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 만들기 외 2편, 임예린
잼 만들기
네가 혀를 움직이면 단내가 나
잇몸 톡 치고 입천장 쓸어내리는 발음
침방울이 뺨을 달구었지
증발한 설탕나비를 잡고 싶어
사랑을 눈으로 볼 순 없니
과학적으로
사랑에 빠진 뇌를 증명해보자
움푹 파먹은 두개골
익어간다 첫 키스의 체리잼 속에서
끈적하게 달라붙은
박제 한 점
크림
바람에 우려진 장밋잎
꽃다발을 마셔요
프리즘에는 케이크가 있어요
초콜릿의 춤을 훅 끄고
한입 가득 떠먹어요
아주 커다랗고
귀 짧은 토끼가 걸어와요
내가 만든 케이크야
너는 어디를 들켰니
크림 묻은 입술로 귀를 핥아주고
소원을 나눠요
딸기로 만든 모자
사랑호수에서 노 젓기
크림
영원히 파묻히고 싶은
나는 눈을 떴고
팔은 허공에 꼬여있었습니다
찻잔 삼키기
티팟에 히비스커스를 부었다
네가 매일 마셨던
꽃잎이 모자라서 심장을 얇게 저몄다
너는 노을을 보면 다섯살에 처음 꺾은 꽃을 기억했다
그래서 웅크리는 날이 많았다
검붉은 토사물이
샤그랑 샤그랑 티스푼에 엉겼다
나는 눈 한번 깜빡이면 웃음이 났다
눈에서 소금 알갱이가 흘러내렸다 뺨은
피투성이
피가 물감이 되기 전에 시계의 뻐꾸기를 죽였다
루비가 삼킨 손가락 하나를 퐁당 빠트렸다
찻잔을 씹어먹었다
나를 봐요
반지를 품은 새빨간 모가지

임예린,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2학년
사랑에 관한 사유를 즐겨요.
글을 쓰고 고양이와 디저트를 좋아합니다.
작가 인터뷰
Q. 작가님의 세 작품 모두 독특한 지점이 있었는데 작가님은 시를 쓰면서 어떤 지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A. 이미지요. 이미지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강렬한지를 중요하게 봐요.
Q. 예린 작가님은 소설 전공으로 학교에 입학하셨는데 웹진 ‘자리’의 투고 원고는 시를 제출하셨습니다. 이유가 있나요? 평소 소설을 쓰던 작가님이 시를 쓸 때면 어떤 방식으로 시를 구성하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소설가만 하고 싶지 않고 시인도 하고 싶거든요. 대부분의 학우들이 제가 소설을 낼 거라고 생각하길래 반전으로 시를 내 보았습니다. 시를 쓸 때는 말하고 싶은 이야기부터 떠올려요. 큰 틀의 서사를 짠 후에 그것을 어떤 이미지로 전달할지 고민하며 씁니다.
Q. 시 속에 사랑이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모습도 취하지만 ‘심장을 얇게 저민다’처럼 앙큼하기도 합니다. 시인님께서 정의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사랑은 수많은 얼굴을 지녔어요. 크림처럼 부드럽고 달콤하다가도 징그러운 광기를 띠어요. 행복한데 애달파요. 모순적이고 경이로운 감정 같아요.
Q. 3편의 시 모두 결핍된 부분에 대한 갈망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잼 만들기’가 결핍과 가장 가까운 것 같은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시를 쓰셨나요?
A. 강하게 갈망한단 것은 그것이 없단 의미이죠. 사랑 받고 있음에도 사랑을 갈망할 수 있단 것이 참 흥미롭고 슬픈 것 같아요. 곁에 있는데도 믿지 못하고 그것을 찾는 것만큼 외로운 게 또 있을까 싶고요. 그런 생각을 하며 시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