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가슴에 담긴 건 무엇이었을까, 권보현
가슴에 담긴 건 무엇이었을까 권보현 희지는 도망쳤다.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누군가를 두고 홀로 떠나는 일은. 그녀는 거의 남겨지는 입장이었다. 등을 보이는 일보다 보는 쪽이 익숙했다. 희지의 삶은 단조로웠다. 적당한 사랑 아래 자랐고 집 근처 대학에 진학했으며 연애는 한 손에 꼽을 만큼 해본 사람. 물론 취업 준비를 하던 차에 덜컥 아이를 가지게 된 사연은 비범한 축에 속할지도 …
가슴에 담긴 건 무엇이었을까 권보현 희지는 도망쳤다.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누군가를 두고 홀로 떠나는 일은. 그녀는 거의 남겨지는 입장이었다. 등을 보이는 일보다 보는 쪽이 익숙했다. 희지의 삶은 단조로웠다. 적당한 사랑 아래 자랐고 집 근처 대학에 진학했으며 연애는 한 손에 꼽을 만큼 해본 사람. 물론 취업 준비를 하던 차에 덜컥 아이를 가지게 된 사연은 비범한 축에 속할지도 …
잼 만들기 외 2편, 임예린 잼 만들기 네가 혀를 움직이면 단내가 나잇몸 톡 치고 입천장 쓸어내리는 발음 침방울이 뺨을 달구었지증발한 설탕나비를 잡고 싶어 사랑을 눈으로 볼 순 없니 과학적으로사랑에 빠진 뇌를 증명해보자 움푹 파먹은 두개골익어간다 첫 키스의 체리잼 속에서 끈적하게 달라붙은박제 한 점 크림 바람에 우려진 장밋잎꽃다발을 마셔요 프리즘에는 케이크가 있어요초콜릿의 춤을 훅 끄고한입 …
미역국 외 2편, 엄유진 미역국 그때 물이 끓을 것이다 찬장에서 미역을 불릴 그릇을 꺼냈다 미역을 뜯었다면 오늘 밤 당신의 역할은 삶의 지축을 던지는 것이다 뚜껑을 밀어낼 기세로 여러 번 끓어오른다 장거리 여행에서 기지개가 생겨나는 이유 살아있다는 기억을 손끝까지 가져간다 심심한데 이야기 들어줄게요 아직 한참 가야 하는 걸요 신발을 벗고 좌석에 완전히 몸을 기댄다 침묵에 …
전입 신고 외 2편, 문수빈 전입 신고 집 속에 집 속에 집 속에 집너는 아직도 여기서 살고 있나요바사삭 내 몸에 금이 가는 소리 새싹처럼 돋아나기 시작했을 때부터기록되던 프로젝트였죠 과자처럼 부서지는 나의 우주빅뱅은 사실 폭발이 아니라 균열이었다는 것을 어떤 여자에게는 내가 침략자이자 구원자였다는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 영원히 엄마의 엄마가 될 수 없겠지이곳에서 우리는 더 이상 같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