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중독, 이효림

  중독

 

  잠이 안 올 때는 시끄러운 힙합을 틀고

  눈을 감아 볼륨은 2 정도가 적당하고

 

  영원을 외치는 랩 가사와

  가끔 사랑을 노래하는 목소리

  내가 널 사랑하고 네가 날 떠났대

  어쩌면 반대일지도 모르고

 

  그림자가 드리운 방

  랩 하나가 끝났는데

  지금 시간은 새벽 세 시 반

  상실을 말하기 딱 좋지

  내 옆 빈자리를 더듬다가

  아 여기엔 원래 아무도 없었지

 

  다음 곡이 재생되고

  노크 없이 갑자기 둘이 된 공간처럼

  눈을 뜨면 혼자가 될 것 같아

  이백 자 분량의 자기 연민이 흘러나와

 

  믿고 싶은 것과 믿는 것의 차이

  여기서도 그 회색 지대인 믿어 보는 것

  영원을 외치던 래퍼를 회색으로 칠해 보고

  다음엔 또 누가 오려나

 

  들어오면 허그를 나가면 백허그를

  그런데 포옹을 싫어하면 어떡하지

 

  뺨을 맞고 물러날 거다

  그리고 가사를 써야지 네가 날 사랑했고 떠났다고

  어떻게든 사랑 노래라고 우기면서

  아무튼 중독이면 된 거 아니겠어 하면서

 

  손이 시리면 볼륨을 3으로

  파랗게 질린 얼굴로 따라 불렀지

  그래 무척 사랑에 빠진 얼굴로

 

  하룻밤 누워 있기엔 감성팔이가 편했지

  수면 안대가 밝아올 때까지

  영원이 끝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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