자꾸 깊은 곳에 묻어 두고 싶었던 기억을 헤집어 놨다. 입을 작게 열어 소리 없이 심, 윤, 경, 발음해 보았다. 너무 어색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매일 부르던 이름이 낯설게 느껴졌다. 눈꺼풀이 점점 내려앉았다. 기분 나쁜 채로 잠들고 싶지 않은데…….

  쨍! 하는 소음, 이어서 무언가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가루들, 그 너머에 윤경이가 있었다. 윤경이의 손이 거칠어 보였다. 윤경아. 목소리를 내어 부르려는 순간 내 앞으로 돌이 날아왔다. 양팔을 들어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또다시 깨지는 소리와 부서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내 몸에 전해지는 충격은 없었다. 윤경이는 유리 벽 너머에 있었다. 나와 윤경이 사이에서 유리는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깨져 흩어졌다. 윤경아, 윤경아. 그만, 그만 던져. 윤경아! 소리치는 순간 윤경이 손에 들린 묵직한 돌이 윤경이의 머리를 때렸다. 윤경이의 머리에서 걸쭉한 피가 흐르고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굉음을 내며 사방으로 유리 조각이 튀고, 피를 흘리는 유리 너머의 윤경이가…… 반짝였다.
  예쁘지, 선유야. 윤경이는 입을 꾹 다문 채로 나를 바라본다.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리는 거지? 윤경이의 얼굴이 구겨진다. 코끝이 빨개지고, 눈썹과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를 바라보는 눈을 마주하고 있자니 자꾸 구역질이 나온다. 너는, 내가 그만하자고 할 때 그만뒀어야 해. 윤경이가 자기 얼굴을 쓸어내린다. 손바닥에 찐득하게 묻어나오는 피를 내 목에 묻히며 손가락에 힘을 준다. 숨이 잘 안 쉬어진다.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은데, 몸에 힘이 하나도……

  “언니, 언니 일어나 봐요.”
  린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헉! 몸을 비틀며 벌떡 일어났을 때는 윤경이도, 유리 조각도, 걸쭉한 피도 사라진 뒤였다. 윤경이가 먼저 하늘로 떠나고, 1년이 넘게 시달렸던 꿈이었다. 겨우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자다 깬 린이 미간을 찌푸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가 너무 끙끙대서 일단 깨우긴 했는데, 괜찮아요?”
  ‘양선유, 괜찮아? 물 좀 마실래?’
  윤경이가 살아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까. 윤경이와 린은 목소리도 얼굴도 전혀 달랐다. 근데 왜 자꾸 떠오르는 걸까. 자꾸만 탓을 하게 됐다. 최린 네가 윤경이처럼 일찍부터 담배를 피워서, 네가 윤경이처럼 추운 날 혼자서 벌벌 떨고 있으니까, 너랑 가까워지지만 않았어도 나는, 내가 죽은 심윤경한테서 어떻게 벗어났는데.
  “야, 이틀 재워 줬으니까 이제 나가라.”
  ……싫어요. 린은 이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잠든 것 같은 린을 등지고 밖으로 나왔다. 백반집으로 가야 하는데 자꾸 이상한 곳으로 걸었다. 2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하는 거리를 30분은 넘게 걸려서 간 느낌이었다. 처음 윤경이를 봤던 날을 떠올렸다. 짐이 가득 들어간 가방을 메고 집에서 최대한 멀리 있는 편의점까지 걸어갔던 날. 편의점 앞에 단발머리 여자애가 앉아 있었다. 위에는 조금 낡아 보이는 짧은 패딩을 입었는데, 바지는 반바지였다. 무릎까지 오는 통 큰 반바지 밑으로 거의 뼈밖에 없는 종아리가 드러나 있었다. 종아리에는 시퍼런 멍 자국을 달고, 바닥에 쭈그려 앉아 삼각김밥을 우물우물 씹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윤경이와 나는 일종의 동맹 같은 관계가 되었다. 처음엔 윤경이의 도움으로 자취방을 구했다. 윤경이는 집을 나올 계획을 몇 년 전부터 천천히 하고 있었고, 나는 윤경이가 구해 준 방을 같이 쓰는 대신 아르바이트 비용으로 식비를 대기로 했다. 서울의 서쪽 구석에 살던 우리는, 서울의 동쪽 구석으로 도망을 쳤다. 핸드폰은 가끔 구립 도서관에 들어가 책을 보는 척 충전하고 다시 꺼두었다. 윤경이는 초밥집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는 스터디 카페에서 청소하는 일을 했다. 작은 월세방에서 두 명이 사는 살림에는 나쁘지 않은 수입이었다. 먹고 싶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쉬는 날에는 코인 노래방을 가고, 화장품을 산 뒤에 추억을 남기러 사진관에 다녀오기도 했다.
  집을 나간 지 두 달 반이 되었을 때, 집 앞에 경찰이 찾아왔다. 나에 대한 제보를 받았다고, 양선유 씨 맞으시냐고 물어보는 경찰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어지럽게 울렸다. 가족이 날 찾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지금 집으로 돌아가면 난 무슨 소리를 듣게 될까. 집을 나간 뒤로 해가 바뀌었고 난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긴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밖에서 뭐 하고 다녔어? 이게 다 당신이 애를 잘못 가르친 탓이야. 아직 듣지도 않은 말들이 상상을 넘어서 나를 위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만요. 경찰을 문 앞에 세워두고 집에서 빠르게 짐을 챙겼다. 통장, 현금 뭉치, 옷 몇 별을 챙기고 문을 벌컥 열었다. 가파른 계단에서 경찰을 빠르게 밀치고 윤경이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가장 빨리 오는 방향대로 움직여 고속 터미널에 도착했고, 아무 고속버스나 잡고 탔다. 그 뒤로 윤경이와 나는 동해에서 2년 반을 숨어 살았다. 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면, 언제 제보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어둡고 깊은 곳을 찾아 들어갔다. 유흥업소에서 나온 아저씨는 우리에게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된다고 일러 줬다. 윤경이는 은근슬쩍 다리 위로 올라오는 늙은 남자들의 손을 잘 참아냈다. 내가 결국 더러운 기분을 참지 못하고 손님의 뺨을 때렸던 날도, 윤경이는 애써 웃으며 돈을 받아왔다. 나는 대신 주방 안에 숨어 설거지를 시작했다. 새벽에 일을 끝내고 돌아오면 윤경이는 내 손에 핸드크림을, 나는 윤경이 목과 다리에 붉게 남은 반점과 긁힌 상처들을 치료해 주는 게 마지막 일과가 되었다.

  쭈그려 앉아 고추기름이 잔뜩 묻은 접시 위에 세제를 좀 더 뿌리고, 스펀지로 세게 문질러 닦았다. 흐르는 물에 닦여나가는 양념들과 하얗고 깨끗한 본모습을 드러내는 접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어긋난 선택의 연속이었다는 건 진즉에 알아챘었다. 중간에 멈춰 버리면 꼭 고속도로에 정차하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빠르게 달리지 않으면 무언가에 치일 것처럼 달렸는데, 결국 뒤돌아보니 따라오는 차는 한 대도 없는 상황이었다. 난 지금까지 뭘 한 걸까. 윤경이와 함께 꾸렸던 집이 진짜 내 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윤경이가 사라지고 나니 돌아갈 곳이 없었다. 팔이 아파서 접시를 닦는 속도가 조금씩 느려졌다. 잠깐 가만히 앉아있으니 주방 아주머니가 나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다들 바빠 죽겠는데 혼자 여유롭다는 말이었다. 주의 깊게 듣지 않아도 무슨 내용인지 맞힐 수 있었다. 매일 손님을 대접하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소리 지를 수 있는 대상은 나뿐이었으니까. 거품을 묻혀 닦은 접시를 흐르는 물에 문질렀다. 툭하면 접시고 컵이고 날아다니던 집이 싫어서 나왔는데, 나와서 하는 일이 접시 닦기라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무리 가족이 함께 웃고 울고 싸우며 산다지만, 내가 자랄수록 엄마랑 아빠도, 친할머니와 엄마도, 친할머니와 아빠까지 서로에게 못 할 말만 퍼부었다. 화해하는가 싶으면 다시 싸우고, 좀 진정됐나 싶으면 쌍욕을 하기 시작했다. 나에겐 매번 이해해 달라는 요구가 들어왔다. 단 한 번도 어른들을 이해한 적 없었지만, 이해한다고 말했어야 했다.
  설거지 일이 끝나면 편의점 아르바이트 시작까지 1시간이 남았다. 편의점으로 출발하기 전, 백반집 뒤쪽 골목에 기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그렇게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 결과가 겨우 이건가. 담배를 한 대 꺼내 입술로 물었다. 가끔 후회는 자해가 된다. 사실 대부분의 후회는 그렇다. 후회를 발판 삼아 어긋난 부분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 그래서 나는 핑계처럼 담배를 피웠다. 후회를 들이마시고 폐 깊숙이 넣어 느꼈다. 한숨을 내뱉듯 후회를 다시 입 밖으로 꺼내면, 눈앞에서 뿌옇게 변한 연기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짧아진 담배를 지져 끄고 쓰레기 봉지 안에 넣었다. 점퍼 안쪽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핸드폰이 없었다. 가만히 서서 생각해 보니 냉장고 앞에 그냥 두고 정신없이 나온 것 같았다. 빠르게 뛰어갔다 오면 되겠지. 숨 가쁘게 집 안으로 들어서자 신발장 위에 쪽지가 놓여있었다. 방 어딘가에서 굴러다니던 중국집 전단지에 써 놓은 거였다. ‘언니가 자꾸 나가라고 해서 나감. 돈 벌어 오면 봐줄 거죠?’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뭐 돈 때문에 그런 줄 아나. 쪽지를 펼쳐 본 그대로 신발장 위에 두고 냉장고 앞에 놓인 핸드폰을 찾아 다시 집을 나섰다.

  새벽 5시 반, 집으로 돌아오니 린이 이불로 몸을 싸매고 편의점 김밥을 우물우물 씹고 있었다. 린이 내 앞으로 작은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린의 옆에 앉아 봉투를 잡아 들었다. 이게 뭔데? 린이 김밥을 삼키며 말했다. 선물. 봉투 안에 든 건 핸드크림 두 개였다.
  “언니 손등 볼 때마다 찢어질 것 같아서 불안해.”
  핸드크림과 린을 번갈아 보았다. 너는 하는 짓마다 사람을 신경 쓰이게 만드는구나.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이 목구멍에 걸렸다. 린은 남은 김밥을 포장지 안에 넣고 내 손에서 핸드크림을 뺏어 들었다. 내 손등 위로 길게 쭉 짜고, 나보다 하얗고 부드러운 손으로 크림을 펴 발라 주었다.
  “돈, 벌어 올게요. 오늘 나가서 알바도 구했어요. 이건 오늘 일당으로 사 온 거고.”
  린과 눈이 마주쳤다. 린의 눈가가 살짝 붉어진 것 같았다. 린이 고개를 푹 숙였다. 언니 혼자 살면 외롭잖아요. 저도 지금 엄청, 외롭거든요. 린은 한참 동안 내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린의 손바닥이 따뜻해서 다른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쨍! 하는 소음과 무언가 쏟아져 내리는 소리. 피를 흘리는 윤경이와 사방으로 튀는 유리 조각. 또 같은 꿈이었다. 나는 크게 헉,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격한 움직임에 놀랐는지 린도 함께 몸을 일으켜 나를 바라보았다. 악몽 꿨어요? 린이 내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눈앞이 흐렸다. 눈물이 고인 건지 자다 깨서 눈이 불편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린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갑자기 따뜻한 온기가 나를 감쌌다. 린이 와락, 나를 끌어안았다. 깜짝 놀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잠이 좀 깬 것 같았다. 린은 나를 안은 채로 몇 분 동안 가만히 있었다. 누군가의 품에 안긴 건 몇 년 만이었다. 잔잔한 린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도 언니는 대답 안 해 줄 것 같으니까, 그냥 제 얘기할게요. 저는 감옥이 진짜 나쁜 새끼들만 들어가는 곳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회사가 부도나면 결국은 사장이 책임을 져야 한대요. 내가 봤을 땐 우리 아빠가 잘못한 게 아닌데, 아빠가 감옥에 들어갔어요. 엄마가 아빠 뒷바라지하는 동안 저를 친척 집에 맡겨 뒀는데, 그 사이에 엄마는 뺑소니 당해서 죽고. 친척들도 이젠 제가 액운이 쌓인 애라면서 눈치 줘요. 아직도 내 등을 감싸고 있는 린의 팔을 살짝 떼고, 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린은 잔잔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씽긋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언니, 나 불쌍하지. 그러니까 예쁘게 좀 봐줘.”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쭈, 반말이네. 린이 고개를 돌리며 다시 말을 꺼냈다. 사실, 일부러 언니 노리고 편의점 찾아간 것도 맞아. 언니 좀 착해 보였거든.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어딘가 외로워 보여서. 린은 고개를 돌린 채로 힐끔힐끔 내 표정을 살폈다. 언니가 만만해 보였다는 말은 아니고. 그냥 뭐, 동질감? 나는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린은 이상한 아이였다. 사람 입을 꼭 열게 만드는, 피곤하고 따뜻한 아이.
  “너랑 닮은 친구가 있었어. 걔는 아빠가 나쁜 놈이라 집에서도 애를 막 때렸다나 봐. 집 나올 계획을 하고 돈까지 모아서 나왔는데, 나랑 딱 마주친 거지. 근데 결국은 걔가 자기 아빠 머리를 깼어. 걔가 유흥업소에서 몰래 일을 했었거든. 걔네 아빠가 거기 손님으로 찾아와서 난동 피우는 걸 자기도 모르게…….”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는 린의 눈동자가 조금씩 흔들렸다. 어린 애가 듣기엔 좀 무서운 얘긴가.
  “뭐, 걔네 아빠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모르겠는데, 내 친구는 죽었어. 아빠 머리 깨고 나랑 동해로 도망쳤는데, 도망친 지 얼마 안 돼서 갑자기 먹을 걸 구하자고 휴업한 가게 창문을 깨더니, 지 혼자 한 일이라고 거짓말하더라. 경찰서에 끌려간 날 죽었대. 거기 경찰들도 참 웃겨, 그동안 민원만 처리해 봐서 화장실 가고 싶다는 걸 수갑도 안 채우고 보냈다나 봐. 아, 그런 사람들 다 잘려야 되는데.”
  내 얘기를 듣고 있던 린의 반응이 고요했다. 나는 다시 누우며 어깨까지 이불을 끌어 올렸다. 이거, 내가 열아홉 살 때 겪은 거거든? 넌 적어도 나처럼 살진 마. 엎지른 물은 되돌릴 수도 없어. 아직 앉아있는 린을 뒤로 하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린과 밤새 이야기를 나눴던 날 이후로 린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잦아졌다. 먹으라고 넣어둔 냉장고 속 편의점 김밥이 그대로 있거나, 새벽에 집으로 돌아왔더니 돈 벌고 온다는 쪽지만 남기고 사라진 날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디서 돈을 버냐고 물어도 대충 말을 얼버무리거나 24시간 하는 카페가 있다고, 여기서 멀다는 얘기만 남기고 잠들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다른 직원에게 대타를 부탁하고 근처 카페에 앉아 린이 나오길 기다렸다. 밤 10시 30분쯤 됐을까, 집에서 린이 교복 위에 카디건을 걸치고 나오는 게 보였다. 린은 시내로 나가는가 싶더니, 근처 골목으로 한참을 들어갔다. 나는 최대한 발소리가 나지 않게 몇 걸음 뒤에서 린을 따라갔다. 린이 들어간 곳은 간판에 조명 몇 개가 떨어진 허름한 노래바였다. 노래바라는 글자 옆에 영으로 bar가 흐리게 적혀 있었고, 그 옆으로 여자 세 명의 실루엣이 그려져 있었다. 제 발로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린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디 가는지만 지켜보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소화가 안 되는 기분이었다. 주머니를 뒤적거리니 안쪽에서 린에게 뺏었던 독한 담배가 만져졌다. 나는 담배를 꺼내 두 개비에 한 번에 불을 붙였다. 라이터를 쥐고 있는 손이 자꾸 떨려서 한 번에 불을 붙이기 어려웠다. 어두워진 골목에서 조잡하게 반짝이는 노래바 간판을 보고 있자니 뜨거운 무언가가 턱까지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당장 들어가서 린을 데리고 나올까 고민하다, 같은 자리에서 담배 한 갑을 다 태워 버렸다. 아빠 머리를 내리치고 돌아왔던 윤경이의 표정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늙은 남자의 두꺼운 손이 윤경이 허벅지를 덮을 때, 집에 돌아와서는 속이 안 좋다고 밥도 못 먹고 술 냄새 풍기는 옷이나 빨던 그때. 그때 윤경이 네 표정이 얼마나, 지옥 같았는지 아냐. 자꾸 심윤경 탓을 하게 됐다. 내가 네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해서, 이렇게 다른 애한테까지 화풀이하는 거야? 화를 낼 거면 나한테 내. 깜깜해진 하늘을 노려보았다. 경찰이 실종 신고 제보를 받고 왔다고 했던 날, 너는 방에서 짐을 챙기는 내 손을 잡고 얘기했었다. 한 번이라도 얘기 나눠 보고 와. 난 계속 여기 있을 테니까, 널 찾는 사람들이 있을 때 돌아가. 가봤는데 아니면 다시 여기로 도망치면 되잖아. 응? 그때 내가 뭐라고 했더라. 다른 건 기억이 나질 않았다. 무서워.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나보다 네 행동이 더 빨랐다. 필요한 걸 가방에 챙겨 주고 자신의 가방도 급하게 챙겼다. 윤경아 만약에, 그때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나는 널 막을 수 있을까. 눈가가 뜨거워졌다.
  언니? 린이 노래바 간판을 지나쳐 나에게 걸어왔다. 최린, 너 여기 다녀? 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 저, 그게. 린이 카디건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더니 불쑥 고개를 들고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그냥 앉아만 있으면 된다고 해서, 하루에 20씩 준다니까. 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회식하는 회사원들 사이에 앉아서 박수만 치고,”
  “야. 넌 진짜 순진한 거냐, 바보 같은 거냐?”
  “…….”
  “진짜 앉아만 있으면 될 줄 알았어? 누가 앉아만 있는다고 20만 원씩이나 줘. 세상이 그렇게 쉬워?”
  린의 눈가가 붉어졌다. 언니가 무슨 상관인데? 린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나라고 이런 일이 달가웠는지 알아? 내가 어떤 마음으로 다니기 시작했는지 모르잖아. 언니야말로 뭘 안다고 나한테 이래? 린의 얼굴선을 따라 눈물이 툭, 떨어졌다. 나도 이런 곳에서 일해 봤어. 아니까 하는 말 아니야. 너 이제 열아홉이야. 린은 카디건 소매로 얼굴을 세게 문지르고는 나를 지나쳐 갔다. 야, 최린! 골목을 뛰어나가는 린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린과 나는 그 뒤로 일주일 동안 서로 말없이 지냈다. 계속 화가 나 있던 것은 아니었다. 왜 그런 곳을 다니기 시작했는지 이유부터 묻고 싶었지만, 린의 얼굴이 상처받은 사람 같아서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몸살 기운이 느껴져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대타를 맡기고, 설거지 아르바이트만 끝낸 뒤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창밖으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린의 신발도, 카디건도 없는데 신발장 위 우산만 그대로 있었다. 오늘은 또 왜 이렇게 빨리 나갔대. 나는 한숨을 푹 쉬고 린의 우산을 챙겨 다시 밖으로 나갔다. 비는 점점 더 세차게 내리고, 린의 뒤를 밟았던 길을 되짚어 보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뿌옇게 안개 낀 하늘 사이로 노래바 간판의 조명이 보이기 시작했다. 빗물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 들리는 것 같았다. 린아 참아, 최린! 잡다한 소음 사이로 린의 이름이 들린 것 같았다. 빠른 걸음으로 가게 앞에 도착했을 때 린은 오른손에 소주병을 든 채 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린의 밑에 보이는 건 넥타이, 와이셔츠…… 그 밑으로 더 보지 못했다. 밑에 누워 있는 사람이 누군지 판단하기 전에, 린의 앞을 가로막았다. 오른쪽 이마에 묵직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나를 내려치고, 옆으로 돌아가는 내 고개를 따라 반짝이는 파편이 흩어졌다. 아프고, 예뻤다. 소주병을 정통으로 맞은 부위부터 찡한 느낌이 들었다. 뜨거워지고, 욱신거렸다. 빠르게 퍼져오는 고통에 오른쪽 눈을 뜰 수 없었지만, 그래서 아름다웠다. 지금 눈앞에 흐릿하게 보이는 빛이 가로등인지 간판 불빛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 밑으로 흩어지던 깨진 소주병 파편이 에메랄드처럼 빛나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린아, 이거 봐. 예쁘다. 갑자기 세상이 고요해졌다. 린이한테 내가, 말을 건넸나? 헷갈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 눈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눈앞에 린이 보였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이제 그만, 그만하자.”
  그만하자, 린아. 그만. 딱 여기까지만. 이제 충분해. 더 하면 안 돼. 소주병은 이미 깨졌어. 하지만 아직 한 병이잖아. 코끝이 뜨거워지고 목에 힘이 들어갔다. 언니, 언니 정신 차려 봐. 미안해. 린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온통 뜨거웠다. 이마에서 흐르는 피도, 쏟아지는 눈물도, 퍼붓는 비까지 다 뜨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새 내 품 안으로 들어온 린이 가장, 불같았다. 우는 건지 소리 지르는 건지 모르겠네. 하지 마, 목 상해.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잘게 떨리는 린의 어깨를 최대한 힘주어 붙잡았다. 그렇게 세상이 불쑥 꺼졌다.
  린은 내가 병원에서 깨어난 후로 이틀 동안 울고, 밥을 차려 주고, 씻는 걸 도와주고, 다시 울기를 반복했다. 입원도 하루만 하고 바로 퇴원했는데, 괜찮다는 말은 더 이상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세 번째 날 아침까지도 울던 린을 끌어안고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우리 이제 상처받는 일은 그만하자. 응?”
  린의 뒤통수가 유독 고요해 보였다. 언니, 몇 주 전에 아빠한테 연락 왔었어. 린의 갈라진 목소리가 작은 풍선이 터지듯 들려왔다. 나는, 엄마 대신 돈 보태 주고 싶었어. 나 품어 준 언니한테도 보탬이 되고 싶었고. 근데 내가 언니 때린 날, 다시 연락이 온 거야. 아빠 죽었대. 방 천장에 죄수복을 밧줄처럼 매달아서. 린의 얼굴이 천천히 구겨졌다. 언니, 나는 그래도, 우리 엄마 아빠가 좋았어. 목구멍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린의 작은 머리를 감싸 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들썩이는 린의 어깨를 천천히 토닥였다. 눈앞이 점점 흐려졌다. 얼굴이 뜨거워져서 눈을 감았다.

  린은 노래바를 그만둔 대신 카페에서 근무 시간을 늘렸다. 일요일도 오전만 일하고 오겠다는 린을 말릴 수가 없었다. 린이 집을 나선 뒤, 나도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가족과 살던 집 근처로 찾아갔다. 아직도 이 근처에 살고 있을 거란 보장은 없었지만, 혹시나 아직 여기에 있다면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확인하고 싶었다. 전에 살던 아파트를 지나 상가를 걸었다. 막상 걷고 있으니 허무해졌다. 뭘 믿고 여기까지 온 건지. 그냥 다시 돌아갈까 생각하며 신호등 쪽으로 발을 돌렸다. 양선유? 익숙한 목소리였다. 차분하고 부드러웠지만 화낼 땐 그 어떤 것보다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들던 목소리. 천천히 뒤를 돌자, 반찬 가게 안에서 엄마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떨결에 반찬 가게 안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엄마와 5년 만에 마주 앉아 있었다. 여기서 일해? 응, 그냥 잡일.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래도, 살아 있어서 다행이네. 엄마의 힘없는 목소리가 식탁 위로 떨어졌다.
  “엄마는, 상복만 세 번을 입었다. 어머님, 너희 아빠, 그리고 너. 나는 너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았어. 그게 내 마음 편한 길이었다.”
  엄마는 덤덤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친할머니는 재작년에 자연사, 아빠는 작년에 음주운전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를 위로해야 하나? 아님 내가 울어야 하나? 어떤 반응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떠오르는 게 없었다. 머리가 멍해졌다. 나는 내심, 내가 다시 찾아갔을 때 셋이서 잘 살고 있기를 바랐던 걸까. 눈에 띄게 새치가 많아진 엄마의 머리카락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엄마는 한숨을 깊게 내쉬고, 내 손을 가져가 감쌌다.
  “뭐 하고 살았길래 이렇게 손이 거칠어졌어. 어디서 지내 요즘에는.”
  “그냥 서울에, 반지하에서 살아. 부모님 다 돌아가신 동생이랑.”
  “……그래.”
  “난 걔, 나처럼 살게 하고 싶지 않아. 엄마가 듣기에도 웃기지?”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지 몰라서 놔뒀는데, 놔둘수록 더 망가져. 내가 어디까지 더 망가져야 끝날지 모르겠어. 엄마는 조용히 내 말을 들으며, 거칠어진 손바닥으로 내 손등을 가볍게 쓸었다. 내 눈을 빤히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 밴드를 몇 개 가져왔다. 한 개를 그 자리에서 바로 뜯고, 내 검지와 손등 사이에 붙여 주었다. 신경을 못 쓴 사이에 튼 피부 사이로 피가 비치고 있었다. 나머지는 네 손으로 붙여. 엄마가 내 앞으로 밴드를 밀었다.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걸 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엄마와 헤어졌다. 집에 들어가자 린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언니, 어디 갔다가 이제 와? 나는 점퍼를 옷걸이에 걸어두며 말했다. 엄마한테 다녀왔어. 린이 젓가락을 요란하게 내려놨다. 엄마 찾았어? 응, 우연히. 린의 시선이 계속 내 얼굴 근처를 맴돌았다. 나는 어깨를 작게 으쓱이고, 린의 손에 들려있던 나머지 수저를 정갈하게 내려놓았다. 작은 탁상 위로 못 보던 김치와 김, 구운 햄이 올려져 있었다. 언니. 평소보다 낮고 차분한 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오늘 카페에서 설거지하다가 컵을 하나 깼거든? 좀 비싸 보여서, 곧 잘리겠다 싶었어. 바로 사과드리고 다음부터는 조심하겠다, 컵도 변상해 드리겠다, 막 고개를 숙였는데. 린은 문득 말을 멈추더니 작게 웃어 보였다. 사장님이 그냥 괜찮다고 하시더라? 카페에서 컵 하나 깨는 것쯤은 자주 있는 일이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린이 미리 데워놓은 즉석밥을 입 안에 넣었다. 뜨거운 밥은 오랜만이었다. 린은 구운 햄을 하나 집어 먹고,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입을 우물거렸다. 언니, 나는 그걸 몰랐다? 린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린의 동그랗고 맑은 눈동자가 보였다. 정성을 들여 닦은 유리창처럼 반짝였다.
  “깨진 컵을 다시 붙일 수 없다고 해서, 내가 쓸모없는 직원이 되는 건 아니었어. 나는 한 번 실수하면 그게 끝인 줄 알았거든.”
린이 내 숟가락 위로 구운 햄 한 조각을 올려놨다. 밥도 그래, 집 나왔다고 집밥 못 먹는 거 아니잖아. 린이 짓궂게 웃어 보였다. 빨리 안 먹으면 내가 다 먹어버린다. 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입을 열고 숨을 쉬자, 허공에 입김이 뿌옇게 번졌다. 린과 함께 시외버스에 올랐다. 피부가 시리도록 추운 날이었다. 린과 먼저 들린 곳은 린의 부모님이 계신 봉안당이었다. 린은 나란히 안치된 부모님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언니 그래도, 친척들이 우리 엄마 아빠는 버리지 않아서 다행이야. 나는 조용히 린의 손을 잡았다. 손끝이 얼어 있었다. 린과 나는 다음에도 같이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발걸음을 옮겼다. 길을 건너 바로 버스를 타고,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동해로 향했다. 윤경이를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동해에 도착했을 땐, 윤경이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까 고민하다 결국 경찰서로 갔다.
  “아마 그때 무연고자 합동 분향소에서 장례 치르고 화장해서…… 바다로 보내드렸을 거예요.”
  작게 탄식이 새어 나왔다. 그렇지, 걔네 아빠든 가족이든 누가 나타났을 리 없지. 경찰서에서 나와 린의 얼굴을 보았을 땐, 코도 볼도 빨개져 있었다. 동해 앞은 찬 바람이 많이 불었다. 린아, 그냥 집으로 갈까? 린이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린이 내 손을 잡고 앞으로 이끌었다. 린은 바닷가 앞에서 한 발짝 뒤로 멀어졌다. 내 등을 두드리는 린의 손길에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바다와 최대한 가까이 가, 신발 끝에 닿아오는 바닷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심윤경, 이제야 인사하러 와서 미안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바닷소리를 들었다. 윤경아, 나는 아직도 그렇게 떠나버린 네가 이해가 안 된다. 근데 세상엔 망가진 것보다 우리가 시작도 못 해 본 것들이 더 많더라.
  린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소나기가 쏟아졌다. 들고 온 우산이 없었지만 괜찮았다. 젖은 옷은 말리면 되고, 감기에 걸리더라도 다시 나으면 그만이니까.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온몸으로 이 소나기를 맞는 것. 세상과 함께 흠뻑 젖어 들어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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