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무덤
장아연
지하상가에 있는 작은 피어싱 샵 의자에 두 주먹을 꼭 쥐고 앉았다. 나는 스물다섯이 되자마자 사년 전에 세워둔 버킷리스트를 완료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쉰 개의 버킷리스트 중 마흔네 번째 목표인 볼 피어싱 뚫기를 수행하기 위해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던 피어싱 샵에 왔다. 스물다섯이란 나이는 결코 적지 않았지만 이 피어싱 샵에선 나이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나보다 서너 살 이상 어린아이들도 재미 삼아 피어싱을 뚫으러 오는 일이 허다했다. 피어싱의 개수를 나이로 따지자면, 나는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에 불과했다.
“보조개 만들려고 하는 거 맞죠?”
직원은 나지막이 물었다. 나는 잔뜩 긴장했던 터라 직원의 말 한마디에도 몸을 움찔거렸다. 허리를 숙여 나와 눈을 맞추고 있는 직원은 양쪽 귀는 물론, 코와 입, 광대까지 주렁주렁 피어싱을 달았다. 얼마 전에 눈썹 피어싱을 뺐는지 구멍이 남았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은 무덤덤한 얼굴로 내 양 볼에 점을 찍었다. 볼에 닿는 펜의 촉감이 소름 끼쳤다.
“다들 많이 하러 와요. 보조개 시술은 비싸니까요. 잘 오셨네.”
직원은 덤덤하게 말하며 은근슬쩍 반말을 섞었다. 듣기 거북했지만 참기로 했다. 직원의 손에 들린 핀은 흉기에 가까웠으니까.
볼에 피어싱을 뚫는 건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멋을 부리기 위함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보조개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직원이 내 손에 거울을 쥐여주었다. 이미 피어싱 샵엔 거울만 여섯 개가 있었지만, 손거울로 볼을 살폈다. 파란색으로 찍힌 점에 곧 긴 바가 들어갈 거고 보조개가 잡힐 것이다. 억지로 입가를 올렸다가 내렸다. 입꼬리가 아렸다.
보조개를 만든다는 건 피부를 죽이는 일이었다. 입안을 뚫는 긴 꼬챙이로 상처를 낸 뒤 살을 죽여 만든 미소. 양 볼이 푹 파인 얼굴로 환히 웃는 모습을 떠올리면 몸이 떨렸다.
“자리 괜찮으세요?”
여전히 직원은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말투였다. 피어싱 샵에 들어온 지 십오 분째였지만 여태껏 말은 딱 한마디밖에 하지 않았다. 볼을 뚫으러 왔는데요, 저 멀리서 쭈뼛거리며 들어와 겨우 했던 말이었다. 예상외로 직원은 친절하게 설명했다. 이걸 친절하다고 해야 하나, 정확히 말하자면 무뚝뚝한 말투로 부드러운 말을 건넸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술은 지체 없이 시작되었다. 직원은 내 볼을 알코올 솜으로 소독한 뒤 한 손으로 턱을 붙잡았다. 나는 곁눈질로 시술 과정을 흘끗거렸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었다. 어떻게 생긴 바늘로 자신의 볼을 뚫는지, 바늘이 피부를 완전히 뚫을 만큼 뾰족한지, 피부를 뚫는다는 생각에 손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지만 한편으론 묘한 쾌감도 일었다. 직원이 고개를 아예 반대쪽으로 돌렸다.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손바닥을 바지에 쓸어내렸다.
“조금 따끔할 거예요.”
피어싱 샵에 오기 전부터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막상 거사가 코앞까지 다가오니 도망치고 싶었다. 볼에 냉기가 느껴졌다. 그만할 의사를 내보일 겨를도 없이 긴 바가 볼을 뚫었다. 뒤통수가 시원해졌다. 긴 바가 곧 볼 안쪽을 뚫을 듯 매섭게 다가왔다. 야속하게도 직원은 한 번에 뚫지 않고 잠시 쉬었다. 볼을 뚫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두터운 피부층을 고작 바 하나로 뚫어야 하므로 직원은 두 손에 낀 라텍스 장갑을 정돈했다. 3초의 짧은 휴식이었지만 그 시간이 억겁처럼 느껴졌다. 볼이 얼얼했다. 아릿하기까지 했다. 이 감촉이 익숙해질 법하니 긴 바가 다시금 볼 안쪽을 뚫었다. 직원의 손도 입안에 함께 들어왔다. 입을 쩍 벌린 채 가만히 있으니 턱이 빠질 듯했다. 남의 입에 손을 넣어 시술을 끝마치는 직원도 불편하겠지. 직원과 눈이 마주칠까 두 눈을 꼭 감았다. 직원의 능숙한 손놀림이 없었더라면 이 작업은 고됐을 거다. 다행히 10초 내로 시술이 끝났다.
한쪽 볼을 뚫으니 반대쪽은 일도 아니었다. 나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었다. 처음 뚫은 볼의 아릿함이 가시지 않았는데 반대쪽에 또 똑같은 통증이 전해졌다. 볼이 얼얼한 게 마치 치과에서 신경치료를 마치고 난 뒤 같았다. 직원의 손이 내게서 떼어진 후 뒤처리를 마칠 때까지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앉아있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가게 안엔 알코올 냄새와 시원한 박하 향이 감돌았다. 한가한 평일 낮이라 손님은 나뿐이었다. 하긴 대낮부터 볼을 뚫으러 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거울들과 눈이 마주쳤다. 얼굴만 비출 수 있는 작은 거울부터 전신 거울까지. 5평이 겨우 넘는 지하상가 가게 안에 절반이 거울이었다. 직원이 계산대에서 손을 탁탁 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얼얼한 볼 안에 무언가 흘러나와 입안에 고였다. 이게 침인지 피인지 구분하기 어려워 일단 삼켰다. 코안에 맴도는 비릿한 냄새가 이게 피구나, 추측했다.
직원은 사적인 질문 하나 하지 않았다. 가령 왜 볼 피어싱을 뚫는지, 보조개 외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기대한 건 아니지만 직원이 꼬치꼬치 캐물으면 못 이기는 척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줄 예정이었다. 직원은 계산이 완료될 때까지 피어싱 관리에 대해 말할 뿐이었다. 한 달 뒤에 피어싱을 빼러 오라는 말부터 아무리 염증이 나고 고름이 생겨도 절대 만지거나 소독약을 바르지 말고 상처가 심해지면 가게로 찾으라는 소리가 전부였다.
나는 직원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나름 경청한다고 고개를 끄덕여 보았지만 머릿속엔 전혀 다른 말이 웅성거렸다.
“넌 좀 웃고 다녀라. 선배가 말하는데 무안하게 그게 뭐니?”
삼 년 전부터 내 귓가에 맴돌던 말이었다. 카운터 옆에 놓인 작은 거울로 볼을 훑었다. 입가를 살짝 올리자 피어싱이 살에 묻혔다. 보조개처럼 보였다.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아도 웃는 모양새가 되었다.
버스정류장에 앉아 웃는 연습했다. 입가를 올릴 때마다 볼이 벌겋게 부어올랐지만 개의치 않았다.
“꽤 아플 거예요. 가끔 살이 튀어나올 수도 있는데, 걱정하지 마시고 가만히 내버려 두세요.”
직원은 소독을 열심히 하란 말도 가게 내에서 비싼 가격에 소독약을 팔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내버려 두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자연히 아물 거라고. 그게 자연의 이치라는 듯 직원은 덤덤히 말했다.
나는 직원이 알코올 솜으로 볼을 소독하던 촉감을 기억했다. 얼얼한 감촉이 볼에 가득 남았다. 입을 쫙 벌렸다가 다물기를 반복했다. 아까 볼에 닿은 알코올은 금세 휘발됐다. 볼이 단단해졌다. 문자가 한 통 왔다. 지혜였다.
지경의 결혼식에서 만나기로 한 지혜는 자신의 속눈썹 연장이나 제모, 쇼핑을 했다는 사실을 미주알고주알 떠벌렸다. 나는 답장 없이 지혜의 문자를 읽었다. 굳이 피어싱을 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피어싱의 유무는 물론, 두께나 시술할 때 느낌 따위 장황하게 쓰지 않았다. 지혜라면 웅장하게 부풀렸을 이야기를 나는 삼켰다. 물끄러미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문자들이 1분에 서너 개씩 올라왔다.
나와 지경, 지혜는 대학교 친구였으며 전부 다 다른 전공이었다. 지경, 지혜, 진. 우리는 ‘지 자매’라고 불렸다. 천문학 동아리에서 만난 우리는 술이나 마시자는 분위기에서 유일하게 별을 관찰했다. 천문학과인 지혜가 망원경으로 별을 찾으면 사진학과인 지경은 사진을 찍고 신문방송학과인 나는 떠들썩하게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대서특필이라 호들갑을 떨어대며 기록하기 바빴다. 우리 셋의 견고한 사이는 타인이 낄 틈이 없었다. 단 한 사람, 지경의 애인이자 남편이 될 남자를 제외하곤.
그는 천문학 동아리의 부장이었고 우리보다 세 살이나 많은 복학생이었다. 능청스레 농담을 던지고 모두와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친화력이 좋은 사람이기도 했다. 지경이 연애를 시작하며 우리의 관계는 서서히 어긋났다. 지경은 나와 지혜와 보내는 시간보다 애인과 함께하는 시간이 잦았으며 셋이 놀다가도 애인이 부르면 뛰쳐나갔다. 마치 애인의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짬이 나 우리를 만나는 것처럼. 지경이 자리를 뜨면 지혜는 헛웃음을 뱉었다.
“쟤 봤지. 지금 우리보다 애인이 중요하다는 거야?”
나는 잠자코 지혜의 말을 들었다. 지혜는 지경의 그런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나는 어떻게 생각했더라,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저 어젯밤 지경의 말이 걸릴 뿐이었다.
“진아, 나 결혼하기 싫어. 이게 이렇게 좋은 일일까? 정말로?”
지경은 어젯밤 내게 전화해 물었다. 결혼을 하루 앞둔 예비 신부에게 들어도 괜찮은 말인 걸까. 피어싱을 가볍게 혀로 훑었다.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피어싱이 박힌 자리는 부어올랐다. 볼 주위가 시뻘게졌다. 지혜는 화장실 한편에서 화장을 고쳤다. 나는 그 옆에 멀뚱히 서서 지혜를 내려다보았다. 결혼식까지 1시간 정도 남았다. 어제 지경에게 온 전화에 대해 지혜와 의논하고 싶었지만 지혜는 전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야, 진아. 너 그거 기억나? 지경이가 선배랑 사귈 때, 선배가 여자 동기들이랑 술만 마셨다하면 지경이 밤새 울었잖아. 우리가 술 사주고 밥 사줘도 한 입도 안 먹고 눈 퉁퉁 부을 때까지 울고……. 그러다 선배 연락 오면 잽싸게 튀어 나갔잖아.”
지혜는 입을 살짝 벌린 채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입술에 립스틱을 덧바르며 말하느라 발음이 약간 뭉개졌다. 나는 혹여 이 이야기를 누군가 들을까 봐 주위를 살폈다.
“뭐, 어때. 진짜 있던 일이잖아. 넌 참 걱정도 산더미야.”
지혜는 가볍게 코웃음 쳤다.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면 죽기라도 하는지 지혜는 매사에 말을 툭툭 내뱉었다. 이를 악물었다. 볼 안쪽에 피어싱이 바깥으로 밀렸다. 지혜는 화장을 마치고 나를 쳐다보았다. 지혜의 시선이 나를 해체했다. 볼에 머물렀다가 밑으로 내려갔다. 내 몸을 훑었다. 아주 구석구석. 나는 침도 조심히 삼켰다.
“아, 너무 배고프다. 엊그제부터 한 끼도 못 먹었잖아.”
지혜는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을 나섰다. 나는 뒤따라 나서며 생각했다. 너 아직도 몸에 집착하는구나. 얼마 전에 보디프로필을 찍었다던 지혜의 몸은 군살 하나 없었다. 무려 15kg 감량이었다. 매번 닭가슴살, 채소, 고구마를 싸와서 학식 대신 먹던 대학생 지혜가 떠올랐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내 귀에 떠들던 부러움 섞인 말도 떠올랐다. 지경이 다리 있잖아, 어쩜 저렇게 길고 얇을까? 무슨 인형 같아. 군살 하나도 없고. 아, 이번엔 진짜 다이어트 성공해야지. 지혜는 멀뚱히 서 있는 나를 돌아보았다. 지혜의 볼에 보조개가 파였다. 혀로 피어싱 바를 훑었다. 날카로운 접합부에 혀가 베였다.
30분이 지나도 베인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침을 삼킬 때마다 혀가 따끔거렸다. 지혜와 나는 예식장 안을 돌아다니며 아는 사람과 반갑게 인사했다. 지경의 부모님과 남동생, 언니, 대학 동기들. 같은 대학을 나온 두 사람이 졸업하자마자 결혼하니 아는 얼굴이 많았다. 지혜는 예식장을 둘러보며 내게 속삭였다.
“역시 호텔이 좋긴 좋아. 별거 안 했는데도 고급스럽잖아.”
신혼여행을 가는 대신 결혼식에 모든 돈을 들였다는 지경의 말을 떠올렸다. 청첩장을 주면서 하던 말이었다. 결혼의 꽃은 신혼여행인데, 덧붙이는 지혜에게 지경은 확고히 말했다.
“나랑 오빠랑 사귄 지 벌써 5년이야. 둘이 이곳저곳 여행 안 가본 데가 없어. 차라리 신혼여행을 안 가는 게 나아. 훨씬 돈도 절약되니까.”
지경의 의견이 확고해 할 말이 없었다. 지경은 청접장을 목적으로 밥을 먹는 내내 발을 가만두지 못했다. 굽 높은 하이힐을 신고 나온 지경의 뒤꿈치엔 피가 흘렀다. 지경은 개의치 않았다.
“일단 시댁에서 살기로 했어. 오빠가 이번에 취업했거든. 대기업, 뭐 비스름한 곳. 난 가정주부 하려고. 가족을 일찍 꾸리는 게 내 소원인 거 너희도 알잖아. 내가 사진을 특별히 잘 찍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애 돌보고 그러려고.”
지경은 그게 인생의 목표라도 되듯이, 비로소 자기의 진짜 삶을 찾았다는 듯 볼을 붉혔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경의 속내는 그게 아니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나는 지경이 사진학과 내에서 얼마나 멋진 사진을 찍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얼마나 훌륭한 사진가가 되고 싶었는지, 지경에게 자신의 꿈과 포부를 수도 없이 들었다. 넌 분명 유명한 사진작가가 되어 세계를 들썩이게 할 거라고 나와 지혜가 말하면 지경은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지경의 남편이 될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분 나쁘게 웃고 다니는 지경의 애인을 떠올리자마자 화가 치밀었다. 좀 웃어, 아직도 귓가에 그 말이 맴돌았다.
“이런 곳은 밥도 맛있겠지?”
지혜는 군침을 삼켰다. 나는 어색하게 소리 내 웃었다. 입가를 올리는 순간 통증이 밀려왔다. 근처 약국에서 소독약이라도 사서 바르고 싶었지만 직원의 당부가 떠올라 참았다. 소독약은 더 독이 됩니다.
“어, 왔어? 아기 친구들.”
저 멀리 양복을 차려입고 한껏 긴장한 채 어깨를 추리고 있는 선배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자신의 결혼식이 기대된다는 듯 싱긋 웃었다. 묘하게 기분 나쁜 웃음이 담긴 얼굴이었다. 나는 지혜의 등 뒤로 슬금슬금 숨었다. 지혜는 시선을 남자와 맞췄다.
“선배. 아니, 형부. 결혼 축하드려요.”
지혜는 남자의 손목을 붙잡고 동동 뛰었다. 최선을 다해 축하 인사를 남겼다. 선배는 형부란 칭호를 듣자마자 멋쩍게 웃었다.
“지혜 살 많이 빠졌네? 요즘 뭐 하고 지내. 약 먹고 뺀 거야?”
선배는 무례한 질문을 서슴없이 던졌다. 지혜는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운동으로 뺀 거죠. 저 과학관에서 일하잖아요. 서울 시립.”
지혜의 대답에 선배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어색하게 웃었다. 지혜는 선배보다 더 크게 웃었다. 나는 지혜의 눈에 옅게 눈물이 맺힌 걸 보고야 말았다.
“진이도 왔네?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좀 웃자?”
선배는 용케도 숨어있던 나를 발견했다. 장난스레 말했다. 입가를 올려 억지로 웃었다. 금방이라도 볼이 잘릴 듯한 통증이 일었다. 그 말을 마치고 선배는 오로지 지혜만 보았다. 천문학 동아리 부장이던 선배는 툭하면 내게 웃음을 보이라고 요구했다. 웃지 않는단 이유로 튕기느냐는 저급한 농담을 입에 담았다.
나는 늘 지경과 지혜의 웃음을 유심히 관찰했다. 바보 같을 정도로 허허실실 웃는 지경에 비해 지혜는 적당한 웃음을 내비쳤다. 우악스럽게 웃지 않아도 편안했다. 웃을 때마다 볼이 파여 조금만 입가를 올려도 괜찮았다. 나는 보조개를 갈망했다. 웃음을 원했고 생살을 뚫을 만큼 간절했다. 손거울로 볼을 확인했다. 붉게 부어오른 볼 안에 하얀 고름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신부대기실은 사방이 하얀 벽면과 비즈를 닮은 듯 반짝이는 가죽 의자, 시폰 커튼, 다양한 색깔이 조화를 이뤘다. 그 가운데 앉아있는 지경은 마치 눈송이를 뒤집어쓴 듯했다. 바닥에 퍼지는 면사포, 지경의 정수리에 얹힌 티아라 왕관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났다. 지경은 양손을 치마 위에 얹고 얼굴을 풀었다. 미소를 지었다가, 정색했다가, 활짝 웃었다. 나와 지혜는 조심히 지경에게 다가갔다. 지경은 한숨을 푹 내쉬다가 우리를 발견하곤 함박웃음을 지었다.
“뭐야, 너 왜 이렇게 예뻐?”
처음 말을 꺼낸 건 지혜였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한들, 차려입은 모습으로 만나는 건 졸업식 이후 처음이었다. 지경은 나와 지혜의 손을 붙잡았다.
“너희 둘도 너무 예뻐. 지혜는 살이 저번보다 더 빠진 거 같아. 진이는 피어싱했네? 잘 어울린다.”
지경은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이 웃었다. 지혜는 지경의 손등을 쓸어내렸다.
“너희는 뭐 하고 살아? 취업은?”
나와 지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경의 말투는 애원하는 듯했다. 대체 너는 우리에게서 뭘 알고 싶은 거니? 목 끝까지 말이 차올랐지만 말할 수 없었다. 지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그냥 중소기업에서 일해. 작은 곳이야.”
지경은 옅은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혜를 슬며시 응시했다. 천문학과 수석 졸업이던 지혜는 서울시립과학관에 취업했고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는 중이었다. 결혼 준비로 연락이 끊겼던 지혜가 이 사실을 알 리 없었다. 지혜는 내 눈을 피했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나는 아직 취업을 못 했어.”
지혜는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잘했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나는 졸업식을 앞두고 그토록 원하던 기자가 되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지경은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미안. 내가 괜한 걸 물었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지경은 자신의 미소를 숨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지경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 나는 지경에게 묻고 싶었다. 너 정말 이 결혼, 후회 안 해? 하지만 묻지 않았다. 결혼식 당일에 신부 손을 이끌고 뛰쳐나가는 건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
“사진은 이제 그만두는 거야?”
갑작스러운 지혜의 말에 나와 지경은 놀랐다. 그 말이 제발 그만두지 말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경은 창문도 없는 신부대기실 벽을 응시했다. 나는 지경의 눈에 시선을 두었다. 평소에도 크던 눈이 두 배가 되었다. 커다란 눈동자에 내가 비쳤다. 지경이 고개를 약간 돌렸다. 지경의 눈동자에 보이는 건 오로지 순백의 물체뿐이었다.
“신부님, 이제 입장할게요.”
직원이 지경에게 다가왔다. 나와 지혜는 뒤로 물러났다. 뒤이어 직원 두세 명이 지경을 부축하고 면사포를 들었다. 지경은 거동하기조차 불편해 보였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지경은 늘 하이힐에 짧은 치마를 고집했다. 대학생 로망이었다나 뭐라나. 늘 뒤꿈치가 까졌고 걸음이 느렸다. 발목을 덮는 치마를 입는 나와 운동복 차림이던 지혜는 항상 지경을 기다렸다. 지경은 총총걸음으로 뛰어왔다. 덜컹거리는 하이힐을 무겁게 이끌면서. 난 언젠가 결혼을 일찍 하고 싶어, 그냥 그게 내 꿈같아. 지경의 말을 기억했다. 이따 나 입장하는 거 동영상으로 남겨줘. 지경은 우리에게 윙크했다.
지혜는 지경의 낯선 모습을 담아두기 위해 카메라를 켰다. 배가 고픈지 손이 떨렸다. 어두워진 결혼식장에 서서히 빛이 들어왔다. 미리 입장해있던 신랑은 넥타이를 고쳐맸다.
“자,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죠? 신부님을 모시겠습니다!”
사회자의 말과 함께 결혼식장 문이 열렸다. 찬바람이 훅 끼쳤다. 주례사를 바라보던 신랑은 몸을 돌렸다. 지혜는 녹화 버튼을 눌렀다. 사람들의 환호성과 함께 지경의 모습이 보였다. 지경은 천천히 걸어와 자기 아빠의 손을 잡았다. 어색하고 뻣뻣한 아빠의 걸음부터 입가에 미소가 서린 지경의 얼굴까지 지혜는 전부 카메라에 담았다. 하얀 드레스가 바닥을 쓸고 지나갈 때마다 은박이 떨어졌다. 마치 그 모습이 눈 같았다. 금방 녹아 없어지는 눈송이, 하얀 피부. 나는 참을 수 없이 볼이 아파져 두 손으로 감쌌다. 만지면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내 손은 피어싱에 닿았다. 피어싱 바를 바깥으로 조금 뺐다.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다.
“두 사람은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결혼식은 금방 끝났다. 주례사의 말과 가족의 축가, 부모님에게 절을 하니 어느덧 종료였다. 이제 남은 건 사진 시간뿐이었다. 신랑 신부 친구들 모두 올라오세요! 사진기사의 말에 지혜와 나는 바쁘게 움직였다. 지경의 바로 옆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지혜는 곧바로 지경의 옆에 섰다. 나는 지경의 머리맡에 자리했고 그 외 친구들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자리를 잡았다. 얼추 자리가 잡히자 사진기사는 사진 찍을 준비를 했다.
“자, 모두 웃어보세요.”
그 말에 지혜는 약간 몸을 뒤로 밀었고 나는 입가를 올렸다. 볼이 아렸다. 볼 안에 고름이 차올라 무거웠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꿀렁이는 게 느껴졌다. 사진기사는 사진을 찍다 말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신부님 뒤에 서 계신 분, 조금만 더 웃으세요.”
장난 섞인 어투였다. 그게 더 기분 나빴다. 차라리 진지하게 말했더라면 더 나을지도 몰랐다. 신랑은 고개를 쳐들어 나를 응시했다. 아, 또 진이네. 좀 웃고 살라니까. 팍팍하게 그러지 말고. 선배는 여전히 내게 그렇게 말했다.
“다시 찍을게요. 웃으세요, 아주 활짝!”
사진기사는 강조했다. 그 말이 나를 향한 거라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사진기사가 렌즈에 눈을 댔다. 나는 양손을 피어싱 아래에 대었다. 입가를 억지로 올렸다. 고름이 터져 볼 안으로 밀려왔다. *

장아연,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2학년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21학번,
소설 전공이다.
작가 인터뷰
Q. 작품에서 주인공은 다른 인물들로부터 웃어보라는 말을 종종 듣는데, 작가님의 경우에는 사진 찍을 때 웃는 거 어려워하지 않으신가요?
A. 네, 저는 평소 웃음이 많기 때문에 사진 찍을 때 웃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웃는 제 모습을 보면서 사진을 찍을 수 없기에 자연스러운 웃음은 나오지 않습니다.
Q. 지혜, 지경, 진이 세 인물로 구성되는 피부 무덤은 각자 다른 위치에 있는 세 사람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작가님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단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사진을 잘 찍었던 지경이 친구들에게 ‘가정주부’를 할 것이라고 말할 땐, 두 인물을 포함해서 저까지 놀랐습니다. 아연 작가님은 세 인물이 소설에서 어떻게 작용되길 원하셨나요?
A. 현 사회에서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경력단절, 과한 친절과 웃음, 다이어트 등 세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였습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좀 더 나아가 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결핍을 서로 채워주는 식으로 구상했습니다. 고학력과 공기업 취업을 동시에 이룬 지혜는 지경의 날씬한 다리를 부러워하고, 웃음이 많은 지경은 꿈을 이룬 두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결단력 있는 성격을 가진 진은 보조개가 있는 지경을 부러워하듯이 각자의 고유한 능력이 소설 속에서 발현되지 못하고 누군가의 욕망과 결핍을 부추기는 장치로 사용했습니다. 그리하여 세 인물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를 부러워하고 부러움 받으며 소설이 전개되길 원했습니다.
Q. 소설에서는 피부 무덤이라는 제목과 피어싱의 연결이 흥미로웠습니다. 소설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A. 세 인물은 피부와 직결되었습니다. 볼을 찔러 보조개를 만든 진, 뒤꿈치가 까져도 하이힐을 신고 다니는 지경, 살을 뺀 지혜. 세 사람 다 피부에 변화가 있으므로 제목을 피부 무덤이라 하였습니다. 소설 속 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얼얼함을 느낍니다. 이 얼얼함이 지혜, 지경과 대화를 하며 더 심화됩니다. 마지막 사진을 찍을 때 진은 계속 불편함을 느꼈던 볼 피어싱의 고름을 터뜨립니다. 진이 스스로 고름을 터뜨림으로써 피어싱은 진의 피부에 점점 익숙해지고 진 또한 영영 자신의 결핍인 ‘웃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란 의미를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