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그것의 목을 베는 여자, 지화용

그것의 목을 베는 여자

  그것의 목을 베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달빛이 가로등보다 환할 때 그때를 노리면 됩니다 그것의 모가지를 잡고 비틀고 칼로 정확하게 한 가운데를 내리찍고 피가 나지 않았던 건 뽑지 않아서입니다 그것의 눈알이 나를 향해 치켜뜰 때 한 번에 뽑으면 피가 솟아 오르지만 그 붉은 피는 달을 적시지 못합니다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행동도 늘 조심해야 합니다 여자 예술가는 예술과 사생활을 분리할 수 없으니까요 나는 결국 불매 당할 겁니다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하시나요 사람은 쉽게 죽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게 따지면 나는 고등학생 때도 과외를 했을 때도 글을 합평 받을 때도 여러 번 죽었던 거 같은데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던 거 같은데

  글을 알려주겠다고 했는데 나는 한 번도 그것에게 글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글을 가까이해서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으로 창문을 가리고 어둠만 찾아다녔는데 덧댄 소설집 사이로 달빛이 얼마나 강한지 자꾸만 눈을 찔렀고 몇 번이고 찔러대는 달빛에 나는 그날 죽지 않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나를 쉽게 죽일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죽인 것은 맞습니다 나는 내 작품에서 여러 번에 걸쳐 그것을 죽였고 앞으로도 다르게 그것을 죽일 예정입니다 이건 자백이 아닌 고백입니다 왜요? 내 작품을 불매할 건가요? 그럼 그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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