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용서하지 않는다는 건 매일 밤 가시가 그득한 선인장을 손에 쥐는 것과 같다 외 2편, 최다빈

용서하지 않는다는 건 매일 밤 가시가 그득한 선인장을 손에 쥐는 것과 같다

나는 매일 밤 가시가 그득하게 자란 선인장을 손에 쥔다
가시가 손가락과 손바닥에 촘촘히 깊게 박혀서는
선인장과 이별하듯 헤어져 내 손 안에서 인사한다

따갑고, 조금 매운 것도 같아
통각은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거니까
가시가 박힌 손을 말아쥐면
이불 속에 있는 발바닥의 각질 가루까지도
징그럽게 불어나는 기분을 느낀다

언제쯤 이 통증을 관둘 수 있을까
가시는 점점 더 깊이 박히는데

나는 내 살점을 떨어뜨린 이를 용서할 수 없다
그건 나에게 잔인한 일이니까

박힌 가시가 손바닥을 뚫고 손등으로 튀어나올 때
나는 꼭 선인장이 된 것 같았다
달빛을 받으며 반짝이는 가시를 가진 선인장

나는 오늘도 선인장을 손에 쥐었다

불륜(不倫)

투명한 어항을 쳐다보았다
어항 속엔 옅은 회색빛 자갈
그 위를 유영하며 주황빛 꼬리를 흩날리는 금붕어

내가 할 일은 그저 밥을 주고 물을 갈아주는 일인데
그런 내가 금붕어를 몰래 사랑하는 중이다

몰래 하는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멀리서 지켜보는 일은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
오래, 더욱더 오래.

먹이를 주고
물을 갈아주고
이 집에서 하는 일 중에서
내가 금붕어를 사랑하는 일이 가장…

사랑은 몰래 할수록 아름다운 거구나

장식용 금붕어는 작은 어항에서 살아가기보다 배를 까고 둥둥 떠다니길 선택했다
더러우니까 치우라는 말에 나는 귀하디귀한 금붕어를 손에 올렸다

물컹하고
비릿하고
축축한

금붕어를 만져본 이 순간은
금붕어가 땅에 묻히기 직전까지
내가 손을 털고 무덤 앞에서 기도할 때까지
내 손을 떠나지 않는다

손금 사이에 낀 비린내가 사라질 때 즈음
투명한 어항에는 새로운 금붕어가 왔다

주황빛 꼬리를 흩날리며 헤엄치는 금붕어
아름답네요.

우울 전염

나는 썩은 귤이다
상자 속 가득 담긴 귤들 속
맨 아래에 전염성 높은 귤

썩은 귤은 금세 멀쩡한 귤마저 전염시킨다

묘한 달큰한 냄새를 풍기며 썩는 중
껍질이 물러지고, 물러 벗겨진 껍질 속 과육도 파괴되고
점점

귤 하나가 달큰한 내를 풍기면
따라서 달큰해지는 옆자리 귤
전염의 시작은
하얗게 질려가는 중

이제 돌아갈 수 없어
맞닿아있지 않으려 몸을 뒤틀어도
둥글기만 한 우린 다닥다닥 붙어있을 수밖에

나중에서야 발견되겠지
늘러붙어 버린
상하고 썩은 귤들

우린 뼈대 없이 물렁해서
다 버려버려야 하더라
그 어느 것도 입에 넣을 수 없이 버려지는
전염된

나는 썩은 내를 풍기며 종량제 봉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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