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도심의 다과회, 엄유진

도심의 다과회

  뿔을 반으로 잘라 책상에 두고 온 사슴이
  사람들의 손에 있는 쿠키의 나머지 반쪽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슴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산책로를 유유히 걸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잔디밭의 사인용 테이블에 앉아있다 오동통한 쿠키가 각자의 손에 들려있다 사슴은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유쾌한 농담으로 가벼워질 손목을 영락없이 쿠키를 집어 들 손가락을 아니면 쿠키를?

  우리는 사슴을 쳐다보았다
  사슴은 우리를 쳐다보았다

  부스러기처럼 입가에 달라붙은 생각들이 사슴을 둘러쌌다 말을 담은 것은 눅눅해지기 마련이어서, 저것은 곰팡이인가? 누군가 물었다 곰팡이가 아니야 나는 밀폐된 공간에서 물컹해진 토마토 같은 게 아니야 사슴이 말했다 사람들은 퍼렇게 부푼 발등을 꼬아 발목 뒤에 숨기고

  질척해진 음식물이 혀를 지나 목구멍에 당도했다 끈적한 위액을 지났을 때 쿠키의 뼈는 다시 정직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사슴은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쿠키를 쟤는 왜 뿔이 달려있을까 한 입 먹고 다시 쿠키를 쟤는 왜 뿔이 잘려있을까 한 입 먹고 커피를 뿔은 어디로 갔을까 한 입 마시고 종이컵을 뿔은 왜 아름답지 않을까 내려놓고 누군가가 그건 말이지 부드럽게 웃고

  그건 말이지 달린 뿔이 아니라 잘린 뿔이 아름다웠기 때문이야 아름다운 것은 다 반으로 잘려있어
사슴이 그런데 쟤는 왜 아직도 여기 있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사슴이 없는 사슴의 방에서
  습기에 노출된 뿔이 눅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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