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사이버 레메게톤, 강해인

  사이버 레메게톤*

 

  솔로몬의 72 악마를 아십니까

 

  바사고(Vassago) 그것은

  내 컴퓨터 아이디

  오래전부터 변하지 않는 내 닉네임

 

  중학교 3학년 때

  검은색 글자로 적힌 소설 한 장

 

  바사고는 솔로몬을 도와 악마를 봉인하다 마지막에

  죽어 버렸다

 

  이젠 살아 있지도 않은 게

  단어에게 죽었다며 화면에서 나오지 않는다

 

  해답을 얻고 싶어 부서진 키패드의 알 수 없는 나열을 바라보다

  어리석은 자식을 도와주는 건 나의 임무니까

 

  바사고 바사고 바사고

  말이 없다

  그럼 내가 불러야지

  악마를 부르려면 키보드를 두드려야 한다

 

  문장 뒤에 추가되는 엄지와 뒤집힌 이모티콘

 

  언제까지 내 품에 있을래?

  너는 우리 앞에서 싫어요를 싫어했잖아

 

  나는 스마일 이모티콘이 없다

  좋아요밖에

 

  우리를 기다리는 건 정말 좋아요

 

  활자를 가로지르는 붉은 선

  주위로 빛나는 홀로그램

  컴퓨터에 구멍이 생긴다

 

  언데드(undead) 같은 손길로 구멍을 빠져나오려나

  그건 사람을 닮았다

 

  바사고

  부수고

  거기서 올라와

  구멍 속으로 형체가 사라진다

 

  모두 솔로몬이 죽였다

  레메게톤 대신 키보드로

 

  구멍이 사라진다

  나도 데려가

  숨을 참고 발을 넣는다

  마법진 가운데로 잠수한다

 

  솔로몬은 폭력적인 사람이야

 

  구멍 속 항해는 언데드의 패배로 끝이 난다

  동시에 사라진다

 

  찢어지는 수만 개의 이름들

  분리되는 자음과 모음

  블루스크린 화면 속에

  나를 숨겨 놓는다

 

  기울어진 각도로 본 세계

 

  학생이 학생이 아니게 되는 것

  무엇이어야 하는 게 무엇이 아니게 되는 것

  각본이 짜인 화면 바깥은 목소리만 들린다

 

  여기가 피해자의 방입니까?

  예 중학교 3학년 때 자살

  당했어요

 

  *솔로몬이 저술했다는 악마에 관한 마도서, 짜인 각본인 사실은 바사고 이외에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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