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작품

[시] 오류 점검, 오수인

오류 점검 오늘은 꼭 데뷔하고 싶다 주방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오바 좀 그만해라 A는 자주 그렇게 말했고 그럴 때마다 죽였다 열한 번째로 죽이던 날엔 죄책감이 들어 고개 숙였다 묵념, 체념 그리고 a-men. 묵념, 체념 그리고 a-men. 그런데 a랑 men은 같이 쓰일 수가 없잖아 게다가 멀고 험하다고 느껴진다는 표현 좀 상투적이지 않나? 죽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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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엔딩 크레딧, 김채은

엔딩 크레딧 창문으로 확인한 내 표정은 덤덤했다 밤마다 꺼지는 불처럼 물은 필요없고 내 이름은 비로 끝나 장마는 끝난 지 오래 얼굴에 남은 물기는 수건으로 닦으면 돼 흡하고 숨을 들이켜 꿀꺽 수건을 베개 위에 올렸다 이름이 떠올랐다 손을 뻗지 않아도 떨어져 눈에서 흘러내린 물은 멈추지 않아 잡혔다 말랐다 표정은 없었던 것처럼 잠들었다 창문으로 확인한 네 표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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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사정거리 바깥의 우리, 권보현

사정거리 바깥의 우리   도망치는 건 어렵겠구나. 복도에 붙은 방을 둘러보며 든 생각이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어도 온기라고는 찾기 어려운 네모의 향연이었다. 속으로 삼킨 아쉬움과 달리 구둣발의 소리는 경쾌했다. 물론 옆에서 나의 어깨를 잡고 걸어가는 그녀의 얼굴은 굳어있었지만. 푸른 셔츠의 깃을 칼각으로 다린 것 같아도 이리저리 구겨진 걸 보아하니, 자취한 지 얼마 안 된 신입인 듯했다. 그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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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사라지는 중입니다, 이소연

사라지는 중입니다   십 분을 울고 깨달았는데요. 저는 제가 사라져버릴 것 같아 두렵습니다. 사라질 것 같습니다. 그럴 예정이 분명합니다. 사라지는 중입니다. 매일 입술을 뜯었습니다. 입술부터 사라지는 중입니다.   살아집니까? 숨이 뱉어지지 않는 날이 있었습니다. 목이 막힌 것 같았는데. 목. 보다 모가지. 모가지를 잡으면 아, 숨은 코로 내뱉는 거였죠? 웅크린 몸을 바라봅니다. 몸. 보다 몸뚱어리. 웅크린다는 글자는 정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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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별빛당 애플파이, 나윤서

별빛당 애플파이 반질반질 윤이 흘러요 애플파이를 넣다 예열된 오븐에 손등이 닿았거든요 아, 손 말고 파이 말한 건데 약은 바르셨어요? 그럼요 화상이 사라질 날 없어서 나파주*를 발라요 디저트가 아니라 상처가 빛나서 별빛당인지 몰랐어요 별빛당 디저트는 상처를 내야만 만들 수 있거든요 내가 아프면 다른 사람이 행복해져요 이 상처도 빛날 수 있나요 사장님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맛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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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람회, 조예원

박람회 1 파리의 눈은 파리채와 닮았다 아침에 죽인 파리를 들고 성당에 가서 기도했다 창문에서 빛이 쏟아지며 파리를 비췄다 휴지 위에 잠든 파리의 날개가 움직였다 2 외국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 나는 이태원 길거리에서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을 버렸다 터키 아저씨가 장난을 많이 친 탓에 녹은 아이스크림을 받았다 뒤에 있는 여자가 소리쳤다 구두 굽에 아이스크림이 물감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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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론다의 우유 배달원, 김민휘

론다의 우유 배달원 우유 배달원은 잃어버렸던 물건을 문 앞에 두고 사라졌다 스페인 가로수길에서 몰래 땄던 오렌지와 병에 담긴 우유 하나 옆에 말려있는 신문을 펼쳤다 오 년 전 신문이었지 누에보 다리가 흑백으로 인쇄되어있었다 _ 론다에서 만난 소매치기는 어리고, 빵모자는 전부 해져있었고, 어설픈 손장난으로 도둑질한 건 고작 여행객이 낮에 훔쳤던 과일 한 개 울고 있던 소매치기 소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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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델피늄, 한지원

델피늄   민석은 오늘도 늦었다. 어젯밤 나를 데리러 오겠다는 연락 이후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는 민석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꽃집으로 출발했다. 버스를 내리면 정면으로 행복 부동산이 보였고 오른쪽으로 꺾으면 골목길이 보였다. 나는 부동산 아저씨의 눈을 피해 빠른 걸음으로 골목에 들어섰다. 부동산 아저씨에게 걸렸다가는 재개발 얘기를 들어야 했다. 아저씨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아 고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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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누수, 윤서인

누수   천장에서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 물은 방바닥이 찰박거릴 정도였다. 양동이에서 넘쳐흐르는 물이 은성의 발가락 틈을 간질였다. 은성은 공을 차듯 발로 바닥에 떨어진 물을 차기 시작했다. 작은 시골집, 한적한 곳에 은성은 마침내 자신이 혼자인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은성의 머리칼은 정돈되지 않아 엉켜 있었고 피부도 푸석거렸다. 은성은 손을 들어 올려 머리칼을 빗어내려 봤지만, 머리카락이 빠지고 끊어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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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그것의 목을 베는 여자, 지화용

그것의 목을 베는 여자   그것의 목을 베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달빛이 가로등보다 환할 때 그때를 노리면 됩니다 그것의 모가지를 잡고 비틀고 칼로 정확하게 한 가운데를 내리찍고 피가 나지 않았던 건 뽑지 않아서입니다 그것의 눈알이 나를 향해 치켜뜰 때 한 번에 뽑으면 피가 솟아 오르지만 그 붉은 피는 달을 적시지 못합니다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행동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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