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작품

[시] 낮잠 외 2편, 강바다

낮잠 천장에 붙어사는 어둠이란 놈을 끈질기게 노려보는 사람만이 흰 이마 위로 벼락처럼 잠이 쏟아지는 순간을 맛보지 바닥에 누워 저릿한 열 손가락 마디를 하나하나 차가운 장판에 붙여 보아도 소용이 없지 S자 정육 고리에 걸려 길게 늘어진 소의 혀처럼 하반신은 말을 듣질 않지 마침내 모서리가 존재하는 고요한 우주를 상상하며 눈을 감아 봐도 소용이 없지 달콤한 아이스크림 공장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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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레몬 브리즈, 김민주

레몬 브리즈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는 오늘도 맞지 않았습니다 언제 눈을 떴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 아침 얼룩이 가득한 창문 너머로 과묵한 하늘이 보입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약속을 취소하는 사람들은 유독 향수를 많이 뿌리고 화려한 패턴의 옷을 많이 입고 다닙니다 레몬 브리즈 향이 나는 샴푸로 머리를 감습니다 머리카락에 물을 적시고 거품을 내자 상큼한 향이 눈을 타고 코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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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리플레이 프로젝트, 성채현

리플레이 프로젝트   서리가 잔뜩 낀 목도리를 풀어 가방에 집어넣었다. 드러난 목에 감기는 눈바람이 그다지 춥지 않아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얼굴까지 올라오는 목폴라를 입고 있어 생살에 닿지는 않았지만, 원래는 목도리를 칭칭 감아 중무장해도 파고드는 칼바람에 목이 아려왔으니까.   또 한 번 지구가 바뀌고 있었다. 날씨 앱에 찍힌 온도는 영하 15도였다. 뉴스는 지구가 얼어붙은 이후 5년 만에 연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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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나만의 나, 이지우

나만의 나   학기 말은 언제나 어수선하다.   선생님은 진도가 끝난 수업 시간엔 영화를 틀어주셨다. 처음에는 다들 집중했지만, 영화 감상 시간이 늘어날수록 영화가 질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선생님께 자유시간을 달라고 항의했고 선생님은 너무 큰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주의와 함께 자유시간을 허락해주셨다. 신난 아이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만들어서 모였다. 나도 효주와 하늘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의 곁에는 이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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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창밖의 환한 빛, 박가연

창밖의 환한 빛   나는 조금 전 휴게소에서 산 와우 껌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반으로 껌을 찢으니 단 향이 피어올라 왔다. 침이 고였다. 옆자리에 앉은 해리에게 껌 반쪽을 내밀었다. 해리가 껌을 받았다. 나는 해리가 입에 껌을 넣는 걸 보고 껌 껍질을 깠다. 껌이 입에서 침이랑 섞였다. 다디단 소다 맛이 났다. 찐듯하게 단맛에 턱이 아렸다. 나는 껌을 씹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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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천둥 치는 밤, 최현지

천둥 치는 밤   내 팔에는 한 영혼이 있습니다. 어떻게 짖었는지, 무슨 행동을 하고 돌아다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개의 영혼입니다. 개가 서 있는 것처럼 생긴 상처가 팔에 남아 있습니다. 아마 평생을 내 곁에서 살 것입니다. 이 자국 덕분에 산 나는 이것으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오늘은 개의 날입니다. 어린 나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대신 번개의 앞으로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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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홍, 권민지

홍   겨울바람과 함께 부는 흙먼지에 눈이 따가웠다. 폭설 예고로 움직임을 멈춘 재개발 현장은 고요했다. 형태가 남아 있지 않은 건물의 잔해가 발에 걸렸다. 무너지지 않은 것들은 땅을 딛고 서 있었다. 빨간 페인트로 엑스 표시가 크게 쳐진 낡은 주택의 외벽을 짚었다. 벽에 간 금을 따라 쓸고, 손톱으로 긁어 보기도 했다. 손톱이 울퉁불퉁하게 깨지고 나서야 손을 보았다. 빨간색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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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호수, 임예린

호수 나는 매일 호수에서 유영한다 떠다니는 꽃 잎들과 청둥오리를 사랑한다 연꽃을 뜯어먹고 죽은 오리를 깊은 곳에 묻어줬다 오리의 발들이 허우적허우적 사랑 속에서 숨을 참는다 친구의 발등을 만지며 나를 떠날 셈이지 친구는 고개를 젓는다 네가 떠나겠지 호수의 바깥은 어디일까 사랑해 이 모든 게 연극적이라고 생각했다

[시] 우리가 먹는 법, 정은진

우리가 먹는 법 레토르트 죽 하나가 식탁 위에서 연기를 피워내고 있을 때 얼마나 오랫동안 허기를 채워줄까, 네가 물었기에 나는 더 허기졌다 수플레를 시켜 계산한 후 파산이다, 네가 그랬을 때 나는 최대한 수플레를 맛있게 먹는 척했다 둥글게 부푼 연노란 수플레가 포크 사이로 촉촉하게 흘러내렸지만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입안으로 빠르게 넣기만 했다 이거 맛있다 그래 너는 어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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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우주선에도 클럽은 필요하다 외 1편, 문수빈

우주선에도 클럽은 필요하다 이 글은 내 방에 클럽이 없기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이곳엔 리듬이 없고 흐름에 몸을 맡기려는 사람을 찾을 수 없습니다 물을 갈아줄 때마다 진자처럼 출렁이는 마리모뿐이야 이곳엔 클립도 없어 서로 엮이고 싶은 사람이 없나 봐요 하다못해 나는 먹고 싶은 대로 다 먹고 살아남은 사람이라 단추도 튕겨 나가기 직전의 모습이지 몇십 년째 착륙 중인 우주선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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