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
천장에 붙어사는 어둠이란 놈을 끈질기게 노려보는 사람만이
흰 이마 위로 벼락처럼 잠이 쏟아지는 순간을 맛보지
바닥에 누워
저릿한 열 손가락 마디를 하나하나
차가운 장판에 붙여 보아도 소용이 없지
S자 정육 고리에 걸려 길게 늘어진 소의 혀처럼
하반신은 말을 듣질 않지
마침내 모서리가 존재하는 고요한 우주를 상상하며
눈을 감아 봐도 소용이 없지
달콤한 아이스크림 공장의 문은 굳게 닫혀 있지
새어나가는 빛 하나 없이
구석에 고이는 빛도 없이
컨베이어 벨트는 연중무휴 아이스크림을 나르지
그 속에서 불면증을 앓는 여자들은
모두 같은 이름을 쓰고 같은 일당을 받지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낮잠을 자기 위해
탈의실 찬 바닥에 차곡차곡 몸을 눕히지
그들의 벌린 입에서 아릿한 파스 냄새가 나지
잠이 들면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리지
현존하는 모든 모서리에서
사람들이 울고 있지
무한증식하는 터널 속에 갇혀버린 아이처럼
서글픈 껌딱지처럼
숨죽이며 숨죽이며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지
손가락은 끝없이 바닥에 달라붙지
–
박하
편의점 유리문을 힘차게 밀고 나가는 남자
의 뒤통수에서 옅은 박하 향이 날 때
그제야 나는 담배 생각이 납니다
매운 목캔디를 입에 물고 카운터 앞에 앉아
바다를 건너는 페퍼민트의 지루한 여정을 떠올려 봅니다
창밖에는 남자가 줄담배를 태우고 있습니다
즉석밥처럼 새하얀 숨이 그의 입에서
연달아 터져 나옵니다
가느다란 시선을 줄곧 바닥에 두고
먼 산을 보는 남자의 표정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한 사람은 얼마나 긴 숨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해져
한참이나 그를 쳐다봅니다
어서 나는 재고 정리를 해야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편의점에 오고 가는 남자
그가 피우는 담배의 종류를 궁금해할 틈도 없이
어느새 텅 비어버린 판매대가
남동생의 빈속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리하고 또 정리합니다
지나버린 것들은 폐기처분 합니다
굳은 허리를 펼 때
탄성 같은 박하 향이 발밑으로 고꾸라질 때
내 입술과 코에서 흐르는 연기를
가장 많이 들여다보았던 얼굴이 떠오를 때
파란 목캔디를 하나 까서 입 안으로 넣습니다
몸속 터널이 훤히 밝아지는 순간입니다
–
드라큘라
동네에서 가장 큰 새은혜교회 종탑
이 세계의 완벽한 신이
사흘 밤낮으로 정성껏 빚어놓은 목젖 같다
등에 핏덩이를 업은 세탁소 여자가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덩그러니
종탑을 올려다보고 있다
새벽 네 시의 종탑은 유독 크고 외롭다
십자가 아래서는 무엇이든 작아진다던
그녀 어머니의 말대로
첫 종소리를 기다리는 여자의 야윈 어깨가 움츠러든다
정확히 네 시가 되어야 한다
더욱 힘차게 울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매일 듣는 종소리가 지겨워져서는 안 된다
정확히 새벽 네 시에 여자는 세탁소 문을 연다
하루에도 수백 장의 옷들이
세탁소 문을 가볍게 밀고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정장이에요,
드라이클리닝이요
안녕하세요 원피스예요,
가슴에 구멍이 나서요
저마다 복잡한 사정들이다
여자는 온종일 그들의 사연을 분류하고 정리한다
여자의 전신(前身) 같은 검은 옷가지들이
미끄러지듯 천장에 늘어갈 때마다
그녀의 핏덩이는 그녀 옆에 조용히 누워
흡혈박쥐의 부러진 날개에 대해 생각한다
자정이 되면
거리 곳곳에 짐짝 같은 사람들
사방으로 꺾인 영혼 겨우 붙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여자는 묵묵히 잔업 다리미질을 한다
교회 주변을 순회하는 종소리가 거리를 떠나
이 세계에서 영영 사라질 때까지
한 취객이 비틀대며 종탑 앞을 지나간다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스팔트 위에 널브러진 그를
그 위에서 곤히 잠들어버린 그의 얼굴을
세탁소 여자가 빤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