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오류 점검, 오수인

오류 점검

오늘은 꼭 데뷔하고 싶다

주방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오바 좀 그만해라 A는 자주 그렇게 말했고 그럴 때마다 죽였다
열한 번째로 죽이던 날엔 죄책감이 들어 고개 숙였다
묵념, 체념 그리고 a-men.
묵념, 체념 그리고 a-men.
그런데 a랑 men은 같이 쓰일 수가 없잖아 게다가 멀고 험하다고 느껴진다는 표현 좀 상투적이지 않나? 죽지도 않고 살아온 A의 주둥이를 듣지 않으려 손을 움직인다 타자를 친다 내리친다 부숴버린다

예상보다 빨리 주방에 도착했다 앞치마 두르고
오늘의 요리는 토마토파스타입니다
저는 자극적인 걸 좋아해서요 좀 맵게 만들어 볼게요
그런데 토마토한테 입이 있었나? 토마토가 자꾸 말을 거네요
시끄러우니까 얼른 썰어버립시다!
그 전에 뭐라고 하는지나 들어볼까요?

안녕하세요 당신의 폭력성을 인상 깊게 봤습니다
타자기가 튀기는 와중에 주먹에선 피가 흐르고 심히 예술적이더군요
그 장면 사겠습니다 얼마면 돼
뭐라는 거야 그건 내 피가 아니라 타자기 피야 이 양반아
뭐라는 거야 나는 양반이 아니고 싱싱한 토마토야 인마

개들이 짖는 소리
맞지 요즘 개들은 레슬링을 참 잘해
뭐라고 짖는지 들어나 볼까
이 새끼야 우리 얘기 글로 쓰지 마라 죽여버린다 모를 것 같지
창문을 닫는다

자, 다시 요리를 시작해 볼까요
아아, 내가 뭘 만들려고 했더라
멍청이멍청이
일단 얘부터 죽이고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